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74조·보험 24조 푼다…'생산적 금융'행 자본규제 혁신 보니

왼쪽부터 금융감독원 전경과 금융위원회 현판 /사진=블로터 DB

금융당국이 은행과 보험의 자본규제를 손질해 약 99조원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부동산보다 기업과 전략산업으로 자금 흐름을 돌리는 '생산적 금융'을 시현하기 위해 은행권의 자본 부담을 먼저 낮추고, 보험권에서 관련 인프라 및 정책펀드를 겨냥한 투자 여력을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국은 은행·보험업권과 관련해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공개했다. 이번 조치로 은행권에서 최대 74조5000억원, 보험업권에서 최대 24조2000억원 등 총 98조7000억원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은 은행권이다. 방안의 큰 축은 운영리스크 손실인식 합리화, 구조적 외환포지션 확대, 내부신용평가모형 개선이다. 금융사고와 환율 변동, 모형 승인 지연 등으로 묶여 있던 자본 부담을 덜어 기업대출과 실물 부문 자금공급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운영리스크 규제 손질이다. 당국은 재발 가능성이 낮은 대규모 손실사건의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운영리스크 산출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연평균 손실금액의 5% 이상이면서 최소 3년 이상 운영리스크로 인식한 사건이 대상이다. 여기에 내부통제 개선과 제도개선, 충분한 보상, 법률쟁송 종료 등 잔여 법률리스크 해소 여부까지 심사해 승인 여부를 정한다.

해당 조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은행권 대형 금융사고가 자본비율에 장기간 부담으로 남는 구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보상금과 과징금 등 손실사건은 자본비율 산출 때 10년간 반영되는데, 이를 일부 조정해 생산적 금융으로 돌릴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당국은 승인 문턱을 낮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승인 이후 유사 손실사건이 재발하거나 해당 사업이 재개되면 배제한 손실을 다시 반영하고 일정 기간 재신청도 막는 페널티를 두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구조적 외환포지션 인정 범위도 넓힌다. 기존 해외점포 출자금에 더해 해외 장기 지분투자와 해외점포 이익잉여금까지 시장리스크 산출 제외 대상으로 확대한다. 환율 변동에 따른 자본비율 흔들림을 줄여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은행권의 자본관리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내부신용평가모형 개선도 병행된다. 은행이 신용위험 변별력이 떨어진 평가모형을 재개발할 경우 감독당국이 유사 사례 일괄심사, 중점사항 위주 점검 등을 통해 변경승인을 더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단순히 심사 기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성 있는 기업을 더 정확히 가려낼 수 있도록 해 생산적 분야 대출 확대와 연결하겠다는 의미다.

이 조치들이 합쳐지면 은행권 자본여력은 크게 늘어난다. 당국은 운영리스크 손실인식 합리화로 5대 은행지주 기준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최대 26bp(1bp=0.01%p), 구조적 외환포지션 확대에 따라 최대 12bp 개선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내부신용평가모형 변경승인 효과까지 더해지면 자본비율 상승 여지가 추가로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본규제 합리화 효과 추정 /자료=금융감독원

주목할 대목은 이번 조치가 은행권 자금 흐름 재설계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이다. 당국은 이미 내부등급법상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높였고, 비상장주식과 정책목적 펀드 관련 위험가중치도 손본 상태다. 부동산 관련 자본부담은 높이고, 기업과 미래산업 관련 자본부담은 낮추는 방향을 이어가는 셈이다.

보험업권은 은행권을 보조하는 축으로 붙었다. 정책프로그램 장기투자와 벤처투자, 인프라 투자에 대한 위험계수를 낮춰 장기자금 공급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프로그램 투자 시 기존 49% 수준이던 위험계수를 20% 이하로 낮출 수 있게 하고, 적격 벤처투자 위험계수도 49%에서 35%로 인하한다. 신재생에너지와 AI 기반시설 등 비전통적 인프라도 적격 인프라로 인정해 20% 특례를 적용하기로 했다.

보험사의 대출·채권 운용 규제도 일부 완화한다. 자산과 부채의 현금흐름이 유사할 경우 보험부채 할인율 산정에 자산 수익률을 반영하는 매칭조정 제도를 손질해 활용도를 높인다. 기존에는 현금흐름이 고정되고 100% 매칭돼야 해 사실상 쓰기 어려웠는데, 변동금리 자산에도 적용을 허용하고 미스매칭률 요건도 완화할 방침이다. 정부 일부보증 인프라 대출에 대해서도 보증분을 무위험으로 분류해 신용위험계수를 낮춘다.

펀드 관련 규제도 조정된다. 레버리지펀드 위험액 측정 방식을 손보고, 블라인드펀드의 미집행 약정에 대해서는 신용환산율을 적용해 과도하게 높은 위험액이 잡히는 문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보험사가 자체 통계에 기반한 내부모형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기반도 정비하고, 수익증권 내 금리부자산을 유동성 프리미엄 산정에 반영해 투자여력 측정도 더 정교하게 바꿀 계획이다.

다만 보험권에도 부담 강화 항목은 있다.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LTV 60~80% 구간 위험계수는 3.5%에서 4.0%로 상향된다. 은행권과의 규제 형평성을 맞추고 부동산 관련 자산 쏠림을 완화하려는 조치다. 결과적으로 보험권 역시 부동산보다 생산적 분야 투자로 자금이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추가 자금공급 여력이 산업 현장 전반에 확산돼 위기 극복과 경제 재도약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며 "은행은 미래 성장성이 높은 분야와 전략산업, 수출 현장에 자금을 적극 공급하고, 보험사도 국가 주요 인프라와 에너지 전환 관련 투자 비중을 늘려달라"고 말했다.

이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위와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류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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