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D-34] KBS만 웃은 월드컵 중계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안정환은 빠지고 박지성은 JTBC로 갔다. 문제는 해설진 교체가 아니라, 국민의 볼 권리를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다.

[스탠딩아웃]

안정환은 빠졌다. 이영표는 남았다. 박지성은 JTBC로 간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국내 중계판의 풍경이다. 한때 지상파 3사는 같은 경기를 동시에 틀었다. 시청자는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의 해설을 골라 들었다. 전파 낭비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적어도 선택지는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MBC와 SBS는 빠졌다. JTBC와 KBS가 남았다. 시청자는 선택지를 잃었고, 방송사들은 각자의 계산서를 꺼내 들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예정인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퍼드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그래픽= 스탠딩아웃

겉으로 나온 말은 익숙하다.

보편적 시청권

국민의 볼 권리

월드컵은 국민적 행사라는 명분

틀린 말은 아니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중계가 아니다. 한국 대표팀 경기는 여전히 온 국민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면을 보는 드문 경험이다. 골이 들어가면 모르는 사람도 함께 소리친다. 패배하면 다음 날 출근길 분위기까지 달라진다. 그래서 월드컵에는 공공성이 있다.

문제는 그 공공성을 누가, 어떤 순간에, 어떤 이익을 위해 꺼내느냐다.

이번 협상의 표면상 승자는 KBS다. JTBC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한 뒤 지상파와 재판매 협상을 벌였다. 공개 보도에 따르면 KBS와 JTBC는 중계권료 140억 원에 협상을 타결했고, MBC와 SBS는 “120억 원 이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협상이 결렬됐다.

결과는 선명하다. KBS는 유일한 지상파 월드컵 중계 채널이 됐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KBS는 정말 국민의 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남았나. 아니면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가장 안전한 실리를 챙긴 것인가.

답은 하나로 자르기 어렵다. 둘 다 맞을 수 있다.

KBS가 월드컵을 중계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역할에 맞다. 국민이 추가 비용 없이 대표팀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분명 공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KBS는 큰 이익도 얻었다. MBC와 SBS가 빠진 상황에서 KBS는 지상파 안에서 사실상 독점적 위치를 잡았다. 월드컵 기간 시청률, 광고, 브랜드 주목도는 KBS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명분은 공익이다. 실리는 독점에 가깝다.

이 불편한 조합을 봐야 한다.

JTBC도 단순히 욕심 많은 독점 사업자로만 몰아붙이기 어렵다. JTBC는 막대한 돈을 내고 권리를 샀다. 월드컵 중계권은 하늘에서 떨어진 공공재가 아니다.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했고, 누군가는 그 위험을 피했다.

더구나 JTBC의 모회사인 중앙그룹 상황을 보면 이 선택은 더 복잡해진다. 한 경제 매체는 중앙그룹이 중앙일보 사옥, 상암 JTBC빌딩, 일산 스튜디오 등 3개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회사채 미매각, 신용등급 전망 하향, 외부 투자 유치 무산 등이 겹치며 그룹 전반의 유동성 우려가 커졌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JTBC가 월드컵 중계권을 산 것은 돈이 남아 돌아서 벌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재무 압박 속에서 던진 승부수에 가깝다. 월드컵으로 플랫폼의 존재감을 키우고, 광고와 디지털 시청 흐름을 붙잡으려는 전략일 수 있다. 성공하면 브랜드가 산다. 실패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 상암동 jtbc 사옥

그래서 이번 논란은 “돈 많은 종편의 독점”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권리를 산 쪽도 위험을 안았다. 그 위험을 무시한 채 공익만 말하면 논의는 반쪽이 된다.

MBC와 SBS도 마찬가지다. 두 방송사는 그동안 보편적 시청권의 필요성을 말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숫자 앞에서 물러섰다. 광고 시장은 예전 같지 않다. 월드컵이라고 해서 무조건 흑자가 보장되는 시대도 아니다. 대표팀 성적, 경기 시간대, 제작비, 해설진 비용, 디지털 권리 범위까지 따지면 월드컵은 이제 무조건 잡아야 하는 상품이 아니다.

그 선택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방송사도 회사다. 손해가 너무 크다고 판단하면 빠질 수 있다.

다만 솔직해야 한다.

국민의 볼 권리를 말하다가도 가격이 맞지 않으면 빠지는 태도는 설득력이 약하다. 공익을 말하려면 비용 부담의 원칙도 함께 말해야 한다. 공익은 좋은 말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돈을 누가 낼지까지 정해져야 지켜진다.

이 대목에서 영국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은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주요 스포츠 행사 지정 제도 Listed Events’로 관리해 왔다. 흔히 ‘왕관의 보석 Crown Jewels’이라고도 부른다. 국민이 반드시 볼 수 있어야 하는 스포츠 행사를 따로 정해두는 제도다.

© 스탠딩아웃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오프콤 Ofcom은 국제축구연맹 FIFA 월드컵 본선을 ‘A그룹 지정 행사 Group A’로 분류한다.

2026 월드컵은 6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린다. 오프콤은 월드컵 본선이 1996년 방송법상 A그룹 지정 행사이며, 독점 생중계에는 오프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영국이 모든 스포츠를 무조건 공짜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은 행사를 나눈다. 꼭 무료 생중계가 필요한 행사는 A그룹으로 묶는다. 월드컵, 올림픽, 유럽축구선수권처럼 국민적 관심이 큰 행사가 여기에 들어간다. 반면 B그룹 행사는 유료 방송 생중계가 가능하다. 다만 무료 하이라이트나 지연 중계 같은 보완 장치를 요구한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영국은 “국민이 봐야 한다”는 말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떤 경기는 반드시 무료로 보여줄지, 어떤 경기는 유료 방송에 맡길 수 있을지, 그 경계를 제도로 정해둔다. 시장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고, 공익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는다.

FIFA도 영국의 2026년, 2030년 월드컵 중계권을 BBC와 ITV가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두 방송사는 영국의 대표적인 무료 지상파 방송사다. FIFA는 BBC와 ITV가 월드컵 무료 보편 중계를 이어가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월드컵 때마다 보편적 시청권을 말한다. 하지만 비용 구조는 대회가 임박해서야 싸움이 된다. 누가 권리를 살지, 누가 얼마를 부담할지, 무료로 보장해야 할 경기는 어디까지인지, 디지털 중계는 어떻게 할지, 이런 기준이 흐릿하다.

그러니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된다.

누군가 먼저 큰돈을 내고 권리를 산다. 다른 방송사들은 가격이 높다고 말한다. 정치권은 국민의 볼 권리를 말한다. 여론은 독점을 비판한다. 결국 협상은 압박과 명분 싸움으로 흐른다.

이 방식은 오래갈 수 없다.

진짜 필요한 것은 사후 압박이 아니다. 사전 설계다.

한국도 영국처럼 국민관심행사를 더 세밀하게 나눠야 한다. 모든 월드컵 경기를 똑같이 볼 필요는 없다. 대표팀 경기, 개막전, 준결승, 결승처럼 국민적 관심이 큰 경기는 무료 보편 접근 대상으로 강하게 보호할 수 있다. 나머지 경기는 권리를 산 사업자가 유료 플랫폼이나 자체 채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둘 수 있다.

이렇게 해야 공익과 시장이 같이 산다.

모든 경기를 공짜로 보자는 말은 듣기 좋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누군가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 반대로 모든 경기를 유료화하자는 말도 위험하다. 월드컵 대표팀 경기가 돈을 낸 사람만의 경험이 되면, 월드컵은 국민적 축제라는 힘을 잃는다.

가운데 길이 필요하다.

©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김종철 위원장

핵심 경기는 무료로 보장한다. 나머지 권리는 시장에서 경쟁하게 한다. 재판매가 필요하다면 가격 산정 원칙을 미리 정한다. 지상파, 종편, OTT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투명한 룰을 만든다. 대회가 코앞에 닥친 뒤 “내놓으라”는 식으로 팔을 비트는 방식은 그만해야 한다.

국회가 방송법 개정으로 보편적 시청권을 강화하려는 흐름도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 취지는 이해된다. 국민이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행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법이 “보여줘야 한다”는 말만 하고 “비용은 누가 낼 것인가”를 비워두면 또 다른 갈등이 생긴다.

권리를 산 사업자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면 다음에는 아무도 과감하게 투자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방송사들은 정치적 압박을 걱정하고, 권리 판매자는 한국 시장을 더 비싸고 복잡한 시장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피해는 다시 시청자에게 돌아온다.

보편적 시청권은 필요하다.

그러나 보편적 시청권은 공짜 중계권이 아니다. 공익을 지키기 위한 제도다. 제도라면 비용, 범위,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이번 논란을 “KBS가 이겼다”로만 보면 절반만 본 것이다. KBS는 분명 좋은 위치를 잡았다. 유일한 지상파 중계 채널이라는 상징과 실리를 동시에 얻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스포츠 중계권 시장이 아직도 명분과 돈 사이에서 제대로 된 룰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JTBC는 투자자의 권리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이벤트를 독점한 사업자로서 사회적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KBS는 공영방송의 책무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가장 좋은 실리를 챙겼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MBC와 SBS는 경영상 판단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 시청권의 명분을 필요할 때만 꺼낸다는 지적도 감수해야 한다.

정치권은 국민의 볼 권리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용을 외면한 채 민간 사업자의 권리를 나누라고만 해서는 책임 있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시청자는 월드컵을 보고 싶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는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그 월드컵을 누가, 얼마를 내고,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이 질문 없이 “국민이 봐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면 논쟁은 매번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 KFA

월드컵은 국민의 축제다. 하지만 축제에도 비용은 있다. 그 비용을 숨긴 채 공익만 말하면 위선이 된다. 비용만 말하며 공익을 지우면 장사가 된다.

필요한 것은 둘 사이의 정직한 균형이다.

영국은 월드컵을 무료 보편 접근의 영역에 두되, 스포츠 중계 시장 전체를 하나의 잣대로 묶지 않는다. 반드시 보호할 행사를 정하고, 나머지 영역에는 시장의 공간을 남긴다. 한국도 이제 그 정도의 정교함은 가져야 한다.

KBS만 웃었나.

이번 판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자기 명분 뒤에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KBS는 공익을 말하며 실리를 얻었다. JTBC는 재무 압박 속에서도 권리를 샀다. MBC와 SBS는 시청권을 말하다가 손익 앞에서 물러섰다. 정치권은 국민을 말하지만 비용의 답은 아직 내놓지 못했다.

그 사이 시청자만 뒤늦게 계산서를 받아 들었다.

이번 월드컵 중계권 논란의 진짜 결론은 하나다.

보편적 시청권은 말로 지켜지지 않는다. 돈의 구조까지 설계할 때 비로소 지켜진다.

출처 : 스탠딩아웃(https://www.standing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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