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옆자리 처음보는 일반인에게 수술비 몇천만원 내줘버린 상남자

강한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다.

부모의 품이 아닌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까지는 자신이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경기에 나가면서 점점 깨닫게 됐다.

다른 아이들 곁에는 늘 부모님이 함께했지만, 자신 곁에는 선생님 한 명뿐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육원의 법적 보호는 만 18세가 되면 끝난다.

강한 역시 열여덟 살 생일이 되던 날, 단 한 박스의 우체국 박스와 공용으로 사용하던 옷가지 몇 벌을 들고 세상으로 나왔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재활센터 숙소에서 잠시 머문 후 지하철 노숙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정착지원금 500만 원이 전부였지만, 집을 구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그때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초등학생 시절 육상으로 시작한 그의 운동 인생은 카바디로, 또 다시 봅슬레이로 이어졌다.

새로운 종목에 도전할 때마다 주변에선 ‘끈기가 없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강한은 굴하지 않았다.

2019년과 2021년, 결국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특히 카바디 선수로는 1년 만에 국제 대회 동메달을 따내며 주목받기도 했다.

잦은 부상이 문제였다.

발목 인대가 끊어져 다른 사람의 인대를 이식받기도 했고, 무릎에서는 뼈암까지 발견됐다.

재활 치료는 비급여 항목이 대부분이라 병원비 부담은 상상 이상이었다.

물류센터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며 버텼지만,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바로 그때 정우성이 나타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카페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정우성과의 만남이 인생을 바꿨다.

정우성은 처음보는 강한에게 이야기를 걸었고 친동생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 받고있다는 얘기를 털어놓자 정우성은 주저없이 수 천만원의 수술비를 지원해준다.

강한은 "형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정우성 역시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기에 강한이 감내했어야 할 삶의 무게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던 것이다.

이제 강한은 보호 종료 아동들의 명예 멘토로도 활동 중이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실패와 좌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힘든 시절, 우연처럼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여전하다.

보육원 출신 소년이 수많은 벽을 넘으며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그 곁엔 늘 조용히 응원해준 정우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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