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뷰캐넌 이야기는 늘 “야구를 잘 던지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믿음을 한번쯤 흔들어 놓는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4년 동안 보여준 성적만 놓고 보면, 뷰캐넌은 KBO 외국인 투수 역사에서 ‘안정감’이라는 단어로 손꼽힐 만한 선수였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54승 28패, 평균자책점 3점대 초반. 특히 2021년 16승은 팀이 흔들릴 때도 로테이션을 붙잡아 주는 진짜 에이스의 숫자였다. 삼성 팬들이 “오늘은 뷰캐넌이니까”라고 말하던 날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꼬였다. 삼성은 다년 계약 카드까지 꺼냈고, 리그 최고 수준 조건도 제시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뷰캐넌의 요구가 더 높았고,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그 선택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선수라면 누구나 더 좋은 조건을 꿈꾼다. 특히 커리어 후반으로 갈수록 ‘한 번의 계약’이 남은 야구 인생의 방향을 좌우한다. 뷰캐넌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다만 현실은 냉정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기다리던 ‘괜찮은 메이저 계약’은 쉽게 오지 않았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했고, 빅리그 마운드도 잠깐 밟았을 뿐이었다. 2025시즌에는 시즌 초 방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결국 그는 다시 아시아로 방향을 돌렸다. 대만프로야구(CPBL) 푸방 가디언스 입단.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KBO → MLB 도전 → 아시아 복귀” 루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야구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할 시기에, 뷰캐넌이 갑자기 ‘절차’와 ‘규정’의 중심에 서 버렸다. 쉽게 말해, 뷰캐넌의 공이 아니라 뷰캐넌을 둘러싼 접촉 과정이 논란이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타이강 호크스가 뷰캐넌과 접촉했느냐”다. CPBL에는 흔히 ‘228 조항’이라고 불리는 외국인 선수 우선협상 규정이 있다. 전년도에 뛰었던 외국인 선수는 다음 해 2월 28일까지 원소속 구단이 우선 협상권을 가진다. 이 기간에는 다른 팀이 해당 선수와 접촉하거나 협상을 시도할 수 없다는 취지다. 원소속 구단의 권리를 보호하고, 시장을 최소한의 질서 속에서 굴리겠다는 장치다.
여기서 포인트는 한 가지다. 팬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직 계약 안 했으니까 괜찮겠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약이 성사됐느냐가 아니라, 접촉 자체가 규정 위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템퍼링’은 늘 시끄럽다. 접촉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느 수준이었는지,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이게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선수도 구단도 이미지가 먼저 손상된다.
이번엔 신생팀 타이강의 홍이중 감독 발언이 불씨가 됐다. “뷰캐넌도 있다”는 식의 뉘앙스가 공개적으로 나오면서 푸방은 즉각 반발했다. “우리는 이적 동의서를 준 적도 없고, 공식 접촉도 없었다”는 메시지로 선을 그었다. 타이강은 사과했지만, 리그가 조사에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간단하다. 리그가 움직였다는 건, 그냥 말실수로 끝낼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곤란한 사람은 뷰캐넌이다. 선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은 “내가 어디에서 던질 수 있나”가 생존 문제다. 그런데 ‘내 공’이 아니라 ‘누가 나에게 언제 연락했나’가 뉴스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더 껄끄러운 건, 대만 리그 규정상 제재가 단순 벌금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보도 내용처럼 규정 위반이 확인될 경우, 해당 팀의 벌금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수의 향후 입단에 제한이 걸릴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물론 실제로 어디까지 적용될지는 조사 결과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오가는 순간, 선수는 자동으로 흔들린다. “혹시 내가 피해를 보나?”라는 불안이 생기고, 협상 테이블에서도 분위기가 미묘해진다.

푸방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푸방은 이미 다른 외국인 카드로 엔트리를 채웠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다고 뷰캐넌의 협상권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즉, 뷰캐넌을 ‘당장 쓰지 않을 수도 있는데 권리는 쥐고 있는’ 모양새다. 이 상황에서 타 구단이 접근하면, 원소속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예민해진다. “우리가 가진 권리를 왜 건드리나”라는 반응이 나온다. 리그 질서가 흔들리는 걸 원치 않는 것도 있고, 동시에 구단 권익이 침해된다는 감정도 섞인다.
타이강은 더 조심해야 한다. 신생팀은 리그 내에서 ‘룰을 지키는 팀’이라는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 첫인상이 흔들리면 이후 외국인 영입 시장에서도, 선수 에이전트 네트워크에서도 좋을 게 없다. 그래서 타이강이 빠르게 사과한 건 이해된다. 다만 사과가 논란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팬들은 늘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접촉이 없었나, 아니면 들킨 건가?”
이 사건이 한국 팬들에게도 꽤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뷰캐넌이 유명해서”만이 아니다. 뷰캐넌은 삼성에서 ‘장수 외인’으로 이미 정서적 지분이 큰 선수였다. 그리고 한때는 “다시 KBO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뷰캐넌이 인터뷰에서 한국 복귀에 관심을 내비쳤다는 이야기까지 퍼졌다.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 아이가 한국에서 자랐던 기억, 떠나는 결정이 힘들었다는 고백 같은 것들이 팬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떠난 뒤의 시간은 계속 ‘변수’가 붙는다. 미국에선 마이너리그 생활이 길어졌고, 대만에선 규정 논란에 휘말렸다. 그래서 팬들 입에서 “그때 삼성 다년 계약을 받았으면…” 같은 말이 나오는 거다. 이건 뷰캐넌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결과를 놓고 아쉬움을 곱씹는 감정에 가깝다.
다만 현실적으로 “삼성에 남는 게 무조건 정답이었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선수 커리어는 ‘그때의 판단’으로 움직인다. 뷰캐넌이 그 시점에서 더 큰 시장을 바라본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문제는 시장이 그 선택을 똑같이 환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야구판에서 가끔 벌어지는 냉정한 장면이다. 성적이 있다고 해서, 늘 원하는 조건이 따라오진 않는다. 나이, 리그 평가, 팀의 필요, 에이전트 협상력, 타이밍… 다 합쳐져서 계약이 만들어진다.
이번 논란은 크게 세 갈래로 이어질 수 있다.
첫째, 리그 조사 결과가 “실제 접촉이 없었다”로 정리되면, 타이강은 경고성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긴 이미지 손실은 남는다. “말이 앞선 팀”이라는 꼬리표가 쉽게 떨어지진 않는다.
둘째, 접촉이 규정 위반으로 확인되면 리그는 벌금이나 제재를 검토할 것이다. 이 경우 타이강은 당장 스토브리그 운영이 더 까다로워진다. 다른 구단들도 신경이 곤두설 테고, 협상 과정은 더 조심스러워진다.
셋째, 뷰캐넌 본인은 당분간 ‘실력’보다 ‘절차’가 먼저 정리되는 선수가 되어버릴 수 있다. 이게 가장 불운한 시나리오다. 선수는 공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규정 문제로 시간이 지체되면 몸 만들기, 시즌 준비, 심리 상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뷰캐넌에게 감정이입하는 건 단순히 과거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뷰캐넌은 KBO에서 “성실한 에이스” 이미지가 강했다. 경기 운영이 좋고,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고, 큰 부침 없이 제 몫을 했다. 그런 선수가 ‘야구 외적인’ 이유로 흔들리는 장면은 팬들에겐 더 씁쓸하다. 그래서 “한국에 남았으면 이런 소음은 없었을 텐데”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이거다. 한국에 남았으면 더 편했을 수도 있지만, 남았다고 해서 더 행복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돈, 커리어 목표, 가족, 도전 욕구… 선수의 선택에는 팬이 다 알 수 없는 변수가 있다. 다만 지금 뷰캐넌에게 필요한 건 후회가 아니라 정리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는 다시 ‘야구 선수’로 돌아와야 한다. 이 논란이 길어질수록 손해는 선수에게 더 크게 온다.
결국 뷰캐넌의 다음 페이지는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규정 논란을 깔끔히 넘기고, 대만에서 다시 ‘에이스 모드’를 보여주는 것.” 다른 하나는 “절차 문제로 시간을 빼앗기고, 커리어 후반이 소음 속에서 흔들리는 것.” 팬들은 첫 번째를 보고 싶다. 삼성 시절 우리에게 익숙했던 뷰캐넌은, 늘 마운드 위에서 답을 보여주던 투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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