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 길 터져"... 우라늄 농축·핵연료 재처리 허용, 미국과 기본방향 합의

한국이 그동안 미국의 엄격한 제약을 받아왔던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분야에서 드디어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양국이 이 문제에 대한 기본 방향에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한국의 원자력 주권 확대라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되는데, 과연 이번 합의가 한국의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됩니다.

8월 정상회담, 은밀한 합의가 있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9일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한겨레 인터뷰에서 놀라운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양국이 잠정 합의를 했다는 것입니다.

조 장관은 "한국도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기본 방향에 양국이 합의한 건 의미 있는 진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합의 내용이 실제 합의문까지 작성됐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 내용은 현재 진행 중인 관세 협상이 타결된 뒤 작성될 양국 정상의 최종 합의문에 담길 예정이라고 합니다.

2015년 원자력협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다


현재 한국의 원자력 이용을 규제하는 2015년 개정 한-미 원자력협정은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조차 '미국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고,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해서는 '파이로 프로세싱'이라는 건식 재처리 기술의 공동연구만 허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관련한 고위급 협의가 열리지 않고 있고, 공동연구마저 중단된 상태라는 점입니다.

사실상 한국의 원자력 기술 발전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번 합의는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포화 상태 핵폐기물, 이제 해법이 보인다


조 장관이 이번 합의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현실적 문제들은 매우 심각합니다.

현재 한국은 26기의 원자로를 운영하면서 계속해서 사용 후 핵연료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저장하는 수조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환경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꺼내서 재처리해야 한다"는 조 장관의 말처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또한 한국이 핵연료의 많은 부분을 러시아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점도 우라늄 농축 허용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관세협상과 연계된 복잡한 퍼즐


하지만 이번 원자력 합의가 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대미 투자와 관련한 미국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 관세 협상이 먼저 마무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 장관은 10월 말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한-미 정상회담 전에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조 장관은 "일본이 먼저 미국과 합의한 내용을 보면, 나중에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면서 "일본과 비슷한 형태로 미국이 요구한다면 우리가 합의해주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나은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안보협상도 순항, 국방비 증액 가닥 잡혀


원자력 문제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 협상도 큰 틀에서 합의가 마무리된 상태라고 조 장관은 밝혔습니다.

특히 국방비 증액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대강 합의가 되어가는 상황"이며 "APEC 정상회의까지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관련해서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켰습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은 주한미군이 대만해협 비상사태에 개입할 때 우리까지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 염려는 없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자동적으로 개입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표한 것이죠.

핵무기와는 무관, 평화적 이용이 목적


조 장관은 이번 원자력 합의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주장하고 요청하는 농축과 재처리는 핵무기 개발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순수하게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 확대가 목표라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특히 "이런 협상에 찬물을 끼얹는 독자 핵무장이나 잠재적 핵능력 얘기가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벨기에에 본사를 둔 유럽의 핵연료 전문 기업인 유렌코

한국이 추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에너지 안보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며, 이것이 자칫 핵무기 개발 논의와 연결되어 협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합의가 최종적으로 성사된다면, 한국은 원자력 분야에서 상당한 자주권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벨기에에 본사를 둔 유럽의 핵연료 전문 기업인 유렌코 같은 핵연료 제조 공장 건설도 가능해져 에너지 안보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과 영국의 핵잠수함은 핵연료 농축도를 80~90% 사용하여 개발했지만, 핵연료 농축도를 20% 미만으로 개발된 프랑스의 바라쿠다급 잠수함처럼,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여 자체 핵잠수함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프랑스 바라쿠다급 핵잠수함

이는 한국의 해군력 증강과 해양 방위 능력 확대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