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름 부를 시간조차 없는 3월 [심영보의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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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봄의 시작과 함께 학교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학교는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며, 정성스럽게 교육하려고 한다.
3월에는 교육청의 새로운 교육 지침과 규정에 맞게 학교 교육계획과 규정을 손봐야 하고,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연간 교육계획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공교육 현장도 이처럼 아이들이 학교의 구성원으로 천천히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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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

3월, 봄의 시작과 함께 학교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금산간디학교 이범희 교장선생님은 "학교의 3월은 단순히 달력을 넘기는 시간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진보'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상급 학교로 진학까지, 학생들은 최고 학년에서 다시 가장 낮은 학년이 되는 변화를 겪는다. 학교 시스템이 바뀌고 자신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도 달라진다. 새로운 세계로의 적응이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성장의 시작이다. '첫 단추'가 중요하듯,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아이들의 학교생활 전체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님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학교는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며, 정성스럽게 교육하려고 한다. 선생님들은 어느 때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교육청 역시 이 시기만큼은 현장이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출장과 연수를 최대한 자제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의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3월에는 교육청의 새로운 교육 지침과 규정에 맞게 학교 교육계획과 규정을 손봐야 하고,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연간 교육계획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새로운 선생님들이 업무를 볼 수 있는 시스템 환경도 정비해야 할 것이고, 학교 환경도 새롭게 꾸며야 한다. 필자 역시 교원인사 업무와 각종 보고 공문을 처리하느라 온종일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는 날이 부지기수다. 이 시기 교육청으로부터 공문도 제일 많이 오는데, 하루 평균 40개가 넘는 공문이 학교에 접수된다.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공문도 20여 개에 이른다. 우리 학교 선생님(모든 교직원을 나는 선생님이라고 칭한다)은 교무실과 행정실 합쳐서 열두 분이라 평균 2개 정도를 생산하고 4건 정도를 접수한다. 선생님들이 아이들 곁이 아닌 컴퓨터 앞에 묶여 있는 셈이다.
새로 입학한 학생들의 이름을 여러 번 불러주며 이름을 외우고 싶고, 방학 동안 쑥 자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 시간이 잘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적응을 돕는 다양한 놀이와 활동을 기획하고 싶어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의 교육제도와 환경에서 뭔가를 개선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온전히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구호에 그칠 것 같다. 이제 판을 뒤집는 개혁이 필요하다.
비인가 대안학교의 사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다양한 적응 프로그램과 장기간의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한다. 일주일 넘게 국토 종주를 하며 서로의 벽을 허물고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공교육 현장도 이처럼 아이들이 학교의 구성원으로 천천히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선생님을 컴퓨터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3월 한 달만큼은 행정 업무와 완전히 멀어질 수 있는 과감한 방안이 연구되어야 한다.
한 가지 제안하자면, 교원 인사를 앞당겨 2월부터 새로운 학교에 공식 소속되어 업무를 준비할 수 있게 하자. 또한, 보여주기식 계획서나 결과 보고 등 아이들 교육과 직결되지 않는 불필요한 행정은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모든 정책을 '보고용 문서'로 강제하기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권고 수준에서 현장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면 안 되겠는가?
봄날의 나무가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는 데 온 힘을 쓰듯, 학교 역시 그래야 한다. 선생님들이 행정의 늪에서 벗어나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심영보 창녕 성산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