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 한 푼 없는 미국 올림픽 대표팀이 1등 하는 비결!

[정규수의 스포츠 깊게 바라보기]

현장 실무형으로 바뀌는 체육계 수장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들에 우리는 갈등 비용을 혹독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체육계도 다양한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체육계는 지난 1월 ‘체육 대통령’이라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대신 ‘아테네 영웅’ 유승민을 신임회장으로 선택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안세영 선수 작심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도 김동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새로운 수장이 되었다. 두 선거 모두 MZ세대와 X세대의 엘리트 선수 출신 후보들을 선출했다. 대한민국 체육계는 풍부한 현장 경험의 실무형 수장을 원했던 것이다. 체육회장들이 야기한 갈등 비용을 혹독히 치른 체육계가 그런 시대정신을 만들었던 것이다.

2024년 문체부는 대한축구협회 감사 결과로 정몽규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었고, 이에 축구협회는 중징계를 무력화하는 행정소송을 걸었다. 법원이 행정소송을 수용하면서 정몽규 회장은 다가오는 26일 선거에서 4선 연임에 도전하고 있다. 월드컵 대표팀의 경기도 아닌, 한일 대항전도 아닌, 축구협회장 선거에 우리가 이토록 관심을 두었던 적이 있었던가? 짐작해보건대, 홍명보 감독 선임부터 축구협회장 선거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청구된 갈등 비용을 어떻게 상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연방 정부와 체육계 '수평적 관계'

체육계의 선거 결과는 지난 몇 년간 누적된 갈등 비용을 갚고자 하는 의지라고 본다. 채무 상환도 계획과 전략이 있어야 가능한 법. 정부와 체육단체들간의 관계 정립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문체부를 상대로 맞짱도 불사하던 소위 체통령 이기흥 회장을 꺾은 유승민 신임 회장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체육회 활동의 상당 부분이 정부 보조금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체육단체에 대한 정부의 관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국민 세금 4000억원을 쓰는 대한체육회에 대한 문체부의 관리 감독은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관여가 지나친 간섭으로 바뀌는 건 종이 한장 차이인 것도 현실이다.

스포츠 비즈니스 천국인 미국에서는 스포츠 단체에 대한 정부 관여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박찬호, 김병현, 류현진 등 여러 한국 선수들이 활약했던 미국의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은 기존에 있던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의 합병을 통해 1903년에 출범했다. 그 때에는 팀이 선수를 해고하지 않는 한 다른 팀으로 이적이 제한되는 보류 조항(reserve clause)으로 인해 MLB 각 팀은 선수 연봉에 들어가는 돈을 절약하면서 순조롭게 미국 야구 시장을 독점했었다.

하지만 1913년 다른 한쪽의 페더럴 리그가 경쟁 리그로 떠오르면서, MLB는 위기에 빠진다. 이에 MLB 각 팀의 구단주들은 독과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페더럴 리그 소속의 구단주들을 돈으로 매수하면서 야구팀들을 사들였다. 이 중 페더럴 리그 소속 볼티모어 테라핀의 구단주가 MLB 구단주들의 매수 유혹을 거부하며 MLB를 공정거래 및 독과점 위반으로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 이 소송이 지금 52조 원 규모를 바라보는 미국 스포츠 산업 구조를 만들어주는 반석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2024년 파리 올림픽대회에 참가한 미국 올림픽 팀의 유니폼 포스터.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는 공공財"

1심에서는 볼티모어 구단주가 승소했지만 항소심 법정과 최고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1922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최종 판결에서 야구 경기는 지역간 일반 상업 활동과는 달리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공공의 일(state affair)'이기 때문에 MLB의 독점 방지법 예외 적용을 인정했다. 즉, 미국 문화에서 야구가 지니고 있는 공공재적 특수성을 인정함으로써 MLB의 독점 사업권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후 1975년 프로야구선수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선수 보류 조항'은 폐지되었지만 현재까지 MLB의 독점 사업권은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2020년에 MLB의 독과점에 대한 소송이 다시 있었지만 2023년 법원은 MLB의 독점 지위를 다시 인정해 주었다. 1922년 MLB 독점 사업권 인정 판결은 미국사(史)의 한 획을 그은 판결로 스포츠 단체를 대하는 미국 정부의 가이드로 아직까지도 작동하고 있다.

지난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미국은 총 595명의 대표팀이 참가했고 총 126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은 40개로 중국과 공동 1위였고 총 메달수로는 2위인 중국을 무려 35개의 차이로 따돌려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올림픽 대표팀의 이러한 성과는 미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놀랍게도 미국 올림픽/패럴림픽 위원회(USOPC)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재정 보조를 받지 않는 국가 올림픽 위원회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포스터.

독점금지법 적용을 면해준 정부

우리나라는 144명의 태극 전사들이 참여했던 파리 올림픽 대표팀에 대해 정부 예산은 121억 7천 5백만원이었다. 이처럼 모든 국가들의 올림픽 위원회는 해당 정부로부터 일정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미국만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앞서 말한 1922년 MLB 독점 사업권 인정 판결을 바탕으로 미국 정부는 두가지 USOPC 지원 방법을 모색했다.

우선 USPOC에게 비영리 단체 지위를 줌으로써 USOPC는 자체 후원 모금액뿐만 아니라 광고, 방송 중계권, 스폰서십 및 라이센싱 등으로 인한 모든 수익에 전혀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해주고 있다.

또 연방정부법인 《올림픽 아마추어 스포츠 법》(Ted Stevens Olympic and Amateur Sports Act)을 1978년에 제정하여 USOPC에게 올림픽을 활용한 미국 내 마케팅 활동 독점권을 주고 있다. 비영리 단체 지위와 올림픽 독점 사업권을 통해 2023년 기준 USOPC는 2560억 달러의 비과세 수입을 올린다.

1922년 판결을 바탕으로 한 미국 정부의 스포츠 단체에 대한 관여는 1961년에 제정된 미 연방 정부의 《스포츠 방송법》(Sports Broadcasting Act)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이 법은 프로미식축구(NFL), 프로농구(NBA), 프로아이스하키(NHL)에 대해 방송 독점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예외를 허용했다.

이 법의 더욱 놀라운 점은 대학미식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 75마일 반경 이내에는 방송 독점 금지법이 적용되게 하는 '신의 한수'에 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학 스포츠와 프로 스포츠가 서로 경쟁하지 않고 동반 성장하는 스포츠 산업 생태계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미국 정부와 스포츠 단체간 관계가 우리와 다른 점은, 국민 세금이 스포츠 단체로 지원되지 않도록 하되 스포츠 단체가 자주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시장 환경에서 소멸하든 번영하든 그 책임은 오롯이 스포츠 단체가 짊어진다. 즉, 미국 정부의 스포츠 단체에 대한 관여는 재정적 도움이 아닌 지위와 권한 부여를 통한 재정 자립도를 키워주는 것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왼쪽부터),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 장미란 문체부 2차관.

28일 유승민 체육회장 취임, 어떤 시스템 만들까

미국의 상황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리가 없는데 한국 체육 단체들과 정부와의 관계가 미국처럼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며 우리 체육계는 우리만의 특수성과 강력함이 있다. 필자의 글은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정부와 체육단체간의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 목적이다.

회장들이 유발한 갈등 비용에 시달렸던 체육계는 정부와의 새로운 관계를 위해 유승민을 대한체육회장으로 선택했다. 그럼 유승민 당선인에 대한 문체부 유인촌 장관 및 장미란 차관의 지지로 지금까지의 갈등 비용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인가? 정부와의 허니문이 유승민 회장단의 사업 추진에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인물에 대한 호불호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문체부 유 장관과 장 차관이 만년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을거니와 유승민 당선인도 언젠가는 회장직에서 내려올 것이다. 인물에 의지하면 인물에 따라 갈등 비용은 또 발생할 수도 있다.

누가 어떤 자리에 오더라도 매끄럽게 일들이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시스템이다. 미국 정부의 스포츠 단체에 대한 관여는 독점권을 인정해주는 시스템의 정립이었다. 대한민국 체육계도 우리 상황에 적합한 정부와의 관계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문체부 장차관이 누가 되더라도, 대한체육회장이 누가 되더라도 갈등 비용 없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K-체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21일 유승민 당선인이 스포츠 산업계 인사들을 만나서 “체육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려면 체육회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말에서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생각한다. 국가 보조금에서 벗어나 자체 수익을 늘리려는 체육회와 이를 제도적으로, 법률적으로 뒷밧침해주는 정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 정규수 교수는 현재 미국 케네써 주립대학교 스포츠 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후 미국 센트럴 미시건대학교에서 스포츠 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어스틴) 대학교에서 스포츠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한인 이민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주로 연구하며 미국 및 한국에서 일어나는 스포츠 현상들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경영관리적인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안계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학술 활동 이외에도 미주 한인 동포 사회를 위한 한인 스포츠 단체들의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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