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그대로 베꼈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기아를 디자인 맛집으로 만든 첫 K 시리즈

PPL이라는 말 이제는 다들 익숙하시죠?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상품을 노출하는 간접 광고를 뜻하는 말입니다. 자동차는 온갖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PPL 제품 중 하나입니다. 극의 흐름을 방해할 요소가 비교적 적은 편이죠. 자동차가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한 제품인 만큼, 주인공과 주변인이 타는 차 혹은 악당이 타는 차로 활용되며 시청자 혹은 관객에게 브랜드와 모델을 각인시키기에도 좋죠. 등장인물의 소득 수준을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는 가격대의 차를 타거나 특정 장면이 하나의 브랜드로 도배가 된 경우에는 몰입감을 깨기도 하지만요.

다들 기억에 남는 자동차 PPL 하나쯤은 있을 텐데요. 저에게도 PPL로 인상 깊게 다가온 자동차 모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이야 모터쇼나 신차 발표회라는 으리으리한 행사가 제게 익숙하지만, 어린 시절 저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소개할 이 차의 첫 등장은 저에게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죠. 이번에는 기아의 준대형 세단 K7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K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이자 기아차를 디자인 맛집으로 만든 개국 공신, 등장과 함께 젊은 아빠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차입니다.

현대차와 한 식구가 된 기아는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 대세로 자리 잡은 '플랫폼 공유'를 적극 도입한 덕에 외관마저 닮은 '형제차'들이 같은 차급으로 판매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소비자에게 기아차는 그저 '현대차의 염가형 모델'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지금은 나아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기아차에는 구형 옵션과 파워트레인 / 현대차에는 신형 옵션과 파워트레인을 시간차를 두어 적용하는 등 동급 기아차와 현대차를 비교하면 현대차 쪽의 상품성이 조금이라도 우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죠. 한 지붕 아래에 있었지만 그룹 내 경쟁 구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차 출시 일정이나 신기술 적용 부분에서 서로 견제가 이루어졌던 것이죠.

그렇게 자신만의 색을 점점 잃어가던 기아는 고심 끝에 돌파구를 찾아내게 됩니다. 바로 매력적인 디자인이었죠. 지금의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경영을 내세웠어요.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도 그때 결정된 '외부 전문가 영입'이라는 파격적인 인사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요즘 차를 선택할 때 자동차 디자인의 비중이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K5가 YF쏘나타를 판매량으로 이겼을 때 왜 K5가 이겼는지 묻는 사람들이 딱히 없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오직 기아만의 세단 'K']

포텐샤 이후 맥이 끊어진 기아차의 준대형차 진출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습니다. 2003년 출시된 오피러스의 하위 트림이 이 자리를 맡고 있었지만, 원래 현대 다이너스티의 후속 차종으로 출시되었을 모델을 넘겨받은 것이었기에 당시 젊은 감각을 내세웠던 기아와는 결이 맞지 않는 차였죠. 체급도, 가격도 중형차 로체와는 간극이 아주 컸고요.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대형차 수요는 점점 늘어가는데, 로체를 타던 소비자들이 다음 차로 오피러스를 택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아주 드물었습니다. 결국 이는 고객 이탈로 이어졌습니다. 기아 입장에서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야 할 명분이 생긴 것이죠.

당시 그랜저의 고리타분함에 거부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그보다 젊은 감각의 르노삼성 SM7과 혼다 어코드를 선택한 것도 기아의 새로운 중대형 세단 프로젝트 'VG'가 시작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침내 2009년 4월, 서울 모터쇼에서 공개된 KND-5 'VG 컨셉트카'는 기아에 대한 열띤 기대감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해 10월 공개된 양산형 모델은 완전히 새로운 이름, K7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름부터 뭔가 다르게 가겠다는 느낌이 명확하죠.

K7의 K는 기아(KIA) / Korea / 강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크라토스(Kratos) /  운동성을 의미하는 단어 키네틱(Kinetic)의 앞글자 K를 따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이름은 이후 출시된 기아차의 주력 세단 라인업에 적용됐습니다. 뒤에는 차급을 의미하는 숫자 7을 넣어 대형 세단임을 나타냈죠. K7으로 시작된 기아차의 세단 라인업 K 시리즈는 동급인 현대차와 완벽히 차별화되는 디자인을 보여주며 자동차 시장에서 기아차의 존재감을 키우는 데 확실한 역할을 했습니다. 확실히 포르테, 로체에 비하면 임팩트가 있었어요.

[K7(2009~2012)]

디자인 경영을 내세운 이후 기아차의 디자인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중에서도 K7은 기아차 디자인 경영의 정점이었죠. VG 콘셉트 카를 거의 그대로 이식한 외관은 당시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구매가 중장년층에서 이루어지는 준대형 차급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죠. 전면부는 기아차가 패밀리룩으로 내세웠던 호랑이 코 그릴을 중심으로 날렵한 헤드램프와 범퍼 디자인이 더해져 맹수를 연상시키는 공격적인 인상이었습니다. 여기에 당시에는 생소했던 LED 포지셔닝 램프가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듯 신선한 느낌을 더했죠. 하위 트림은 크롬 베젤 헤드램프와 세로형 그릴로 색다른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스포티한 전면부의 인상은 측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가 튀어 나가기 전 자세를 낮추듯 쐐기형으로 빚은 차체. 그동안 국산 대형 세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성이었어요. 여기에 휠 하우스를 가득 채우는 18인치 알루미늄 휠은 수입차와 비교했을 때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졌던 국산 차의 아쉬움 2%를 채워 넣으며 수입차에도 뒤지지 않는 폼을 만들어 냈습니다. 여담으로 멀티 스포크 타입의 18인치 휠은 제네시스 쿠페의 19인치 휠과 함께 만능 휠로 불리며 애프터 마켓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웬만한 차에 어울리는 준수한 디자인인 데다 순정부품이었기 때문에 호환성도 좋고 구하기도 쉬웠죠.

후면부도 남달랐습니다. 날카로운 LED 테일 램프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듀얼 머플러는 '매립형 머플러 팁'으로 최신 트렌드에 발맞췄습니다. 또한 뒤로 갈수록 치켜 올라가는 캐릭터 라인, 높게 배치된 리어 램프로 인해 붕 떠 보일 수도 있던 범퍼에 두꺼운 크롬 라인을 더해주며 균형을 잡아 주었죠. 눈에 띄는 디테일이었습니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아우디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우디 출신의 차량 디자이너를 내세우면 대부분 해결됐어요. 차체 크기도 그랜저TG는 물론, 나중에 출시된 HG를 상회할 정도로 커서 대형 세단에 걸맞은 듬직한 덩치를 가졌는데요. 스포츠 세단을 추구하는 차들이 대부분 그렇듯 육안으로는 실제 사이즈보다 조금 작아 보였습니다. 덕분에 대형 세단 특유의 무겁고 둔한 인상보다는 잘 달릴 것 같은 날렵한 인상을 주었죠.

[인테리어도 '엣지' 있게]

실내 역시 외관의 날카로운 인상과 젊은 감각을 그대로 품었습니다. 기아차 브랜드 컬러인 붉은 조명을 메인으로 곳곳에 꺾쇠 형태의 각을 세워 숫자 7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고급 나파 가죽 시트, 우드 그레인 대신 금속과 블랙 하이그로시 장식으로 마감해 대형 차임에도 고급스러움과 도시적인 느낌을 동시에 챙겼죠. 색다른 고급 차를 원했던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당시 유행어로 나름 엣지 있게 꾸며진 인테리어였습니다. 특히 아이보리를 넘어 아예 새하얀 시트로 꾸며진 실내를 실물로 봤을 때의 느낌은 신세계였죠.

거대한 Y자를 이루는 대시보드, 특히 층을 나눠 입체감이 돋보이는 크래쉬 패드 디자인은 지금 봐도 독특한 구성입니다. 갈라진 틈에는 번쩍이는 크롬 라인을 넣어 강조했고, 밤에는 붉은색의 간접 조명을 더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다만 각에 너무 집착해서일까요. 방패 형태의 센터페시아 디자인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지점이었습니다. 어느 고전 로봇 캐릭터의 상체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죠. 번쩍이는 하이그로시 패널 위에 SM7처럼 수많은 버튼을 나열했는데요. 직사각형과 원형, 사다리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다소 산만해 보인다는 지적이 많았어요.

그래도 일자 형태의 '부츠타입 기어레버'와 덮개를 더한 수납공간으로 마감한 센터페시아 하단은 지금 봐도 깔끔한 인상이었습니다. 여기에 컬러 LCD 정보장을 더한 계기판 / 12개 스피커의 'JBL 사운드 시스템' / 전방 카메라 / 현재 UVO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MOZEN(모젠)을 적용한 대화면 DVD 내비게이션 / 열선 스티어링 휠 / 앞 좌석 통풍 시트 등 내부를 고급 차 다운 호화 옵션으로 채웠죠. 

차선 이탈 경보와 타이어 공기압 경보 장치 등 플래그쉽 세단에나 있었던 안전 사양을 챙긴 것도 좋은 부분이었습니다. 당시 대세로 자리 잡은 '파노라마 썬루프'를 추가해 개방감을 높였고, 썬루프가 빠진 모델에는 관광버스에서나 보던 대형 루프 조명을 달아 야간 운행 시 색다른 즐거움을 준 것도 신선했죠.

넉넉한 차체 크기 덕분에 앞 좌석과 뒷자석 모두 면적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죠. 다만 대형 차임에도 패밀리카의 필수 덕목인 뒷자석 열선 시트를 상위 등급 프레스티지에서야 추가할 수 있었고, 하위 모델에서는 선택조차 할 수 없어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파워트레인은 4기통 2.4L 쎄타 가솔린 엔진과 V6 2.7L 뮤 가솔린 엔진 / LPI 엔진을 탑재해 기존에 판매되던 그랜저TG와 겹쳤지만 3.5L로 배기량을 키운 V6 람다 가솔린 엔진을 더해 그랜저보다 출력 면에서 앞섰습니다. 변속기는 모두 6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려 넣어 동급 차량 중에서 효율이 가장 뛰어났어요.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2.4 / 2.7L 모델은 앞서 그랜저에서 충분히 검증된 파워트레인이었고 무난한 출력과 연비, 정숙성을 제공했지만 공격적인 외관에 비해 만족스러운 힘을 선사하진 못했습니다. 진가는 3.5L 모델에서 발휘됐죠. 평소에는 부드럽지만 엑셀에 힘을 실으면 거대한 차체를 시원하게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운동 성능에 초점을 맞춘 단단한 하체는 기존 국산 고급 차와 비교하면 색다른 감각이었는데요. 주행 환경에 따라 감쇠력을 조절할 수 있는 '전자 제어 서스펜션'까지 탑재해 기아차의 하체 세팅 능력이 한 단계 진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죠.

평소에는 부드럽지만 엑셀에 힘을 실으면 거대한 차체를 시원하게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운동성능에 초점을 맞춘 단단한 하체는 기존의 국산 고급 차와 비교하면 색다른 감각이었는데 주행환경에 따라 감쇠력을 조절할 수 있는 전자제어 서스펜션까지 탑재해 기아차의 하체 세팅 능력이 한 단계 진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죠. 그러나 당시만 해도 고급 차의 덕목은 출렁이듯 부드러운 승차감이었기 때문에 주 소비자인 중장년층에게는 그저 딱딱하고 불편한 승차감일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차 중심의 탄탄한 하체가 환영 받고 있지만요. 결국 일부 매니아만 찾는 사양이 됐고, 이후 연식 변경 모델을 출시하며 슬쩍 빠져버렸습니다. 교체 비용도 일반 서스펜션에 비하면 비쌌기 때문에 탈거 후 일반형 서스펜션으로 다운그레이드 하거나 아예 애프터 마켓 제품을 장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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