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 프리미엄 세단 시장의 오랜 정설이 깨졌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수십 년간 지켜온 '플래그십 세단 왕좌'를 BMW 7시리즈가 빼앗은 것이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으로 확인된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국내 럭셔리 세단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BMW코리아가 발표한 상반기 실적에 따르면 7시리즈는 2,885대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23.7% 급증했다. 같은 기간 벤츠 S클래스 판매량은 2,008대에 그쳐 BMW가 877대 차이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월별 추이를 보면 BMW의 압도적 우세가 더욱 뚜렷하다. 1월부터 6월까지 매월 400대 안팎의 안정적 판매를 기록한 7시리즈와 달리, S클래스는 1월 214대에서 시작해 6월 361대까지 점진적 증가에 그쳤다.

7시리즈의 약진을 이끈 주역은 740i xDrive다. 상반기 1,512대가 팔려 전년 동기(1,074대) 대비 40.8% 늘었다. 전체 7시리즈 판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모델의 성공은 BMW의 전략적 포지셔닝이 적중했음을 보여준다. 2,998cc 직렬 6기통 싱글터보 엔진으로 381마력의 강력한 성능과 55.1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면서도 복합연비 10.3km/ℓ의 합리적인 효율성을 구현했다. 가격은 M Sport Limited 1억 6,080만 원부터 M Sport Pro Individual All Black Edition 1억 8,640만 원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디젤 모델인 740d xDrive도 831대 판매되며 전년 동기 대비 36.2% 증가해 상승세에 기여했다. 2,993cc 직렬 6기통 싱글터보 디젤 엔진으로 299마력의 출력과 68.3kg.m의 강력한 토크를 발휘하면서도 복합연비 12.5km/ℓ의 뛰어난 효율성을 자랑한다. 여전히 디젤을 선호하는 국내 대형차 고객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결과로 평가된다.

BMW의 성공 배경에는 국내 럭셔리 세단 고객층의 변화가 자리한다. 과거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이 시장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본격 유입되면서 차량 선택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7시리즈 후석의 31.3인치 BMW 시어터 스크린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을 별도 기기 연결 없이 구동할 수 있어 '움직이는 사무실'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이 젊은 경영진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바워스&윌킨스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의 4D 사운드 기술과 이그제큐티브 드라이브 프로 등 첨단 편의사양도 기존 S클래스의 아날로그적 럭셔리와는 다른 차별점을 제공한다. 특히 HDMI 연결을 통한 외부 기기 연동 기능은 업무 연속성을 중시하는 현대 기업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BMW의 '파워 오브 초이스' 전략도 주효했다. 가솔린 740i부터 순수전기차 i7, 고성능 전기차 i7 M70까지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제공해 고객 선택의 폭을 대폭 넓혔다. 전동화 전환기에 한 가지 동력원에 올인하지 않고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수용한 전략이 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맞춤형 서비스인 'BMW 인디비주얼' 프로그램도 차별화 요소다. 최상위 모델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최대 2만 2,000가지 조합의 개인화 옵션을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획일화된 럭셔리에서 벗어나 개성을 중시하는 신세대 부유층의 취향을 겨냥했다.

한국이 BMW 7시리즈의 글로벌 3대 판매 시장으로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에 민감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국내 럭셔리 시장의 특성이 BMW의 혁신 지향적 브랜드 철학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S클래스가 수십 년간 구축해 온 '럭셔리 세단 = 벤츠'라는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지금, BMW는 단순한 추격자가 아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칸 영화제 VIP 초청, 라이더 컵 관람 등 1,300만 원 상당의 특별 혜택을 제공하는 'BMW 엑설런스 클럽' 운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올해 하반기에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지 주목된다. BMW의 상반기 성과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구조적 변화의 시작점임을 증명할 수 있을지, 국내 프리미엄 세단 시장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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