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에게 배신당한 ‘검은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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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름은 투생 브레다였다.
아이티섬 브레다 농장의 노예로 태어나 1776년께 해방 노예가 됐다.
아이티섬은 프랑스 식민지였다(그때 이름은 생도맹그). 아이티의 백인들은 본국 정부의 간섭이 줄어들기를 바랐다.
나폴레옹은 아이티의 이탈을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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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름은 투생 브레다였다. 아이티섬 브레다 농장의 노예로 태어나 1776년께 해방 노예가 됐다. 결혼도 하고 작은 커피 농장을 빌려 안정된 삶을 살았다. 그러다 1789년이 됐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터졌다. 아이티섬은 프랑스 식민지였다(그때 이름은 생도맹그). 아이티의 백인들은 본국 정부의 간섭이 줄어들기를 바랐다. 유색인종은 그 이상을 바랐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이념이 아이티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랐다.
1791년에 프랑스 입법의회는 식민지의 일부 부유한 유색인종에게 시민권을 주기로 했는데, 아이티 백인들이 시행을 거부했다. 백인들의 속셈은 노예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분노한 아이티 흑인들은 봉기를 일으켰다. 1791년 8월22일, 아이티 혁명이 시작되었다.
아이티에서 영국군, 프랑스군, 에스파냐군, 유색인종 반군이 맞붙는 국제전쟁이 일어났다. 투생은 혁명군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다. 이름을 투생 루베르튀르로 바꾸었다. 앞길을 열어젖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프랑스 정부에 맞서 에스파냐 군대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1794년에 프랑스 본국의 방침이 바뀌었다. 자코뱅이 주도하던 국민공회는 식민지에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투생 루베르튀르는 에스파냐 군대와 손을 끊고 프랑스 정부와 손을 잡았다.
투생 루베르튀르는 뛰어난 군사 능력으로 영국군과 에스파냐군을 무찔렀다. 1799년에 내전에서 라이벌 세력을 꺾었다. 흑인 노예를 해방하고 백인 지주를 포용했다. 경제를 재건했다. 1801년에는 아이티에 헌법을 공포한다.
마침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은 참이었다. 나폴레옹은 아이티의 이탈을 바라지 않았다. 1802년에 대규모 원정군을 아이티에 보낸다. 투생 루베르튀르는 휴전 협정을 맺었는데 프랑스 군대는 약속을 어기고 그를 납치했다. 배신당한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 감옥에 끌려가 1803년에 숨을 거둔다. 아이티에 남아 있던 그의 부하들이 게릴라전을 벌여 프랑스 군대를 쫓아내고 1804년에 독립을 이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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