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변방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6. 3. 2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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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노래는 잠시 시름을 잊게 하고, 노래는 때때로 오가는 세월의 덧없음을 그래그래 다독여주기도 한다. 요즈음 중년여인들의 여고시절 카페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노래 중의 하나가 조영남이 부른 '모란 동백'이라고 한다. (생전의 황수관 박사가 대표로 있던 어느 송년모임에서 나도 이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렵지 않은 멜로디와 그 즈음 여인네들의 정서에 쉽게 닿을 듯한 노랫말 특히, '변방' 때문일 것이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변방이란 말은 슬프다. 변방이란 말은 외롭고 쓸쓸하다. 변방이란 말은 사회의 한 가운데에서 밀려난 60대 이후의 언어이다. 변방이란 말엔 찬바람이 불고, 변방이란 말엔 노을이 지고, 변방이란 말엔 눈물에 얼룩진 손수건 있다. 아무래도 변방은 타의에 의해 밀려나는 공간이 아니라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곳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는 외로움의 땅, 어느 새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느끼는 한숨의 영토이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어머니께서 죽음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시골집에서 병원까지는 산길을 포함해서 21㎞, 자동차로 정확하게 25분이 걸렸다. 하루에 두 차례, 어떤 때는 네 차례 다섯 차례 그 길을 오가곤 했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지나버린 40여년 세월이 착잡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모란 동백'을 부르고 내킨 길에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목 터지게 부르곤 했다. 아등바등한 날들의 부질없음이 손 시리게 만져지는 어느 여름 한철 일이었다.

교문 앞 학용품 가게 마루 밑에 운동화 벗어두고 고무신 갈아 신고 20리 산길을 다녔었다. 신발값을 아끼기 위한 등하교길 지혜(?)였다. 엊그제 같은 반세기 전 그때, 25번 국도를 벗어나 흙먼지 자욱하던 502번 지방도는 변방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그때 그곳은 삶의 중심이자 이 세상의 한가운데였었다. 종달새 하늘 높이 봄날을 지저귀고, 금강 상류 맑은 물은 청운의 푸른 꿈을 일깨워주었었다. 고무신 대신 자동차를 타고 종달새 노래 대신 CD를 듣는 이 길이, 어머니 먼 길 떠나시고 다시 찾은 이 길의 첩첩 산과 푸른 들이 왜 이렇게 짙은 변방으로 사무치는 것일까. 변방은 나의 신발, 나의 속옷이 되었기 때문일까. 유년의 언덕에서 트럼펫 불던 그대 분꽃 향기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리라.

그러나 나의 이 변방의식은 중환자실 한 뼘 침대 위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의 그때 그 순간에 비한다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이겠는가. 시종을 순장하는 왕후장상의 경우라 하더라도 죽음은 끝없이 변방을 떠도는 것, 떠돌다 떠돌다 미지의 어딘 가로 혼자 가는 먼 길이므로, 그것은 변방의 실존으로 고요히 고요히 휘발되는 것이다. … 그대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에도 뜨는 해 멈춰 서서 죽음을 배웅하지 않고, 피던 꽃 머리 숙여 한 생의 마지막을 묵념하지 않으리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얼마나 애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