[DUGOUT Interview] 덕장중학교 윤정우 선생님

조회수 2022. 10. 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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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야구

이번 인터뷰 장소는 평소 익숙한 야구장이 아닌 학교다. 고교 선수들을 취재하러 종종 학교를 찾았지만, 이번엔 선수가 아닌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선수로서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를 거친 뒤 교직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윤정우 선생님이 그 주인공이다. 배트가 아닌 출석부와 분필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그. 야구가 너무 좋아서 시작했고, 야구가 싫어져서 그만뒀지만, 결국엔 야구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선수 출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Ilwoo Kim Location Deokjang Middle School

#지금은 체육 선생님

<더그아웃 매거진>과 처음 만나요. 근황과 함께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9월 13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전직 프로야구 선수였고, 현재는 덕장중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윤정우입니다.

본지를 접해본 적이 있나요?

선수 생활을 할 때도 <더그아웃 매거진>을 알고는 있었는데, 자세히 본 적은 없었어요. (웃음) 근데 유튜브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영상, 사진, 인터뷰 기사를 가끔 챙겨봤어요. (섭외요청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현역 시절 야구를 잘해서 큰 이슈 거리로 인터뷰를 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나오게 돼서 영광입니다.

선생님이 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나요?

제가 선수 시절 많은 부상 때문에 은퇴하게 됐어요. 그래서 야구에 대해 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걸 해야 야구 생각을 안 하고 다른 것에 몰두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 집안에 교사 출신이 많다 보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임용고시를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시험 준비를 하게 된 거죠.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줬나요?) 아무래도 공부할 때 노베이스로 시작했는데 누나가 일반 교육학이라든지, 공부법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줬죠.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누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공부하는 습관을 쭉 봐왔거든요. 그러면서 ‘공부를 한다면 이렇게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게 큰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야구 지도자가 아닌 일반 교육자의 길을 선택 한 계기가 있나요?

10살 때 야구를 시작해서 20년 이상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지도자 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좀 색다른 것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체육 교사도 꿈꿨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거죠. (만약 야구 지도자를 했어도 잘했을 것 같나요?) 제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코치님을 만났고 여러 지도 방식을 겪어봤어요. 거기서 느낀 게 뭐냐면 지도자가 선수와 소통을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통이 원활하면 선수들이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코칭을 잘했을 거 같다기보다는,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지도자는 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으로서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 8시 20분쯤 학교에 도착해서 조회를 준비하면서 일과를 시작하죠. 요즘 코로나19가 재유행이라 아이들 컨디션 체크를 중점적으로 하면서 조회를 마무리해요. 그리고 하루에 체육수업을 평균 4~5개 정도 진행하고,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 중간중간 제 담당인 스포츠클럽, 봉사활동에 관한 행정적인 업무를 보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교직에서 근무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겪었던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아이들과 수업하고 지내는 건 너무 좋은데, 제가 체육특기생 출신이다 보니까 제대도 된 교육 과정을 밟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교육 과정을 포함한 모든 학교생활이 새롭더라고요. 동아리도 여러 가지가 있고, 헷갈리는 용어도 많아서 제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잘 알려주더라고요. 1학년부터 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주변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주나요?) 동료 선생님들이 제가 운동선수를 관두고 교사가 된 걸 알다 보니까 제가 어려워하고 모르는 부분을 자세히 잘 알려주고 있어요. 덕분에 너무 재밌고, 감사하게 다니고 있어요.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어때요?

하루하루 배워가고 알아가는 게 너무 즐거워요.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정말 좋아요. 잘 모르겠는 게 있으면 교육청에 바로 전화하거든요. 교육청 장학사님이 이제 제 이름을 잘 아실 거예요. (웃음) 야구 경기하러 갈 때는 전쟁터에 나가는 느낌이었는데, 학생들을 만날 때는 항상 즐겁더라고요. 가끔 말을 안 들으면 화도 나지만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얻는 에너지가 엄청나요. 친구들이 성장해 나가는 걸 보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제가 어떻게 지도하냐에 따라 아이들의 진로가 변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기에 좋은 쪽으로 잘 인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어요.

#프로야구 선수였던 선생님

야구 얘기를 해볼까 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어요. 이종범 선배님이 당시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 있을 때였죠. 제가 맨날 동네에서 해태 경기를 보고 늦게까지 야구를 했거든요. 어느 날 어머니가 야구부 홍보 전단을 보더니 “너 야구 한번 해볼래?” 하셔서 야구부가 있는 학강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그때부터 제대로 시작했어요. (부모님도 야구를 좋아하셨나 보네요?) 좋아하는 편은 아니셨어요. 1, 2학년 때 반장도 했거든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도 공부 잘하는 아이한테 왜 힘든 운동을 시키려 하시냐며 전학을 말릴 정도였어요. 그때는 제가 고집도 셌고 이종범 선배님이 너무 멋있어서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죠. 그렇게 시작하고 나중에 KIA에 입단해서 이종범 선배님을 마주했는데 ‘성덕’이라고 해야 하나? 엄청나게 신기하고 새로운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2011년 꿈에 그리던 고향 팀 KIA에 2차 3라운드라는 높은 순위로 지명됐어요. 기대가 컸을 텐데 당시 소감은 어땠나요?

이전까지 운동하면서 프로에 진출할 거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한 포지션에 정착하지 못하고 투수와 타자를 계속 병행하면서 시합에 거의 못 나갔거든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타자에만 집중하면서 괜찮은 성적이 나왔고, 스카우트팀에서 좋게 봐주셔서 지명됐던 거 같아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고향 팀 KIA에 지명받았잖아요. 10년 이상 꿈꿔온 게 이루어져서 구름을 걷는 거처럼 행복했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팀을 옮겨 다녔어요. 그때마다 심적으로 편치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프로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옮겼죠. 상무 피닉스를 포함해서 1년마다 계속 팀을 옮겨 다녔는데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지나고 보니 여러 팀의 문화를 겪어본 좋은 경험이었던 거 같아요. 또 어느 날엔 시합하는 도중에 전광판 라인업을 봤는데, 라인업에 있는 선수 중 2~3명 정도만 빼면 학교에서든 상무에서든 저랑 최소 1년씩은 같이 뛰었던 선수들이었어요. 이런 기록도 기록이라면 제가 1호이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팀 문화가 조금씩 다르다고 말했는데 어떤 부분이 다르던가요?

KIA는 예전 해태 시절부터 군기가 세기로 유명했잖아요. 물론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선배들이 기강을 딱 잡아줬고, 때론 형처럼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LG에 갔을 때는 또래 선수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진짜 재밌고 즐겁게 야구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LG라는 팀이 도련님 이미지가 강했지만, 제가 겪어본 LG는 오히려 다른 팀보다 위계질서가 강하고 특유의 끈끈한 문화가 있었어요. SK 와이번스는 야구를 잘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처음 운동하러 갔는데 다들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이 팀은 이래서 우승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문화가 쭉 이어지고 있어서 현재도 SSG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많은 감독, 코치를 만나봤을 텐데 본인과 궁합이 잘 맞았던 지도자가 있었다면요?

궁합이라기보다는 저랑 인연이 가장 깊은 김기태 감독님이죠.광주일고 선배님이기도 하고, LG와 KIA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항상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특정 선수만 출전시키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면 공평하게 기회를 주셨거든요. FA(자유계약선수) 선수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던 계기가 됐죠. 그런 감독님의 가치관이 저랑 잘 맞아서 좋았어요.

현역 시절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투수는 누구였나요?

제가 경기를 그렇게 많이 뛴 선수가 아니었잖아요. 또 표본이 적기 때문에 특별히 까다로운 투수가 있다기보다는 당일 제 컨디션에 따라 달랐던 것 같아요. 당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의 에이스였던 앤디 밴 헤켄을 상대로도 홈런을 쳤거든요. 한편 두산 베어스 이현호 선수 상대로 제가 성적이 좋았는데,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만나니까 배트에 맞히질 못하겠더라고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야구공이 수박만 하다고 그러는데, 정말 그런가요?) 그렇죠. 수박만 하기도 하고, 공 실밥이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딱 멈춰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스윙하면 잘 맞을 거 같아서 찬스가 나한테 걸렸으면 좋겠고, 타석에 계속 들어가고 싶고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했는데 미련은 없었나요?

많았죠. 근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처음에는 미련이 많이 남았는데 그런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저만 안 좋아지더라고요. 나름대로 9년간 프로 생활을 했고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은퇴했다고 생각해요. 이걸 평생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언제까지나 야구에 사로잡혀 있을 게 아니기에,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곳에서 활력을 찾으려 했죠. 현재는 교직 생활이 매일매일 새롭기도 하고 만족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프로 생활 9년을 돌이켜 봤을 때 후회되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즐겁게 하지 못한 게 후회돼요. 그래서 학생들한테 항상 지금을 즐기라고 말하거든요. 지나고 나서 보면 힘들었던 때마저 재밌고 소중한 순간이었더라고요. 1군에 못 올라가고 성적을 못 내도 야구를 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되게 행복한 건데 말이죠. ‘그때 좀 더 재밌게 즐기면서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나눠주며 야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렇다면 반대로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요?

처음 홈런 쳤을 때도 기억나고요. 2016년 8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3연전 경기에서 제가 7안타를 몰아친 적이 있어요. 그전에는 1군에 가면 타석에서 위축되고 ‘내가 1군 투수 볼을 칠 수 있을까?’라는 이런 의심이 계속 들었거든요. 근데 그 경기를 기점으로 안정감이 생기더라고요. 계속 출전하면서 감도 쌓고 ‘별거 아니네, 나도 잘할 수 있겠구나’ 하며 생각의 전환이 됐죠. 그때 타석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야구는 시즌이 긴 스포츠잖아요. 2군 선수도 꾸준하게 기회를 받는다면 1군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요?

그 부분은 프로 3~4년 차 때부터 느꼈어요. 저는 선수들의 실력 차가 종이 한 장 차이라 보거든요. 프로에 올 정도면 고등학교, 대학교 때 각 팀에서 4번 타자 또는 에이스 투수였던 거잖아요. 어쩌다 한 타석 나갔는데 못 치면 2군 가고 이런 게 아니라, 꾸준하게 기회를 받는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면 어떤 선수든 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직관을 다니는지?

작년에 처음으로 KT 위즈 경기를 보러 갔어요. KT 김강 코치가 제 고등학교 동기라서 티켓을 부탁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안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돈내산’으로 테이블석을 예매해서 봤는데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초등학생 때 1~2만 원에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웃음) (관중석에서 보는 기분은 어때요?) 앞서도 말했지만, 야구의 소중함을 더욱 느낀 거 같아요. 야구장에서 관중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한번씩 보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로 팬분들의 삶에 야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 싶고, 선수들의 모든 걸 다 꿰뚫고 있더라고요. ‘와 내가 이걸 몰랐구나’, ‘조금만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마음속에 큰 울림이 있었어요.

최근 KBO MZ 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선정됐는데, MZ 위원회에 대한 설명과 하는 업무에 관해 소개 부탁합니다.

허구연 총재님이 내셨던 공약 중 하나인데, MZ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KBO에 신설된 조직이에요. 요즘 세대가 빠른 걸 좋아하고 상대적으로 루즈한 야구를 안 보잖아요. 그래서 야구팬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요. 이런 문제점에 대해 각자의 분야에서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KBO리그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게 주 업무에요. 저 같은 경우는 교육청과 연계해서 학교 체육 야구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KBO 측에 강사나 도구 지원을 어필하고 있어요.

KBO리그가 위기라는 말이 많은데, 일반인의 관점으로 봤을 때 어떤가요?

학생 때는 ‘어제 KIA가 이겼대, LG가 이겼대’ 이러면서 얘기했잖아요. 근데 제가 근무하면서 애들이 야구 얘기를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리고 저희 때 남학생들은 야구 규칙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룰이 너무 복잡해요”, “너무 길고 지루해서 안 봐요” 이러더라고요. 요즘 애들은 짧게 요약된 영상만 접하고 영화 한 편을 못 보잖아요. 이런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까 다가가기 더 어렵지 않나 싶어요. 제가 학교에서 야구 수업을 하려 해도 운동장이며, 장비며 제약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에요. 현재의 야구 팬덤이 경기장에 못 올 나이가 될 때쯤이 지금보다 더 큰 위기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선수가 있나요?

KIA에 있는 (한)승혁이랑 (김)호령이, LG에서는 (이)형종이, (이)천웅이랑 자주 연락해요. (비시즌에 일일 체육 강사로 초빙할 생각도 있는지?) 와주면 진짜 너무 좋죠. 얼마 전에도 삼성에서 뛰었던 모상기 선수가 와서 교육해주고 갔거든요. 프로선수가 왔다 가면 애들도 좋아하고 화제성이 생기니까 자주 와줬으면 좋겠어요. 제 어깨도 으쓱할 수도 있고요. (웃음) 새로운 팬 유입을 위해서라도, 선수들이 이벤트성으로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라 여러 학교에 방문해서 뜻깊은 시간을 자주 가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현재 몸이 현역 못지않은데 생활 체육 야구를 해볼 생각은 없는지?

아니에요. 지금 근육이 너무 많이 빠졌어요. 야구가 질리기도 하고, 제가 체육 교사니까 그동안 다른 스포츠를 배우기도 했어요.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잘해야 하잖아요. (어떤 종목을 배웠나요?) 탁구랑 배구 레슨을 받았어요. 지금은 여러 가지를 배우기도 하고 시간이 없어서 야구를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꿈 많은 선생님

조금 늦었지만 약 1년 만에 임용고시를 한 번에 합격했던 순간의 소감을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사실 2~3년 기간을 두고 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렇게 한 번에 합격할 거라 생각을 못 했어요. 아까 계속 기회를 받고 타석에 들어서면 잘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요.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처음엔 ‘시험 볼 수나 있겠나, 문제 풀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었는데 7월 이후부터 문제가 술술 풀리더라고요. 7월이면 상당히 늦고 지칠 시기인데 문제가 풀리니까 더 재밌는 거예요.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했던 거 같아요. 제가 약했던 과목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왔고, 진짜 운이 좋게도 합격했어요.

어떤 방법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했는지 궁금해요. 공부 비법이 따로 있었나요?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이 있겠지만 결국엔 자기 스타일에 맞춰서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저는 극한으로 몰아가는 스타일이어서 외부의 모든 걸 다 차단했어요. 공부하는 동안 야구도 아예 안 보고 연락도 거의 안 했어요. 강의 영상을 밥 먹으면서, 샤워하면서, 잘 때까지 온종일 틀어놓고 봤어요. 나중에는 강사가 사담하는 얘기까지 외워지더라고요. 결국엔 특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맞추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남들과 다르게 시작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었잖아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준다면요?

임용고시는 합격하는 시기가 다를 뿐이지 언젠가는 다 붙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운이 좋아서 먼저 붙었지만, 지금 수험생들도 분명히 좋은 결과가 올 거라고 믿어요. 지금의 시간이 헛되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먼저 합격했다고 훌륭한 교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래 준비한 만큼 나중에 더 뛰어난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포기하지 않고, 또 지금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교직에 왔을 때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이 선생님의 선수 시절을 인지하고 있나요?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아는 건 아니고요. 아이들 부모님이나, 사촌 형, 오빠가 아는 식이더라고요. 며칠 전에도 “친척 오빠가 사인 좀 받아 달래요”라고 해서 사인해줬거든요. 이렇게 종종 사인해주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체육 과목 외에 가르치고 싶은 수업은?

체육 말고는 잘하는 게 별로 없어서··· 그래도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 예체능 쪽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렸을 때 미술을 좋아했거든요. 음악에도 관심이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예체능 분야로 더 알려주고 싶어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본인만의 교육 철학이 있을까요?

선수 시절 훈련할 때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코치님이 ‘너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하고 통보식으로 먼저 말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커뮤니케이션 없이 직설적으로 듣는 게 힘들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예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의 상태를 먼저 살피고 기분을 헤아리거든요. 내가 관심받는 것도 알고, 누구를 차별하는 것도 알고 학생들이 더 잘 알아요. 사소한 거라도 대화하면서 소통하고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다가가면 학생들이 잘 받아주나요?) 처음 유대가 형성되기 전에는 잘 안됐는데, 제가 먼저 다가가고 상담도 하니까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더라고요. 나중에는 장난도 치게 되고 서로의 관계가 점점 발전하는 거죠. 뭐든지 한 번에 되는 건 없더라고요.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교사가 끝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선수 시절 아쉬웠던 기억에 에이전트도 하고 싶고, 서울대학교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대학원에서 공부해 스포츠 행정가도 해보고 싶어요. 옛날에는 야구선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 나오고 색다른 게 보이니까 하고 싶은 게 많아졌어요.

본인의 인생에서 야구는 어떤 존재인가요?

동반자, 짝꿍 같은 존재예요. 제 인생에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고 항상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죠. 야구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계속 야구와 함께할 거예요.

지금까지 응원해준 팬들과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인터뷰를 통해서 팬분들께 인사드리게 됐는데 저를 잊지 않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야구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 또 프로야구 이전에 아마야구가 있으니까, 아마야구에도 많은 관심을 두시고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38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8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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