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상을 보라. 얼룩말 레이스인데, 제대로 달리는 말이 하나도 없다. 이미 등 위에 선수들을 떨어트린 말도 있고, 비틀거리면서 옆으로 가는 말도 있다. 이 영상은 최근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 세로가 탈출한 사건을 계기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얼룩말은 왜 경주마가 될 수 없는지 알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먼저 한국마사회에 물어봤는데,
한국마사회 주민재 과장
“말씀 하신대로 얼룩말이든, 다른 말로 경마 시도는 안 했지만 저희가 말 산업 전담 기관이다 보니까 약간 이벤트성으로 ‘이 말을 어떻게 순치시킬 수 있을까’ 정도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마사회에서도 얼룩말로 경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몇년 전까지도 회의를 했다는 건데, 결국 최종단계까지 못가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마사회 주민재 과장
“얼룩말 같은 경우에는 야생성이 굉장히 강한 동물이기 때문에 순치가 안 됩니다. 거의 안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말 전문가인 경북대 수의과대학 조길제 교수에 따르면 얼룩말이 경주마가 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얼룩말의 얼룩무늬가 키운 야생성. 얼룩말은 다른 초식동물에 비해 야생성이 큰데, 이렇게 된 이유가 ‘얼룩무늬’ 때문이라는 거다.
경북대 수의과대학 조길제 교수
“얼룩무늬가 멀리 있는 사자들한테 쉽게 눈에 띄잖아요. 자기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야생성으로 길러진거죠. 아기 얼룩말 같은 경우에는 태어난지 1년안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50%는 돼요.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얼룩말들이 무리를 지어 맹수들을 공격적으로 방어하는데, 이런 모습 역시 야생성이 발현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얼룩말은 일반 경주마와 다른 신체적, 유전적 차이가 있다. 얼룩말은 딱 보기에도 일반 경주마보다 얼굴도 크고 목이 두꺼워서 제대로 방향을 잡거나 속도를 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유전자 수에서도 차이가 있다는데.

경북대 수의과대학 조길제 교수
“대표적인 경주마인 더레브렛종은 평균 유전자 개수가 64갠데, 얼룩말은 그보다도 훨씬 적어요. 평원 얼룩말은 44개, 마운틴 얼룩말은 32개, 그레비 얼룩말은 32개에요. 생물학적으로 경주마랑 완전히 다른거죠”

물론 염색체 수의 차이로 말의 달리는 능력에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인 연구물은 아직 없지만, 경주마와 유전적으로 달라 같은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라고 한다.

셋째, 얼룩말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물들이 많이 없다는 것.
경북대 수의과대학 조길제 교수
“일단 얼룩말은 포획 자체도 어렵고요, 실험 재료로 쓰지 못하니까 연구나 실험을 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연구 가치도 낮고... 그러다보니까 얼룩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길들이기도 어렵죠”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얼룩말을 길들이거나, 경주마로 만들기 위한 도전은 있어 왔는데. 지금까지는 1800년대, 영국 귀족 월터 로스차일드가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있다. 로스차일드는 평소에도 동물에 관심이 많던 사람으로, 1898년 6마리의 얼룩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영국의 버킹엄 궁전에 들어간 일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사람도 얼룩말을 직접 기르면서 얼룩말이 새끼를 낳고, 그 얼룩말을 길러내는 완전한 가축화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얼룩말을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로 ‘골치 아픈 성격’을 꼽기도 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레이싱 스트라이프스’에선 경주마가 된 얼룩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2013년에는 이 영화에 감명을 받은 미국 소녀가 얼룩말 ‘조이(Joey)’를 ‘경주마로 훈련시키겠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영화에선 얼룩말의 훈련 거부로 인해 여주인공은 낙마해 입원하고, 미국 소녀 역시 얼룩말을 경주마로 길들이는데 실패한다.

그럼 이렇게 난폭한 얼룩말, 대체 동물원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얌전히 지낼 수 있는 걸까? 얼룩말 세로가 살고있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세로 역시 맨처음 1년동안은 사육사를 아예 본체만체할 정도로 까다로웠지만, 동물원 환경에 차츰 적응하면서 성질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조경욱 동물복지팀장
“(얼룩말들은) 야생동물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환경이 바뀐다든가 이럴 때 조금 예민한 부분들이 있는거죠. 세로 같은 경우도 사육사하고 이제 유대감이 깊어져서 (밥을) 잘 받아 먹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