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집값 상승에 대한 오해가 잘못된 정책 부추긴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2024. 10. 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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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0%까지 낮추고 시중에 돈을 넘치도록 공급했다. 그 결과 은행으로 예금이 계속 밀려들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은행에 돈이 그렇게 넘치게 쌓여있는 걸 보고 은행들이 대출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그건 사람들의 착각이 낳은 잘못된 해석이었다.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해서 은행에 쌓인 돈을 내보내더라도 그렇게 나간 돈은 누군가의 통장에 입금되기 마련이고, 결국 그건 예금이라는 형태로 다시 은행에 예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은행이 대출을 열심히 하든 게을리 하든 은행에는 항상 넘치는 예금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은행에 갑자기 과도한 돈이 모인 건 은행들이 갑자기 대출에 소극적이 됐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중앙은행이 다소 과도하게 돈을 풀었기 때문인데, 그걸 사람들은 은행 탓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주문을 했던 것이다. 금융의 구조와 흐름은 사람들의 직관과 좀 달라서 종종 이런 오해를 낳곤 한다.

집값이 오르면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만 몰려서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지 못한다는 걱정도 비슷한 오류의 결과물이다. '돈의 양은 한정돼 있는데 부동산 시장으로만 돈이 가니 다른 곳으로는 돈이 못 가지 않겠느냐'는 이 설명은 직관적으로 매우 그럴듯해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서울의 아파트단지 모습. ⓒ연합뉴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과거에 2억원에 산 아파트값이 올라 10억원이 됐고, 그 아파트를 무주택자 B가 구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B가 집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그 10억원이 좀 더 생산적인, 예를 들면 B가 구상 중이던 만두가게 창업자금 등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B는 집을 사느라 만두가게 창업을 포기해야 했지만, 그래서 여기까지만 보면 시중 자금이 생산적이지 못한 곳으로 흐른 것처럼 보이지만, 집을 판 A는 이 거래 덕분에 현금 10억원이 생겼다. A는 그 돈으로 B가 생각했던 만두가게를 창업할 수도 있고, 아니면 꽃집을 새로 열거나 혹은 그 돈을 자녀 결혼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전체로도 마찬가지다. 만두가게를 꼭 B가 해야 생산적인 자금 흐름이 되고 집을 판 A가 하면 그건 비생산적인 자금 흐름일 까닭은 없다. A가 집을 팔아 생긴 돈 10억원을 '생산적인 곳'에 쓰지 않고 대출 10억원을 더 받아서 C가 소유한 20억원짜리 더 좋은 아파트를 구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돈 20억원은 그 집을 판 C의 통장으로 들어가게 될 테니 역시 생산적인 곳으로 돈이 흐르느냐 마느냐는 이제 C가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C가 어딘가에 투자하거나 소비할 20억원이 B가 집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사용됐을 10억원에 비해 비생산적이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집을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던 B는 집을 사지 않았다면 그 돈을 계속 저축하고 있었겠지만 집을 팔아서 돈이 생긴 A나 C는 그 돈을 어딘가에 쓰려고 팔았을 테니 돈이 도는 속도는 A나 C가 집을 팔 때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B는 집을 사고,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A 또는 C에게는 돈이 가도록 하는 게 사회 전체로도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인 것이다.

A가 2억원에 산 집이면 그 집에 끼어있는 부채가 기껏해야 1억원이었겠으나 집값이 올라 10억원에 거래되면 그 집을 사는 B는 최소한 5억원은 대출을 받아야 살 수 있으니 가계부채가 늘어나지 않느냐는 걱정도 마찬가지 오해다. 집값이 그동안 오르지 않고 2억원 그대로였다면 그 집을 사는 B의 부채는 늘어나지 않겠지만 집을 판 A의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도 2억원뿐이니 시작하는 데 10억원이 필요한 만두가게나 꽃집을 하려면 어차피 비슷한 규모의 대출은 필요하다.

결국 집값이 오르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 만두가게 창업자금으로 쓰일 돈이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냐 만두가게 담보 대출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10억짜리 집을 판 돈으로 만두가게를 여는 것보다 집값이 2억원 그대로 멈춰있어서 만두가게를 할 때 부족한 돈 5억원 정도를 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아야 하는 것을 비교할 때 후자가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이유는 역시 없다.

집값이 올라서 생기는 부작용은 분명히 있다. 임차료가 높아져서 모든 재화의 생산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다. 높은 임차료 때문에 재화의 가격이 올라가고 비싼 가격으로 인해 소비가 감소하면 경제의 효율이 떨어진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단점을 이렇게 파악하고 나면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올라가지 않도록 충분한 공급을 해야겠다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그런데 집값이 올라서 생기는 부작용을 '비생산적인 곳으로 돈이 흐르는 것'으로 오해하면 그렇게 돈이 그 쪽으로 흐르는 걸 막으려고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공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수요를 억제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이 움직이게 된다. 그 결과는 알다시피 늘 좋지 않다. 대중의 오해를 수시로 늦지 않게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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