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나훈아의 재력이 다시금 눈길을 끌고 있다.


한 방송에서 강일홍 기자는 "나훈아의 음악 저작권료가 가수들 중 톱클래스다. 월 저작권료가 약 5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 된다"고 밝혔다.
방송에 따르면 나훈아는 1966년 데뷔 이후 3000여곡의 노래를 불렀고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도 800곡이 넘어 음원 저작권료만 해도 연간 약 6억 원으로 예상된다. 음원 저작권료가 사후 70년까지란 점을 고려한다면 순수 저작권료 수익은 420억이라고.
1982년 5월6일 나훈아·김지미 이혼하다
인기가 절정에 올랐던 1976년, 나훈아는 당대 최고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76년 7월10일자 경향신문은 “여배우 김지미(37)가 7살이나 연하인 가수 나훈아(30)와의 결혼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전날 저녁 이들은 ‘처음으로 양가의 부모들이 대면한 자리에서 결혼을 승낙받았다’고 밝혔다”면서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72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던 ‘스타의 밤’ 공연 때였다고 한다. 서로가 연예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연예인이라는 생각에 뜻을 통하게 됐고 그 뒤 자주 만나왔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다. 김지미는 간통 혐의로 고소를 당한 이력이 있었고 나훈아는 군입대 전 결혼했던 부인과 막 이혼한 참이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이 차이 역시 따가운 눈총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김지미와 나훈아는 “남녀가 사랑을 하는데 나이차이가 무슨 문제가 되느냐”면서 “사는 날까지는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사랑을 다짐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82년 5월6일자 경향신문엔 두 사람의 파경 소식이 실렸다. 기사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 속에 불안한 스타트를 보였던 배우 김지미(42)와 연하의 가수 나훈아(35)의 결합은 6년 만에 파경으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고 전했다. 기자들과 만난 나훈아는 “지난 3월 심한 부부싸움을 한 이후 냉전이 계속 돼오던 중 오늘 아침 집사람이 너무 피곤해 참을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이혼을 제의했다”고 말했으며 “나도 서로의 피곤한 상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며 파경에 이른 직접적 이유를 밝혔다. 당시 나훈아는 “여자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전 재산을 위자료로 넘겨 화제가 됐다.
그는 김지미와의 이혼 1년 뒤인 1983년 ‘아빠가 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14세 연하의 후배가수 정모씨와의 열애설도 함께 불거졌다. 결국 1985년 나훈아는 정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11년 8월, 정씨는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나훈아가 오랜 기간 연락을 끊었으며 불륜을 저지르고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오랜 법정 공방 끝 2016년 재판부는 나훈아에게 “12억1000만원을 지급하라” 명하며 “두 사람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세 번째 이혼이었다.
김지미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 김지미는 1957년 ‘황혼열차’로 데뷔해 ‘춘향전’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녀는 화려한 미모만큼이나 굴곡진 결혼 생활로도 주목받았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김지미의 첫 결혼은 그녀가 18살이던 1958년에 이루어졌다. 12살 연상의 영화감독 홍성기와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홍 감독의 외도와 계속되는 영화 실패로 인해 두 사람은 4년 만에 이혼했다. 당시 김지미는 “어차피 맞을 소나기였다”는 심정을 밝히며 결별을 받아들였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이어진 두 번째 결혼은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유부남이었던 배우 최무룡과의 간통 혐의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끝에 두 사람은 재혼에 이르렀고,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과 영화계 실패로 인해 두 사람은 7년 만에 헤어지고 말았다. 당시 최무룡은 이혼 사유에 대해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 번째 사랑은 7살 연하의 가수 나훈아와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결혼 대신 6년간 동거를 이어갔다. 김지미는 한때 평범한 삶을 원했으나 나훈아가 가수 활동을 재개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고 밝혔다.


마지막 네 번째 결혼은 심장전문의 이상구 박사와였다. 7~8개월 동안 하루 두 통씩 편지를 보내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상구 박사는 그녀가 기대했던 ‘안정된 삶’을 선사하는 듯했다.
그러나 11년의 결혼생활 끝에 이들 부부는 결국 이혼을 선택했고, 이후 김지미는 “나는 남편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아내가 필요한 사람이었다”며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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