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한때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꾹 닫고 살았다.

그리고 긴 시간의 침묵을 지나, 다시 같은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
둘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1970년대, 가수 옥희는 서울시스터즈로 미국 무대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내에서 ‘나는 몰라요’ 등의 히트곡으로 사랑받았고, 독보적인 음색과 감정선으로 당대 여성 보컬리스트로 자리잡았다.

그 무렵, 복싱 영웅 홍수환 역시 주먹 하나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4전5기' 신화로 불리며 카라스키야를 꺾고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그때의 환호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옥희와 홍수환이 처음 만난 건, 1970년대 중반 한 공연장에서였다.
당시 옥희는 장미화 등과 함께 해외 공연을 마친 직후였고, 국내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공연을 마친 어느 날, 매니저가 이런 제안을 했다.
“홍수환 선수가 훈련 중인데, 우리가 좀 후원해주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당시 홍수환은 세계 챔피언 도전을 앞두고 있었고,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옥희는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들은 처음 인연을 맺었다.
홍수환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때 제가 옥희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주변에 부탁했어요.
우연히 오랜 시간이 지나 방송국에서 만나게 됐는데, 제 손을 잡고 ‘권투선수 손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냐’고 하더군요. 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짧은 인사였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홍수환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당시 홍수환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성과 함께 살고 있었고, 자녀도 있었다.
옥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결혼할 사람도 아니고, 그냥 돕는 마음이었다”고 말했을 만큼 처음엔 감정을 조절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공개 연인이 되었고, 1977년 결국 홍수환은 전처와 이혼 후 옥희와 결혼했다.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의 결합은 언제나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그 사랑이 논란의 중심에 섰을 때, 관심은 순식간에 비난으로 바뀐다.
두 사람의 결혼은 ‘유부남 권투선수와 여가수의 열애’라는 말로 요약됐다.
언론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한국권투위원회는 “선수로서의 품위를 손상했다”며 홍수환을 제명했다. 옥희 역시 무대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야 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무너뜨린 건 1978년 말 발생한 폭행 사건이었다.
이혼한 전처가 아들을 데리고 귀국한 이후, 홍수환과의 만남을 목격한 옥희가 홍수환에게 따졌는데 폭행을 당한다.
코뼈가 부러지고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는 당시 기사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까지 틀어졌는지를 보여줬다.
옥희는 혼인빙자 간음으로 고소했고, 법적 절차까지 밟은 끝에 1979년 결국 이혼을 발표했다.

그 후로 16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은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다.
옥희는 딸 홍윤정을 홀로 미국에 보내며 견뎌야 했던 시간들을 떠올렸고, 장미화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아빠를 만나게 해줘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만난 홍수환은, 달라져 있었다. 매일 옥희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고, 각서를 써가며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지금까지 고생시켜서 미안해. 앞으로는 정말 잘할게.”
그 말에 결국 옥희도 마음을 열었다. 딸 윤정도 두 사람의 재결합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오랜 원망과 아픔이 있던 관계였지만, 딸은 결국 부모를 다시 잇는 고리가 되어줬다.

홍수환은 고지혈증과 고혈압을, 옥희는 당뇨와 혈당 관리를 하며 함께 병을 이겨내는 중이다.
서로를 향한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늦은 사랑이 그들을 다시 가족으로 만들었다.
홍수환은 웃으며 말한다.
“그때 정신 차렸어요. 그 사람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죠.”
그리고 옥희는 한 걸음 뒤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보다 내 삶을 많이 흔들었던 사람인데… 또, 그렇게 돌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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