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의 경영 컨트롤 구조가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다핵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전자·건설·금융을 각각 조율하는 '3대 태스크포스(TF)'와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 '경영진단실'이 권력 지형을 새로 만들었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사업지원TF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미전실 같은 전통적 단일 컨트롤타워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삼성 권력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강력한 특정 조직에 모여 있다.
'정현호·박학규' 사업지원TF, 굳건한 리더십 유지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미전실 해체 이후 가장 직접적인 후신으로 불린다. 그룹 차원의 전략·인사·재무 기능이 흩어진 뒤에도 이를 조율할 필요성이 여전한 가운데 그 공백을 메웠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사업지원TF는 임원 17인 체제를 유지했다. 지난해 말 이후 신규 영입이나 인사이동이 전혀 없었던 만큼 조직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기조가 드러난다.
정현호 부회장이 총괄수장으로 TF를 지휘하고 박학규 사장이 2인자로서 핵심 역할을 하며 굳건한 투톱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구도가 '포스트 미전실'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사주를 활용한 성과 보상이다. 삼성전자가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일부를 장기성과인센티브(LTI)로 핵심 임원들에게 배분한 가운데 그 중심에는 사업지원TF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 부회장이 보통주 1만3419주, 박 사장이 9820주를 받았다. 취득단가는 주당 7만400원으로 두 사람에게 지급된 자사주는 각각 9억4000만원, 6억5000만원 상당이다.
다수의 부사장·상무급 임원들 역시 상당한 규모의 자사주를 받았다. 김용국 부사장(780주·5500만원), 김장경 부사장(1357주·9500만원), 문희동 부사장(1849주·1억3000만원), 송방영 부사장(1213주·8500만원), 오정석 부사장(1436주·1억100만원), 이제현 부사장(1708주·1억2000만원), 임병일 부사장(1008주·7100만원), 주창훈 부사장(2893주·2억300만원), 최광보 부사장(1882주·1억3000만원), 구자천 상무(1057주·7400만원), 유성호 상무(282주·2000만원), 이지훈 상무(837주·5900만원), 허준영 상무(275주·1900만원) 등 13명이 대상이다.
최권영 부사장과 조용석 상무는 사업지원TF 임원이지만 이번 자사주 상여 지급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삼성디스플레이 출신으로 지난해 말 TF 임원에 합류해 지급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수 있다. 지급 대상이 삼성전자 자사주인 만큼 소속 법인이나 보직의 특성에 따른 제도적 제외가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자사주 성과 보상은 주식 배분을 넘어 삼성이 핵심 조율 조직에 제도권 차원의 신뢰를 공식적으로 부여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과거 미전실이 '그림자 권력'으로 불렸던 것과 달리 사업지원TF는 주주환원 정책과 맞물린 투명한 보상구조 안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 부회장의 경우 의미가 크다. 그는 등기임원 시절 삼성전자 주식을 가진 적이 있지만, 최근 수년간은 보유 내역이 없다가 이번 자사주 상여금 지급으로 다시 개인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단순한 현금성 성과급을 넘어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권자가 주주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비전자 계열사' 진두지휘하는 삼성의 또 다른 두 날개
삼성은 사업지원TF 외에 건설과 금융 분야에서도 별도의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다. 비(非)전자 계열사를 조율하는 '설계·조달·시공(EPC)경쟁력강화TF'와 금융 계열사를 아우르는 '금융경쟁력제고TF'가 나머지 두 축이다.
삼성물산 산하 EPC경쟁력강화TF는 대형 플랜트·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계열사들의 구심점이다. 현재 강병일 사장이 TF장을 맡고 있으며 장갑봉·김종훈·윤균중·정용석 상무가 핵심 멤버로 포진했다. 이 조직의 인적구성은 지난해 말과 같아 사업지원TF와 마찬가지로 안정적 운영 기조를 보여준다.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물산 건설부문 등이 추진하는 해외 플랜트 수주, 원가경쟁력 강화, 프로젝트 리스크 관리 등은 이 TF를 거쳐 조율된다. 특히 중동·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초대형 플랜트 수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EPC경쟁력강화TF는 개별 계열사가 중복투자나 무리한 수주에 나서지 않도록 조절한다.
삼성생명 산하 금융경쟁력제고TF는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를 총괄한다. 이승호·이종훈·최창희 부사장이 핵심 멤버로서 자본적정성 관리부터 신사업 투자 방향까지 금융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책임지고 있다.
금융 계열사들이 각기 다른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도 그룹 차원의 유기적 조율은 불가피하다. 보험사의 투자자산 운용 전략, 증권사의 투자은행(IB) 전략, 카드·캐피털사의 여신 전략 등이 제각각 움직일 경우 그룹 전반의 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TF는 이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계열사 간 전략을 정렬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익 기반을 다진다.
새롭게 부상한 경영진단실
최근 삼성 내부에서 주목받는 곳은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의 경영진단실이다. 지난해 말 신설된 이 조직은 최윤호 사장이 지휘하며, 주요 사업 부문에 대한 고강도의 전략·재무진단을 이어가고 있다. 최 사장은 삼성의 대표 재무통으로 미래전략실 전략팀, 사업지원TF,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CFO), 삼성SDI 대표이사(CEO) 등 굵직한 보직을 두루 거쳤다.
경영진단실은 출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룹의 핵심 사안을 점검하는 전위기지로 빠르게 부상했다. 과거 미전실이 정책과 전략을 전담했다면 현재는 그 기능이 사업지원TF와 삼성글로벌리서치로 분산된 상태다.
이 가운데 경영진단실은 단순한 연구조직을 넘어 주요 사업 현안에 대한 진단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조율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에 단일 컨트롤타워가 해체된 후 삼성의 권력 구조가 다핵 체제로 고착되는 동시에 내부 권력의 지형이 재편되는 과정을 드러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은 올해 초 정례회의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삼성 컨트롤타워 부활은 준감위 내부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할 정도로 여러 관점에서 평가되는 부분"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여러 차례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이끌어나갈지는 삼성이 충분히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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