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바다 환경을 살리다: 컷더트래쉬, 애이애이애 임소현 대표 인터뷰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을 사로잡은 ESG 패션 플랫폼
이승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임소현: ESG 패션 플랫폼 ‘컷더트래쉬’대표 임소현입니다. 패션 브랜드 ‘애이애이애(aeiaeiae)’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로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을 활용해 옷과 가방을 만들어요.
이승환: 어… 제가 무식해서…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의 차이가 뭐죠?
임소현: ‘리사이클링’은 일반적인 재활용’이에요. 그런데 수거한 재활용품을 그대로 쓰기는 힘들잖아요? 예로 수거한 페트병을 갈아서 원단에 활용해요. 이걸로 옷을 만들면 ‘리사이클링’인 거죠. 업그레이드(Upgrade)를 붙인 ‘업사이클링’은, 있는 그대로 재탄생시키는 거예요. 예로 현수막을 캠핑 의자로 활용할 수 있고요. 프라이탁도 방수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브랜드예요.
이승환: 아하. 하는 일을 나눠서 설명해 주시겠어요?
임소현: 먼저 ESG 패션 플랫폼 ‘컷더트래쉬’는 폐어망, 플라스틱 등을 수거, 재활용해 만든 옷, 가방, 액세서리 등으로 기업과 콜라보해요. 삼성전자와는 리사이클링 의류 런웨이, LG유플러스와는 폐현수막을 활용한 핸드폰 스트랩 제작, 러쉬와는 친환경 소재 포장지, 항만공사와는 폐어망 가방, 이런 다양한 콜라보를 했어요.
이승환: 오, 신박하네요. 패션브랜드는 어떤가요?
임소현: 이건 우선 저희 디자인을 검증받고 싶어서 SS시즌 제품을 내놓았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티셔츠 한 종이 5천 장 이상 판매됐고, 덕택에 10월 말에는 무신사 단독 팝업까지 연결됐어요. 이렇게 두 가지 축을 계속 발전시켜 갈 계획입니다.
패션으로 바다를 살리겠단 마음으로 폐어망을 업사이클링
이승환: 어쩌다 패션과 환경을 접목하게 된 거죠?
임소현: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했어요. 전공이 패션이라, 대학 때부터 폐의류 판매점에서 옷을 엄청 싸게 사서 리폼해서 판매했어요. 그러다 패션 산업이 환경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옷이 버려지면 재활용이 아예 안 돼요. 소각하거나 매립해야 하죠.
이승환: 그래서 요즘 옷 사입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군요.
임소현: 네. 그래서 지속 가능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넷플릭스 해양 환경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를 인상 깊게 봤어요.
찾아보니 육상 쓰레기는 패션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데 해양 쓰레기는 아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어머니가 제주 분이셔서 제가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쪽으로 뭔가 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버려지는 폐어망 그물로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걸로 가방을 만들어보자.
이승환: 그래서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임소현: 처음에는 관련 업체들에 연락해서 버려지는 폐어망이 없냐고 물어봤어요. 근데 자기들은 팔거나 유통하지, 그 뒤는 잘 모른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바다에 가서 어민들께 여쭤보기도 했죠. 어린 여자애가 먼 바다까지 오니 황당해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한 선장님이 어망 수선 업체를 소개해 주셨고, 거기서 받은 폐어망으로 가방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이승환: 가방은 잘 만들어지던가요?
임소현: 완전히 망했어요. 봉제 공장에서 10개 정도 만들고는 도저히 못 하겠으니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 어망이란 게 되게 거칠잖아요? 도저히 제조 각이 안 나왔던 거죠.
그때 마침 ‘4개 항만공사 ESG 해커톤’이라는 대회를 알게 됐어요. 항만공사의 도움을 받으면,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에 지원했고 대상을 탔어요. 그리고 항만공사 관계 귀빈들에게 드릴 업사이클링 기념품을 만들 기회까지 받을 수 있었죠.
러쉬 코리아와 첫 콜라보를 시작
이승환: 오오, 축하드립니다.
임소현: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서의 상품성은 없었어요. 그만큼 버려진 걸 그대로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이 돈이 많이 들어요. 다음에 만든 것이 멸종위기 해양 생물을 담은 티셔츠였어요. 오가닉 코튼 원단을 활용했어요.
오가닉 코튼 원단은 3년간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농지에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 생산된 면화로, 토양의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이승환: 아… 돈과 시장이라는 현실에 부딪혔군요.
임소현: 네. 그전까지는 업사이클링이나 리사이클링을 통해 쓰레기를 디자인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현실적인 고민이 생긴 거죠. 그러다가 발견한 게 ESG라는 큰 흐름이었어요. 저 같은 작은 스타트업은 돈이 없어서 하기 힘들지만, 큰 회사들은 이미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지키는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더라고요.
이승환: 맞습니다. 다들 환경 관련해서 돈과 시간을 많이 쓰죠.
임소현: 네. 다들 ESG에 많은 비용을 쓰지만, 또 티는 안 나거든요. 저는 이걸 제품으로 드러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바다를 위해 쓰레기를 디자인합니다’라는 소셜 미션으로 이런 제품을 만들었다고 블로그에 하나씩 올렸어요. 이걸 정리해서 공공기관과 기업에도 메일을 드렸고요.
그러니까 신문사, 방송국, 유튜브 채널에서 하나하나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러쉬코리아에서 첫 콜라보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승환: 헐. 그 비누 만드는 러쉬요?
임소현: 네네. 친환경을 가장 먼저 내세운 글로벌 기업이죠. 러쉬코리아가 20주년을 맞아서 친환경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과 콜라보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지속 가능한 리사이클 원단으로, 포장용 패브릭 보자기를 만들게 됐어요.
앞면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디자인 요청을 주셨고, 뒤에는 공정을 적어서 리사이클로 만들었다는 것을 표시했죠. 대나무 칫솔 세트도 함께 만들어서 납품했고, 잘 마무리해서 20주년 파티도 함께할 수 있었어요.
삼성전자, LG유플러스와도 콜라보
이승환: 첫 고객부터 대박이네요.
임소현: 네네. 러쉬코리아 콜라보를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올리니, 정말 많은 업체에서 콜라보를 제안해 주셨어요. 형태도 다양했고요.
예로 삼성전자는 삼성 청소기 안에 폐어망을 리사이클한 필터가 들어갔고, 폐어망을 업사이클한 스타트업인 저희와 협업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삼성전자 청소기를 들고 런웨이를 하는 무대에서 재활용 원단으로 만든 저희 옷을 입는 형태로 콜라보했죠.
이승환: 러쉬에 삼성에 정말 굵직한 곳이 많네요.
임소현: LG유플러스도 있었어요. 여기는 천막의 소재인 ‘어닝(awning)’을 활용했어요. 버려지는 어닝에 디자인을 입혀 업사이클해서 가방과 핸드폰 스트랩을 만들었어요. 덕택에 저희가 다루는 업사이클링 영역도 폐어망에서 어닝으로 넓어졌죠.
또 커피숍 ‘더벤티’는 페트병을 리사이클한 폴리 원단으로 근무복을 제작했어요. 이건 정말 환경과 실용성을 합친 거라 의미가 컸지요.
이승환: 정말 다양한 작업을 하셨네요. 이런 친환경 관련 작업을 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나요?
임소현: 없어요. 엄청난 노동이에요. 기술도 필요하지만 막노동이 장난 아니에요. 폐어망은 거의 걸레짝처럼 오거든요. 더럽게 쓰고 상한 걸 워싱 돌려야 하는데, 이게 원단이 아니니까 한 땀 한 땀 다 재단을 해야 해요. 패션 원단이 아니다 보니 공임도 높고요. 그래서 직접 하는 곳이 거의 없고, 저희 같은 험한 일 안 가리는 스타트업에 요청이 오는 거죠.
이승환: 있는 걸 그대로 다시 쓰는 업사이클이 참 힘드네요.
임소현: 네, 사실 리사이클은 제조사에서 하는 일은 그리 번거롭지 않아요. 리사이클링 원사만 구매하면 원하는 원단을 뽑아낼 수 있죠. 그 원단을 여러 겹 겹쳐놓고 철형, 금속판으로 한꺼번에 재단하면 돼요.
반면 업사이클 제품은 정말 수고로워요. 예로 어닝 천막을 업사이클링해서 가방을 만든다, 수거해온 어닝 사이즈와 모양이 제각각이라서, 하나씩 깔아두고 재단해야 해요. 공정 하나하나가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죠. 좀 장인 정신으로 해야 한달까요.
업사이클, 리사이클, 원단… 환경과 패션을 엮다
이승환: 덕택에 뭐 대기업들과 콜라보도 하고… 좋지 않습니까?
임소현: 그렇죠. 하지만 마음 한켠에 계속 아쉬움은 있어요. 리사이클링 역시 환경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린 워싱’이라는 비판도 있거든요. 업사이클링은 쓰레기로 버려진 뭔가를 그대로 쓰기에 환경을 전혀 오염시키지 않아요.
반면 리사이클은 폐플라스틱 등을 갈아 소재를 만들지만, 결국 그 옷은 소각이나 매립되는 게 마무리죠. 어쩌면 폐플라스틱으로 계속 쓰는 게 좋았을 수도 있고요.
이승환: 참 복잡하네요;;;
임소현: 네. 업사이클링 사례로 프라이탁을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프라이탁 하나가 워낙 특이한 경우에요. 높은 브랜드 이미지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에 그 공수를 들일 수 있죠. 또 규모의 경제를 만들었다 보니, 방수포를 대규모로 수집하러 다닐 수도 있고요.
허나 환경을 지키겠다고 업사이클링에 도전한 대부분 업체들은 포기하거고 접거나, 아니면 리사이클이나 생분해 원단 쪽으로 전환하거나 하고 있어요.
이승환: 생분해 원단은 어떤 거죠?
임소현: 폐페트병 리사이클 원단이 가장 효율이 높지만, 폐어망, 타이어 등 다양한 쓰레기도 리사이클 원단을 만들 수 있어요. 저희도 이런 원단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원단을 직접 다루면서, 이를 디자인해서 제품화까지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기업체와 공공기관에서 ESG 콜라보 제의가 계속 오는 것 같아요. 원단부터 생산까지 한 번에 하면 비용 절감에 커뮤니케이션도 편하니까요.
이승환: 작은 업체에서 원단 개발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어떻게 계속하실 생각이에요?
임소현: 요즘은 수입을 좀 알아보고 있는데요. 국내에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는데, 일본에서 버려진 폐의류를 다시 원단으로 만드는 기술이 나왔더라고요. 기존에 리사이클링이 그린 워싱이라 비판받았던 게, 결국 옷 만들어봤자 결국 마지막은 재활용이 안 된다는 거였는데요.
이게 자리잡히면 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아요. 현재 시제품을 만드는 중인데, 여기에 성공하면 국내에서 좀 더 큰 사회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신사 테라스 성수 단독 팝업에 이어 더 환경을
이승환: ESG 패션 시장도 참 다양하네요. 앞으로는 어떤 쪽으로 나아갈 생각이세요?
임소현: ESG 패션 플랫폼 ‘컷더트래쉬’는 대충 이야기한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다양한 기업들, 공공기관들과 함께 콜라보를 해갈 계획이고요. 저희 의류 브랜드 ‘애이애이애(aeiaeiae)’도 좀 더 성장시키고 싶어요. 10월에는 무신사 테라스 성수에서 단독 팝업도 했어요.
이승환: 무신사 테라스 성수에서 단독 팝업이요? 어떻게요?
임소현: 무신사가 직접 유망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해서 지원하는 ‘무신사 인큐베이팅’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선정된 거죠. 그간 친환경을 제품의 강점으로 내세웠는데요, 사실 소비자에게는 친환경은 가점 요소일 뿐 구매 이유가 되진 않잖아요. 그래서 제 디자인이 시장에서 먹히는지 한번 검증받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무신사와 고객들이 좋게 봐주신 거죠.
이승환: 오, 축하드립니다. 그러면 애이애이애는 ESG 소재를 활용한다거나 하지는 않나요?
임소현: 다는 아니고 점진적으로 친환경 제품 비중을 늘려가고 있어요. 우선은 ‘의류’와 ‘IP’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요. 최근에 저희 애이애이애 로고를 활용한 그래픽으로 여성용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IP를 빌려준 대가로 매출의 일정 부분을 받는 거죠. 앞으로 ESG 브랜드로 더 자리잡을수록 좋은 제안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지속가능한 소재를 점점 늘려가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승환: 투자를 받는 것도 생각 중인가요?
임소현: 일단은 자립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컷더트래쉬가 기업들과 ESG 콜라보하는 걸로 잘 자리 잡았고, 애이애이애도 출발이 좋아서 기대는 하고 있어요. 양쪽 모두 충분히 자생하는 모습을 보이며, 좀 더 큰 꿈을 만들어갈 때 투자도 함께 고민할 생각입니다.
이승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임소현: 누군가는 허황된 꿈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글로벌 기업 ‘애플’에 버금가는 다양한 영향력을 갖춘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디자인과 사용성 등 효과적인 ‘단순화’가 그들의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비우는 게 곧 채우는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이 말을 새기고 사업을 해 나가고자 해요.
제가 꿈꾸는 지속 가능성과 디자인 철학에 딱 들어맞는 문구입니다. 비우는 기업가, 디자이너로 비움이 있는 기업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ceo@cutthetrashgroup.com로 편히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