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사망했는데 살아 돌아와서 전세계를 멘붕에 빠뜨린 韓 여성
(Feel터뷰!) 넷플릭스 '지옥 시즌2'의 연상호 감독을 만나다
모든 세계관을 구축한 연상호 감독과 10월 29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었다.
‘지옥’ 시리즈는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 두 개의 삶>을 원작으로 하며 연상호와 최규석이 합작해 웹툰 ‘지옥’을 내놓았다. 이후 인기에 힘입어 6부작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시즌1이 의문의 결말을 맞은 후 웹툰 ‘지옥2: 부활자’가 연재되었고, 지난 10월 25일 ‘지옥 시즌2’가 스트리밍 되었다.
빠른 속도감 뿐만 아니라 시즌1의 법칙이 깨져 혼란이 가중된다. 시즌1의 익숙한 배우와 교체 배우 그리고 시즌2의 합류 배우의 조합이 시너지를 이룬다. 해외에서는 ‘러브크래프티안 호러’라고 불리기도 한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를 표방하는 최초의 작품이라 불릴만하다.
연상호 감독이 어릴 적 큰 영향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오마주도 선명하다. 스스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장 안에서 완성된 세계관임을 밝혀 화제가 되었다. 시즌1은 <20세기 소년>, 시즌2는 <아키라> 만화책의 아포칼립스 상황의 광신도에서 영향받았다고 했다. 익숙한 것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붙여 새롭게 만든 연니버스 최고의 작품이라 할만하다.
공포의 원천은 예측 불가능한 낯섦
-시즌1의 충격적인 결말 이후 3년 만에 시즌2가 나왔다. 최규석 작가와 시즌2 구상은 언제 나눈 건가.
“시즌1이 끝나고 구상한 건 아니다. 옴니버스일지, 하나의 중심인물을 따라갈지 형식만 잡았다. 시즌1이 끝나고 반응을 참고해 한 줄기의 이야기로 만드는 방향을 잡았고, 시기는 정진수의 부활 이후 이야기를 다루자고 생각했다. 시즌1을 123,456 두 파트로 보였다. 만화 작업을 해봤으니까 어릴 때 좋아했던 <환상특급>이나 웰메이드인 <블랙미러> 같은 큰 세계관 속 인물 이야기로 구상했었다. 최규석 작가와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인물의 전사를 생각했다. 그중 시즌2에 포함된 건 천세형(임성재)과 오지원(문근영) 서사다”
-정진수, 박정자만 특별히 부활한 의미는 무엇인가.
“정진수가 뿌린 이야기에 줄기를 쓰다 보니 콘셉트가 중요했다. 마침 박정자의 부활도 있으니 둘이 겪은 지옥 이야기를 해보자고 논의했다. 시즌2에서 정진수는 희망 사항이 이루어진 거고 박정자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 커지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는다. 시즌2의 주된 내용은 지옥 그 자체이며, 욕구와 의지가 실현되는 거다. 정진수는 20년 전 고지를 이용해 대중을 단죄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거울 속의 괴물은 정진수 내면이고 정진수의 공포는 감히 예측할 범위가 아닌 거다.
박정자는 고지를 받고 지킬 수 없는 것(가정)을 지키려는 소시민이다. 아기를 지키려던 부부의 소망도 방식은 다르지만 실현되었다. 더 생각해 보면 둘만 부활한 건 아니게 된다.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부활자는 더 있을 수 있다. 부활하는 시간이 전해지지 않았고 시공간은 넓기 때문에 상상하기 나름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신이 인간사에 관심 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캐릭터의 소망은 이루어진 셈이다”
-고지와 부활도 랜덤임이 밝혀졌다. 부활이 가능한 요건도 알려달라.
“‘지옥’은 코즈믹 호러를 표방하고 있다. 지옥의 속성이 반복되고, 예측이 가능하고, 무엇이라 정의된다면 고통으로 볼 수 없다. 종교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고통이 천 년 이상 반복되면 과연 고통일까? 익숙해져서 루틴이 된 지옥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다. 다만 이런 게 지옥이라고 정의해서라도, 고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거다. 크게 법칙은 중요하지 않다. 신의 관점을 인간이 상상할 수 없고 컴퓨터라고 해도 인간 두뇌를 벗어난 존재라 알 수 없다.
시즌1에서는 인간의 자율성(선택)을 말하고자 했고 정진수로 인해 지옥이 펼쳐진다. 시즌2에서는 부활까지 포함하려던 지옥이 이수경을 만나 펼쳐진다. 하지만 민혜진을 통해 전달된다. 배재현의 생존이 방식이 죽은 후 부활이었는지, 부모의 사랑이 만든 생존인지는. 믿고 싶은 이야기를 따르는 자율성의 한 부분인 거다. 특히 세상의 종말이라 부르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뜨는 해를 보며 시작이라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여러 종류다. 처음 공포 영화가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이 화를 냈다고 한다. 돈 내고 공포를 경험하는 게 불만이었던 거다. 불안은 이해할 수 없음부터 시작되고, 불안을 건드려야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 ‘지옥’에서 부활의 요건을 알려 달다는 건. 마치 성룡 영화 끝에 NG 장면을 넣어 버리는 것과 같다. (웃음)”
익숙함과 새로움의 적절한 배합 성공
-시즌1의 익숙한 배우와 교체 배우 그리고 시즌2의 합류 배우 조합이 시너지를 이룬다. 시즌제 작품 특성상 시즌2는 다소 지루한데 지옥은 이와 같은 공식을 깨부순다.
“여러 가지가 의도된 설정이다. 시즌1의 박정자는 <반도>의 서대위(구교환)가 연상되는 낯선 얼굴이었다. 민혜진(김현주)은 정의로운 캐릭터라 대중에게 신뢰감이 드는 배우가 해주었으면 했다. 오지원(문근영)의 경우 화살촉의 일원으로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바로 죽게 했다. 바로 평범했던 과거가 등장하면서 이미지의 충격을 주었다. 드라마 <기억의 해각>을 보고 충격받아 제안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답변 받았다. 캐릭터의 서사를 재미있어했다”
문소리 선배는 영화제 이후 뒤풀이 자리에서 만나 안면이 조금 있었다. 작업 이야기는 전혀 안 했는데 강수연 선배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재회했고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슬쩍 지옥2를 권유하며 이수경에 대해 가볍게 전했다.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은근히 장고하시더라. (웃음) 캐릭터에 관한 깊은 이야기와 설득 끝에 승낙 받았다. 선배의 표현에 따르면 ‘수연 언니가 만들어준 인연’이라고 하더라”
-시즌2의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햇살반 선생님 문근영이지 싶다. 시즌1의 화살촉의 비주얼과 다르면서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완치 후 대중에게 모습을 보인 작품이 지옥2라 본인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겠다.
“햇살반 선생님 비주얼은 원시 종교의 분위기를 차용했다. 마치 종교의 탄생 같은 느낌이다. 8년 후 화살촉은 원시 종교처럼 보였으면 했다. 원초적인 곳부터 믿음을 다시 쌓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원시적인 메이크업은 해외 사례가 많았고 레퍼런스 삼고 싶지 않아서 한국적인 형식으로 맞추게 되었다”
- 교체된 김성철이 만든 정진수 해석력도 감탄했다.
“저랑 의상과 헤어스타일 정도만 의견 나누었다. 아마 교체 투입의 부담이 있었을 거라. 시즌1과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한 번에 빵 보여주지 말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입하도록 했다. 시즌2부터는 정진수의 가정사(전사)가 짤막하게 나와 인간사를 부여한다. 같은 배우가 했더라도 시즌에서는 다른 연기 톤을 취했을 거다”
-또 다른 부활자 박정자를 연기한 김신록은 대사가 줄어들어 들었다. 시즌1부터 주목받기 시작했고 3년 동안 급성장한 배우가 아닌가. 시즌2의 콘셉트에 불만을 가질만하다.
“시즌1에서 리얼리즘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였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니, 시즌2에서 연기 평가가 곤두박질쳐도 본전 아니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웃음) 결국 과감함을 보여달라는 주문인 거다. 미안했지만 감독으로서 그 정도 권리는 있다고 봤다. (웃음) 그런데 첫 촬영 때 너무 과감하게 준비해 와서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제 말 때문에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건 아닌지 싶더라. 예술은 꼭 잘 되려고만 하는 게 아님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잘하는 연기를 더 잘하는 것보다 새로운 연기를 해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민혜진을 맡았던 김현주는 갑자기 여전사가 되었다.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정진수와 박정자가 극적인 변화를 맞지만 민혜진은 변화의 끝단에 서 있는 인물이라 결코 변하지 않는다. 저의 시각이 많이 들어간 인물이다. 지키고 싶은 신념과 지키고 싶은 아이 사이의 충돌로 고민한다. 키워드를 ‘찬란한 종말’로 잡았다. 종말이란 말을 듣고 속 시원하게 아이에게 달려가 달라고 주문했다. 늘 고민하며 살았는데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이 편한 상태라고 일러두었다. 어쩌면 박정자는 죽음을 예지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또 다른 교주가 될 수도 있다. 이것 또한 의도했던 부분이다”
-시즌2를 통틀어 가장 신선한 인물은 김성집을 맡은 홍의준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이정현 남편 역할을 맡았다. 철가면이라고 불렸는데 마트 회상 장면에서 잠시 얼굴이 나온다. 이후 내내 철가면을 쓰고 있다. (웃음) 서울독립영화제 독백 페스티벌에서 처음 봤다. 권해효 선배와 심사했었는데 홍의준 배우를 봤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도 몸을 잘 쓰고 대사도 자연스러워서 시즌2에 합류 제안을 했다. 김성집이라는 의문투성이의 의외성을 가진 인물을 맡겼다. 마지막에는 인류의 명운을 건 격투로 민혜진과 액션도 해야 했다
시즌3 만든다면..
민혜진의 거짓말로 시작
-사회 시스템을 향한 통찰, 이를 집대성 작품을 완성했다. 지옥 세계관을 관통하는 테마는 무엇인가.
“대화를 위해 언어가 개발되었지만 언어만으로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고 교류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각자 살아온 방식과 역사가 다른데 ‘지옥 본 사람’이란 이유로 지금 대화할 수 있는 거다. 그게 작가, 연출자와 관객, 독자, 시청자와 전혀 다른 언어로 한 가지 주제로 소통할 수 있는 기쁨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10작품을 준비하고 발표했다. 웹툰, 극본, 영화, 시리즈 연출, 제작 등등 다작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20대 초반에 단편 <지옥>을 만들 때만 해도 코즈믹 호러가 뭔지도 몰랐다. 원천은 해외였지만. 저 같은 무지렁이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기준이 되다 보니. 새로운 콘셉트가 나왔던 거 같다. 기생수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였고, 지옥도 마찬가지였다. 시스템을 연기한 이수경이 초월하려던 것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개인이 있다. 비슷한 면이 있지만 각각 세계관은 잘 돌아가고 있다. 장르라는 큰 줄기 안에서 저의 개성을 살리는 작업 중이다.
최근에는 ‘지옥’ 세계관을 주제로 소설가와 협업했다. 앤솔로지 소설을 준비 중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옥은 어떨지, 확장된 생각을 들을 수 있겠다. 연상호의 지옥은 한정되고 좁다. 정진수와 민혜진을 따라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시즌3을 만든다면 이수경의 거짓말과 민혜진의 거짓말(배재현에게 하는 말)을 대조해 보고 싶다. 민혜진은 그동안 만들어진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지만 아이를 구출하면서 달라진다. 민혜진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끊임없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인가.
“바쁘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이나 포스트 프로덕션 때 대기 시간이 많다. 스태프가 준비하는 시간 동안 짬 날 때마다 공상하고 메모를 하는 거다. 깊은 고민은 불가능하다. 우연히 작품이 연이어 나오니까 동시다발적으로 무언가를 한다고 오해하시는데 시간을 잘 짜서 대처하는 것뿐이다.
제가 대화도 좋아한다. 작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나누고 고민한다. 마음속에서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늘 생각하고 있는데 정하는 게 문제다. 그때는 장르성 있는 작품을 했으니 대중성 있는 작품을 할 건지, 더 깊게 들어가는 장르 작품을 할 건지 여러 기획안을 놓고 회의한다. 신뢰할 수 있는 분과 작업 일정을 논의한다. 때가 되면 작업하는 거다. 저라고 크게 다른 건 없다. (웃음)”
글: 장혜령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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