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업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영국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3월 중순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은 총 91척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척) 대비 무려 18배 증가했다. 불과 두 달 반 만에 지난해 전체 발주량의 절반을 채운 것이다.
한화오션은 오세아니아 선주로부터 VLCC 3척을 약 5,900억 원에 수주했고, 삼성중공업 역시 버뮤다 선사로부터 수주에 성공하며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시장의 70% 이상을 중국이 선점하면서 한중 조선업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3중 쇼크가 만든 ‘퍼펙트 스톰’

조선업 / 출처 : 연합뉴스
VLCC 발주 폭증은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이 동시 작용한 결과다.
첫째, 2003~2008년 조선 호황기에 건조된 선박들이 15~20년 경과로 노후 퇴출 시기에 진입했다.
둘째, 국제해사기구(IMO)가 2028년 도입 예정인 탄소 가격제로 노후 선박은 하루에만 최소 480만 원 이상의 탄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선주 입장에서는 누적 비용이 신규 선박 발주보다 비싸지는 계산이다.
결정타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사하면서,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 항로를 변경하고 있다.
운송 거리 증가는 곧 필요 선복량 증가를 의미한다. 실제로 발틱해운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중동-중국 항로의 운임 지수는 전년 대비 80% 급등했으며, 올해 초와 비교하면 8배 수준이다.
VLCC 용선료는 2026년 3월 기준 하루 13만 3,000달러(약 1억 9,500만 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 70% 점유 vs 한국 ‘고부가 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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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특수를 중국이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발주된 VLCC의 70% 이상을 중국 조선소가 확보했다.
중국 최대 해운사 COSCO는 자국 조선소 CSSC에 87척(약 71억 달러)을 일괄 발주하며 정부 지원 아래 저가·빠른 납기를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 조선업은 정면 대응 대신 ‘선별 수주’ 전략을 택했다.
한화오션은 수익성이 높은 LNG 운반선과 VLCC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으며, 삼성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를 전년 대비 40억 달러 상향한 139억 달러로 제시했다.
업계는 “중국 도크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기술력이 필요한 고난이도 선박은 결국 한국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낚시 효과’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조선 슈퍼사이클 vs 기자재 적자 딜레마

조선업 / 출처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올해 조선 슈퍼사이클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난해 신규 선박 인도 1,880만 DWT 중 VLCC는 150만 DWT(0.5%)에 불과해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팬오션은 SK해운으로부터 VLCC 10척을 인수하며 2027년까지 총 46척 규모의 벌크 선단 구축을 선언했다.
하지만 우려도 상존한다. 주요 선박 기자재 60종의 대중 무역적자가 2019년 8억 1,700만 달러에서 2024년 26억 3,400만 달러로 5년간 3배 증가하며 “조선업의 봄은 허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해운사의 전략적 자국 발주가 공급망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은 이제 단순 건조 경쟁을 넘어 고부가가치 기술과 환경규제 대응 능력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지정학적 변화가 만든 VLCC 발주 쓰나미 속에서 한국 조선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