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버려지는 이산화탄소, 산업 원료가 되다

장애리 기자 2026. 5. 18.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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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리포트] CO₂로 휘발유·나프타 생산…상용화 설계 착수
생성형 인공지능(챗GPT)으로 제작한 이미지.

최근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커지면서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원료 수급 리스크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해외에서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얻는 ‘나프타(Naphtha)’를 기초 원료로 삼아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공급망이 흔들리거나 나프타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국내 NCC(나프타분해시설) 업체들의 원가 부담과 가동률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탄소중립 대응을 넘어 원료 다변화와 ‘원료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과 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를 활용해 휘발유와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로 되돌리는 탄소자원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버려지던 이산화탄소를 줄이거나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연료와 석유화학 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다. 아직은 파일럿 단계지만, 수입 원유에 의존해 온 원료 체계를 다변화하고 산업 현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환경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 이산화탄소로 휘발유·나프타 생산…국내 첫 50㎏ 시범생산 성공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고안한 액체 탄화수소 생산 시범설비.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한국화학연구원 김정랑 박사팀은 GS건설, 한화토탈에너지스와 공동으로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중간단계 없이 직접 반응시켜 액체 탄화수소로 만드는 촉매·공정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탄소자원화 플랫폼 화합물 연구단’ 사업을 통해 수행됐다.

공동 연구팀은 지난 2022년 하루 5㎏ 생산 규모의 미니 파일럿 플랜트 연구를 마치고 GS건설과 한화토탈에너지스에 기술이전을 완료했다. 이후 2025년 말 국내 최초로 하루 50㎏의 액체 탄화수소 생산이 가능한 이산화탄소 직접 수소화 파일럿 플랜트를 구축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파일럿 플랜트 운전과 최적화를 거쳐 연간 10만톤 이상 생산 가능한 상용공정 설계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이산화탄소를 액체 탄화수소로 바꾸는 데 있다. 액체 탄화수소는 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화합물 가운데 상온에서 액체 상태인 물질을 말한다. 휘발유와 나프타 등 석유제품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산화탄소를 이런 액체 탄화수소로 전환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석유 기반 원료를 보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동안 이산화탄소로 휘발유나 나프타 같은 액체 탄화수소를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경제성이었다. 공정이 복잡하고 에너지 투입량이 크면 상용화 문턱을 넘기 어렵다. 이번 성과가 주목받는 이유도 단순히 ‘이산화탄소로 기름을 만들었다’는 상징성보다, 공정을 단순화해 생산비를 낮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 기술은 약 300도, 20bar 수준의 조건에서 작동한다. 현재 이산화탄소가 휘발유 등 액체 탄화수소로 바뀌는 합성 수율은 다단 반응 및 미반응물을 다시 반복 반응시키는 순환 공정을 적용해 50% 수준의 수율을 얻을 수 있으며, 하루 생산량은 50kg 정도다.

하루 50㎏은 대형 석유화학 설비 기준으로는 작은 규모다. 그러나 파일럿 플랜트는 실험실 반응과 상업 설비 사이의 중간 단계다. 실제 설비 조건에서 촉매 성능, 반응 안정성, 제품 수율, 운전 조건 등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이번 성과가 단순한 실험실 성공을 넘어 상용공정 설계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팀은 촉매 제조와 운전 조건을 개선해 안정성을 높였고, 기존 방식 대비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으며 공정이 단순해 생산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파일럿 플랜트를 장기간 운전하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상용공정 설계와 경제성 분석, 온실가스 감축 효과 평가를 진행할 계획이다. 상용화 성공 시 대체 원료 체계 구축을 통해 석유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효과도 예상된다.

◇ 배출물에서 원료로…넓어지는 CO₂ 활용처

산업계가 이 기술을 주목하는 이유는 나프타의 중요성 때문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 석유제품을 만든다. 석유화학사는 이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NCC에 투입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대부분의 석유화학 제품은 이 기초유분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나프타는 단순한 석유제품이 아니라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출발점이다. 나프타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이 나오고, 여기서 합성수지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다양한 소재가 이어진다. 원료가 흔들리면 제품 가격과 공장 가동률, 수익성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산화탄소 기반 액체 탄화수소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도 단순히 대체 연료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석유화학 원료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기술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원유와 나프타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원유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국제유가와 환율, 산유국의 공급 정책, 지정학적 리스크는 곧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중동 정세 불안이나 해상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석유와 나프타 수급 불안도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산화탄소를 나프타 성분으로 전환하는 기술은 장기적으로 원료 선택지를 넓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

탄소중립 대응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산업계의 탄소 대응은 주로 배출량을 줄이거나,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탄소 감축과 원료 확보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 이산화탄소가 단순한 배출물이 아니라 산업 원료 후보로 바뀌는 셈이다.

이산화탄소를 다시 산업 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앞서 항공유와 메탄올, 에탄올, 플라스틱 원료 등 여러 분야에서 이어져 왔다. 같은 이산화탄소라도 어떤 공정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최종 제품은 달라진다. 대표적인 분야가 지속가능항공유, 즉 SAF다. SAF는 폐식용유나 바이오 원료뿐 아니라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합성하는 방식으로도 생산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산화탄소를 연료 성분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화학연의 휘발유·나프타 생산 기술과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메탄올도 또 다른 후보로 꼽힌다. 메탄올은 화학 원료로 쓰일 뿐 아니라 최근에는 선박 연료로도 주목받는 물질이다.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메탄올 생산 과정의 탄소 효율을 높이거나, 저탄소 메탄올을 생산하려는 연구가 진행되는 배경이다. 메탄올은 다양한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활용될 수 있어, 이산화탄소 활용 기술이 연료뿐 아니라 화학소재 영역으로 넓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번 화학연 성과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산업 공정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다시 연료와 석유화학 원료 성분으로 되돌리는 기술이 실험실을 넘어 파일럿 단계로 올라섰다는 점에서다. 이산화탄소를 단순한 배출물이 아니라 다시 쓸 수 있는 자원으로 보려는 인식 변화가 정유·석유화학 산업에도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 가능성은 열렸지만…제도 지원·경쟁성 관건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상용화의 관건은 경제성이다. 이산화탄소를 휘발유나 나프타 같은 물질로 바꾸려면 수소와 촉매, 공정 에너지가 필요하다. 원료로 쓰는 이산화탄소가 친환경적이라도, 전환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간다면 기존 석유 기반 원료와 경쟁하기 어렵다. 단순한 기술 실증을 넘어 실제 상업적 가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제성 문제는 기업의 기술 개발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초기 시장에서는 생산비가 높고 수요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제도적 지원과 인증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글로벌 주요국들이 이산화탄소 전환 기술과 재생합성연료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관련 세액공제를 확대했고, 유럽연합(EU)도 재생에너지지침 등을 통해 재생합성연료와 저탄소 연료 사용 기반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및 활용에 관한 법률(CCUS 통합법)’이 시행되면서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앞으로는 기술 실증과 함께 이산화탄소 기반 제품을 어떻게 인증할지,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어떻게 산정할지, 초기 수요를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연구개발(R&D) 세제 혜택이나 초기 실증·가동 지원 같은 제도가 맞물릴 경우 시장 형성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요처 확보도 관건이다. 기존 원료보다 비싸다면 누가, 어떤 조건에서 구매할지가 정해져야 한다. 초기에는 기존 나프타를 곧바로 대체하기보다, 저탄소 원료 사용 요구가 큰 고부가 제품이나 글로벌 고객사 납품용 소재를 중심으로 활용처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제품 생산뿐 아니라 원료 조달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의 탄소발자국을 따지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저탄소 원료를 확보하려는 기업 수요도 점차 커질 수 있다.

결국 탄소자원화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기술 개발뿐 아니라 인증, 가격, 수요처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기술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실제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팔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연구팀이 앞으로 상용공정 설계와 함께 경제성 분석, 온실가스 감축 효과 평가를 진행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방향성은 분명하다. 탄소중립 시대의 산업은 배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포집하고, 어떤 제품으로 다시 쓸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버려지는 이산화탄소를 휘발유와 나프타 성분으로 되돌리는 기술이 파일럿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원료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장애리 기자 1601chang@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