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학살지능 “3살 아이 죽음까지 의도한 것”

정인환 기자 2024. 10. 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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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2023 가자의 참극]‘라벤더’ 활용해 공격 목표 자동 생성·‘아빠는 어디에’로 가정 내 용의자 공격… 첨단기술 빌려 더 잔혹해진 전쟁범죄
2024년 8월28일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를 향해 무인기를 발사하고 있다. REUTERS

인공지능(AI)이 표적을 식별한다. 동원 가능한 무기 체계가 정해지고, 예상되는 피해 규모도 계산된다. 무인기가 날아들어 표적을 공격한다. 폐허로 변한 거리에 주검이 즐비하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지난 1년여 동안 수없이 되풀이된 살풍경이다. 인권유린과 전쟁범죄마저 ‘자동화’했다. 디지털 인권단체 ‘액세스나우’는 이를 두고 ‘인공학살지능’이라고 표현했다. 

로봇 저격병 배치·‘자동 살상 지역’ 설정

2023년 10월7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은 AI 기술이 광범위하게 활용된 사상 첫 전쟁으로 기록할 만하다. 액세스나우는 2024년 5월9일 펴낸 보고서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사용하는 살상용 인공지능 기술을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무인기(드론) 등 자동화 또는 반자동화한 살상 무기체계다. 기관총과 미사일을 장착한 이들 무인기는 텐트와 학교, 병원, 주거지 등에 있는 민간인을 수색·교란·살상한다.

실제 인권단체 ‘유럽-지중해 인권감시’는 4월16일 펴낸 현장조사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에서 이스라엘 무인기가 아기 울음소리와 여성의 비명을 방송한 뒤, 주민들이 돕기 위해 거리로 나오면 조준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공상과학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군은 2021년 5월에도 가자지구를 11일간 공격했는데, 이미 당시에도 “AI를 동원한 사상 첫 군사작전”이란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액세스나우는 “이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접경지역에서는 ‘자폭용 무인기’와 ‘로봇 저격병’ 등이 배치됐고, (AI가 감시·통제하는) ‘자동 살상 지역’도 설정됐다”고 전했다.

둘째, 안면과 생체 인식 기술 활용이다. 뉴욕타임스는 3월27일치에서 팔레스타인 시인 모사브 아부 토하(31)의 경험담을 보도했다. 토하는 2023년 11월19일 피란길에 이스라엘군 검문소 부근을 지나다 붙잡혔다.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았지만, 불과 30분 남짓 만에 이스라엘군이 그의 신원을 상세히 확인한 뒤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는 뭇매를 맞으며 이틀간 조사를 받은 끝에 풀려났다. 그가 정기적으로 기고하던 미국 매체에 대한 항의가 조기 석방의 결정적 이유였다. 신문은 이스라엘군 관계자의 말을 따 “개전 초기엔 하마스에 납치된 피해자를 찾기 위해 안면 인식 기술을 동원했다. 하지만 곧 하마스 등 무장단체 연계 세력을 색출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AI 시스템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민간인을 무장세력이라고 지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셋째, 자동 목표물 생성 체계다. ‘가스펠’은 도로·건물 등 각종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공격 목표물을 고른다. ‘라벤더’는 개별 인물을 공격 목표물로 정한다. 여기에 무장세력 용의자가 집에 있을 때 그를 탐지해 공격하는 ‘아빠는 어디에’란 프로그램도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언론인이 함께 참여한 탐사보도 전문매체 ‘+972’가 2023년 11월과 2024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심층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번 전쟁의 민간인 피해가 극심한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체는 “비군사 목표물에 대한 무차별 공습과 AI 기술 활용을 통해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거대한 암살 공장’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정확히 계산한 ‘부수적 피해’

+972는 과거와 달리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주거지와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과 각종 기반시설 등 비군사적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대폭 강화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목적은 분명하다. 대중적 공포를 심어줘, 하마스의 굴복을 강요하려는 게다. 매체는 복수의 이스라엘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내 잠재적 목표물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갖고 있다. 특정 목표물을 공격하면 민간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도 계산이 가능하다.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민간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하마스 고위 지휘관 암살작전을 승인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수십 명 단위까지만 허용됐던 이른바 ‘부차적 피해’(민간인 사상)가 이젠 수백 명까지 늘었다. (…) 가자지구에선 어떤 일도 우연히 벌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3살 난 여아가 집에서 숨졌다면, 그건 이스라엘군 지휘부가 그 아이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결정한 탓이다. 아이의 죽음이 다른 목표물을 제거하기 위해 기꺼이 치러야 할 비용이란 얘기다. 우리는 하마스가 아니다. 로켓을 마구잡이로 쏘지 않는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미리 의도한 것이다. 매 가구를 공습했을 때 ‘부수적 피해’가 얼마나 발생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외곽의 탈알술탄에서 2024년 5월26일 저녁 발생한 피란민촌 공습 사건을 되짚어보자. 당시 사건으로 여성 12명과 어린이 8명, 노약자 3명을 포함해 모두 45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발과 함께 피란민촌이 화염에 휩싸인 터라 249명이 중화상 등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이스라엘 쪽은 “비극적 사건이다.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년여 수없이 되풀이했던 말이다. 동시에 탈알술탄 공습으로 하마스 고위인사 2명을 사살했다는 점도 공개했다. 사망자 45명과 부상자 249명이 사전에 허용된 ‘부수적 피해’였다는 얘긴가?

공격의 목표물은 라벤더 등 AI 프로그램이 결정한다. +972는 “개전 초기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라벤더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라벤더가 잠재적 공습 목표로 꼽은 건 무장세력 용의자 약 3만7천 명과 그들의 거주지였다. 일단 표적으로 정해지면, 현장 지휘관들은 AI의 판단 근거가 된 기초 정보를 재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매체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따 “라벤더가 하위급 무장대원이라고 지목한 표적에 대해선 정밀유도무기가 아닌 재래식 폭탄을 사용했다. 자칫 건물 전체가 무너져 피해가 커질 수 있음에도, ‘중요하지 않은 표적에 값비싼 무기를 낭비해선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고 덧붙였다.

AI가 표적 지목하고 재래식 폭탄 사용

6월8일 하마스에 붙들린 인질을 구출하겠다며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의 인파가 붐비는 시장통에서 이스라엘군이 75분 남짓 군사작전을 벌였다. 미국산 아파치 공격용 헬리콥터와 탱크, 미사일과 무인기가 동시에 출격했다. 인질 7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4명이 구출됐다. 어린이 64명과 여성 57명을 포함해 누세이라트 주민 274명이 숨지고 698명이 다쳤다. 과거와 미래의 전쟁이 만나 벌인 학살극이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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