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색상은 왜 英 자동차를 상징하게 됐나

로터스 에미라 클라크 에디션과 타입 38

로터스 에미라 클라크 에디션과 타입 38로터스, 애스턴 마틴, 재규어, 벤틀리, 미니, 맥라렌 등 많은 영국차들이 그들만의 '그린'을 입고 질주해 왔다. 자동차 애호가라면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BRG)'이라는 색상을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로터스코리아에 따르면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은 '그린 그 이상'이다. 자연에서 영감 받은 영국인들의 미적 감각, 그리고 성능과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의 모터스포츠 정신을 품고 있다.

이 전설적인 컬러의 기원은 1900년대 초반 유럽 대륙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3년 영국은 당시 자치령이었던 아일랜드에서 '고든 베넷 컵'을 개최했다. 당시 영국은 자국 내 공공도로에서 경주를 금지하고 있었다.

고든 베넷 컵 출전 경주차들은 자국의 고유 컬러로 칠해야 했다. 영국은 아일랜드에 헌정하는 의미로 그린을 선택했다. 아일랜드는 연중 비가 자주 내리고 온화한 기후 덕에 푸르고 비옥한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당시 경주의 리버리가 된 그린을 '샴록 그린'이라 했고 훗날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 영국 경주차의 상징이 돼 포뮬러 원(F1)과 르망 등 수많은 무대에서 전설로 남았다.

로터스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F1 등 모터스포츠에 참여하며 경량화 철학과 혁신적인 엔지니어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 중에서도 1962년 '로터스 25'는 모노코크 섀시라는 새로운 구조를 최초로 도입해 차의 경량화와 안정성을 동시에 이뤄냈다. 

짙은 녹색 차체 위로 흰색 스트라이프가 그려진 로터스 25는 짐 클라크에 의해 전설이 됐다. 클라크는 로터스와 함께 1963년, 1965년 월드 챔피언에 오르며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의 신화를 완성했다.

지난 2010년 로터스 레이싱팀은 15년만에 F1에 복귀했는데, 이때 역시 머신(T127)에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과 노랑 스트라이프를 입혀 '로터스의 귀환'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이는 최근 '에미라'로 이어지기도 했다. 로터스는 '클라크 에디션'이라는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V6 에미라 한정판을 발표했다.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도장 위에 옐로 스트라이프를 시원하게 넣었고 우드 기어 노브와 클라크의 서명이 특별함을 더한다. 이 차량은 전세계 단 60대만 생산된다.

로터스 에미라 클라크 에디션과 타입 38

로터스 에미라 클라크 에디션과 타입 38로터스는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을 통해 모터스포츠로 이룩한 유산과 영국 레이싱 전통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엘레트라' 역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계열의 컬러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 '질주하는 영국' 감성을 경험할 수 있다.

재규어는 1950~1960년대 르망과 각종 내구 레이스에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을 두른 차들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재규어 C-Type과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로 불리는 E-Type 모두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옷을 입었다.

재규어는 빠르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은 이 두 요소를 절묘하게 조화시켜준다. 지금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은 재규어 라인업의 대표적인 선택지 중 하나다.

벤틀리의 경우, 1920년대 '벤틀리 보이스'가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을 두른 경주차로 르망 24시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벤틀리는 컨티넨탈 GT, 벤테이가 등 현대 모델에서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옵션을 제공한다. 특히 뮬리너 옵션의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4'는 대표적인 컬러 옵션 중 하나다. 이 색상의 뮬러는 외관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주고, 실내는 전통적으로 우아한 브리티시 스타일을 유지한다. 

MINI는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의 계보를 가장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브랜드다. 거의 모든 모델에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계열의 컬러를 선택할 수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약간씩 변형을 주며 재해석 중이고, 메탈릭 또는 무광 피니시 옵션을 함께 제공해 감각적인 톤을 유지한다.

쿠퍼 S나 고성능 모델 JCW는 퍼포먼스까지 선사한다. 실내는 앰비언트 라이트와 OLED 패널 등 미래 지향적인 기술들이 있다. MINI는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애스턴 마틴은 1959년 'DBR1'으로 르망 24시에서 종합 우승을 거두며 영국 모터스포츠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때 DBR1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이었다. 지금의 '애스턴 마틴 레이싱 그린'의 시작이었다.

이 컬러는 브랜드 전용 조색이 적용된 매우 짙고 고급스러운 그린이다. 일반적인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보다 톤이 더 묵직하다. 태양광 아래에서는 청록빛이 감도는 깊이감을 보여줘 타 브랜드와는 다른 절제된 미를 보여준다.

애스턴 마틴은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의 전통을 F1에서 적극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F1 공식 세이프티카로 선정된 '밴티지 GT3' 역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을 입어 영국 모터스포츠의 헤리티지를 대표적으로 드러냈다. 애스턴 마틴 아람코 F1팀은 2021년 복귀 이후, 모든 머신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으로 칠했다.

/지피코리아 경창환 기자 kikizenith@gpkorea.com, 사진=로터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