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20분. 그 밤 독일 언론들은 김민재만을 기다렸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귀하디 귀한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했다.
현 시점 세계 랭킹 1위 수비수 김민재의 챔피언스리그 데뷔골!
동시에 김민재를 '억까'하던 독일 언론들이 다소곳이 김민재를 기다리는 모습도 지켜봤다.
26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 파리 생제르맹(PSG)의 유럽챔피언스리그(UCL) 리그 페이즈 5차전 취재기를 남겨본다.
#콤파니 감독 아래 김민재
잘츠부르크를 거쳐 뮌헨에 왔다. 바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곳곳에 한국인 팬분들이 보였다. 김민재와 이강인의 맞대결 가능성이 있었기에 이 경기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기자실에 가서 노트북을 켰다. 김민재의 올 시즌 성적을 훑어보았다. 이 경기 전까지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총 17경기(리그 11경기, 챔스 4경기, 포칼 2경기)에 나섰다. 1431분을 소화했다. 경기 당 84분을 뛰었다. 김민재가 뛰었던 경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총 14실점(리그 7실점, 챔스 7실점)했다.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4실점이 아쉽긴 했다. 그래도 경기당 1실점도 하지 않는 짠물 수비를 보여주었다. 무실점 경기는 총 10경기였다. 그만큼 김민재가 수비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난 시즌 김민재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시안컵 이후 김민재의 경기력은 급강하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아쉬운 경기력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올 시즌 환골탈태했다.
이 날 경기에서도 김민재는 펄펄 날았다. 수비에서는 '벽' 그 자체였다. PSG는 의도적으로 김민재와 데이비스 사이의 공간에 압박을 가했다. 김민재는 침착하게 PSG의 공격을 막아냈다. 전반 38분에는 골까지 넣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마무리했다. 김민재 본인의 챔피언스리그 데뷔골이었다.
이 날 경기 중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김민재가 허리 이상으로 적극 올라가 압박에 가담했다. 중앙 수비수로서는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때 김민재의 뒤에는 키미히나 고레츠카가 있었다. 김민재가 올라가면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뒤에서 커버하고 있었다. 덕분에 PSG는 자신의 진영에서부터 압박을 당했고, 전체적인 볼 점유율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토마스 투헬 감독 아래에서는 이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투헬 감독은 센터백들에게 올라오지 말라고만 했다. 아래쪽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클리어만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올 시즌부터 팀을 맡은 뱅상 콤파니 감독은 달랐다. 본인이 레전드 수비수 출신이었고, 김민재와 같은 플레이를 즐겨했다. 발이 빠르고 동시에 발이 좋은 김민재의 능력을 극대화했다. 김민재에게 자유를 부여했다. 덕분에 김민재는 자신감을 가지고 바이에른 뮌헨의 최후방을 지켰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감독의 믿음이다. 투헬 감독은 종잡을 수 없었다. 시즌 초반 김민재를 극찬했다. 그러나 중반이 지나면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언론 앞에서 김민재를 비판 아니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민재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됐고, 자존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콤파니 감독은 언제나 김민재를 옹호한다. 드레싱룸이나 훈련 중에는 질책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개된 자리에서는 김민재를 포함해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늘 선수들을 위하고, 옹호하고 보호한다. 김민재 역시 이런 감독 아래에서 자신의 기량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독일 언론들도 김민재를 기다렸다.
경기가 끝났다. 1대0 바이에른 뮌헨의 승리. 김민재가 당연히 이 날 경기의 MOM이었다.
믹스트존으로 향했다. 경기가 끝난 시간은 현지 시간 오후 10시 50분 즈음. 계속 기다렸다. 하나 둘 선수들이 나왔다. 이강인도 드레싱룸에서 나와 버스로 향했다. 참고로 PSG는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선수를 팀에서 지정한다. 해당 선수가 아니면 인터뷰를 할 수 없다. 이날 이강인은 인터뷰가 가능한 선수가 아니었다. 인터뷰가 가능하냐는 요청에 살짝 웃으며 "죄송해요. 오늘은 안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버스로 향했다.
시간이 흘렀다. 해리 케인도 지나가고, 마누엘 노이어도 믹스트존은 지나갔다. 토마스 뮐러는 독일 기자들과 한껏 수다를 떨다 집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었다. 프랑스 기자들은 모두 철수했다. 그러나 독일 기자들은 여전히 믹스트존에 있었다. 단 한 사람. 김민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0시 20분 경 김민재가 나왔다. 독일 기자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김민재의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뒤에서 지켜보면서 뭔가 찡했다. 지난 시즌 독일 언론, 특히 몇몇 독일 언론들은 김민재를 비난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지어내곤 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 김민재의 멘트 하나를 듣겠다고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실력이 모든 것을 바꾸는 법이었다.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한국 취재진과 만났다. 웃으며 경기에 대해, 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뮌헨에 오고 나서 했던 경기 중에 가장 좋았던 경기인 거 같아요. 운좋게 골도 넣었고요. 7경기 연속 무실점을 하고 있어서 더 의미가 있어요."
콤파니 감독과의 궁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감독님께서 선수들한테 요구하는 것이 명확해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하려고 하시고요. 선수들이 피드백하는 것을 잘 들어요. 좋은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시계를 봤다. 밤 12시 40분 정도 됐다. 뿌듯했다. 이제 다시 한 번 월드클래스 수비수로 돌아온 김민재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리 축구에도 세계적인 수비수가 있다.
김민재는 확실히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