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세요. 한국의 이 비료가 세계의 땅을 살리고 빈곤을 끝낼 겁니다"
일반 퇴비보다 저렴한데 죽은 땅 살리는 마법의 비료
열네 살 방글라데시 소녀가 결혼을 했다. 불과 1년 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던 아이였지만, 이젠 뱃속에 아이를 둔 예비 엄마가 됐다.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선 조혼이 가난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최후의 생계수단이다. 기후 위기는 문제를 가속했다. 토양은 염화돼 농사는 갈수록 짓기 어려워졌고, 여성과 아동 노동 착취는 근절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대학생 창업가 서영인(24) MFM(엠에프엠) 대표가 당시를 회상했다. “회사가 지금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셜벤처’가 그 어떤 사업보다도 확실한 수익모델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 대표는 확실한 수익모델로 타이거 새우의 부산물을 업사이클링한 농업 비료를 개발했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비료다. 소금에 찌들어 죽어가는 토양에 다시 살아날 힘을 불어넣는다. 염분이 작물에 침투하는 것을 막고, 작물이 수분과 비료를 잘 흡수하게 만든다. 기존 퇴비나 다른 친환경 비료보다 제조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일반 비료보다 덜 사용해도 작물이 잘 자란다.
엠에프엠은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인 서 대표와 같은 학교 바이오시스템공학 석사 Andrua Haque(안드루아 하케·25) COO가 공동창업한 회사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현대차 정몽구 재단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 11기 대상을 받았다. 이들이 어떻게 방글라데시의 여성·아동 노동 착취, 토양 염화, 남아도는 새우 부산물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지 들여다봤다.
◇아이들의 피눈물로 만드는 손질 새우
창업의 시작은 방글라데시 여성 노동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3년 전 방글라데시 쿨나에 친구와 놀러 갔습니다. 친구가 방글라데시 유학생이었거든요. 방글라데시는 새우 양식이 발달했는데요. 새우 공장에서 여자아이들이 일하는 걸 봤어요. 일일이 맨손으로 새우 껍질을 까는 건데, 작업환경은 최악이고 노동시간이 말도 못 하게 깁니다. 개발도상국의 새우 가공 산업은 유엔이 정한 대표적인 노동착취 사례이기도 해요.”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우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여성은 자영농이기도 했다. 공장 바로 옆에서 농사를 짓는데, 토양과 지하수가 염화돼 정상적으로 작물을 기를 수가 없었다. 기후변화에 설상가상 무단투기한 새우 부산물이 토양 염화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생계가 위협받고, 새우 공장에서 노동 착취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죠.”
당장 목도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2022년 엠에프엠 법인부터 세웠다. MFM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이익(Margin for the Marginalized)이란 뜻이다.
◇실패가 만든 또 다른 기회
타이거 새우 부산물로 만든 생물 비료는 4번의 피봇(다른 사업모델로 전환) 끝에 나온 아이템이다. “창업 초기를 생각하면 부끄러워요. 첫 도전은 새우로 만든 펫푸드였어요. 손질 새우보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고자 했는데요. 시제품을 방글라데시 현지 펫카페에 있는 강아지에게 먹였는데, 먹지 않거나 토하더라고요. 그 다음엔 사람을 위한 새우 과자도 만들었지만, 경제성이 없어 실패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보다 ‘당장 새우로 할 수 있는 일’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겪는 사이 1년이 지났다. 그새 서 대표가 후원하던 세 자매 중 첫째가 임신했다. “사회문제가 나빠지는 속도와 저희 사업의 진행 속도는 달랐어요. 어떻게든 저희의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했다. ‘사업성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새우 양식, 토양 염화로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생각했다.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어 소득을 얻고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나무 조각이나 왕겨 등으로 만드는 바이오차라는 친환경 비료가 있습니다. 염화된 토양에 필요한 비료인데다, 찾아보니 새우 속 키틴과 칼슘이 토양 염화를 막는 역할을 하더라고요. 방글라데시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방안이라 생각했습니다. 바로 ‘새우부산물로 만든 농업 비료’로 방향을 바꿨죠.”
방글라데시의 타이거 새우 부산물이 경제성 있는 원료인지 확인하고자 전세계 새우 출장을 다녔다. 베트남, 인도, 멕시코, 아이슬란드 등 약 20개국을 다녔다. 결국 방글라데시 타이거 새우의 부산물이 생물 비료로 활용하기 가장 적합한 소재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세계 새우 시장은 크게 타이거 새우와 흰다리새우로 나뉘는데요. 흰다리새우 수율이 60%로 높지만, 타이거 새우는 40%밖에 안 됩니다. 이 말인즉슨 타이거 새우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많다는 뜻이죠. 방글라데시는 타이거 새우의 98%를 수출해요. 새우 부산물의 쓰임새를 땅을 죽이는 골칫덩어리에서 사업성 있는 원료로 바꾸고 싶었어요."
◇이상을 이루기 위한 당면 문제 해결 ‘사업성 확보’
얼마 전까지 새우에서 키틴을 추출한 뒤 화학 처리해 만든 ‘바이오차’를 연구·개발했다. 바이오차는 ‘바이오매스(Biomass)’와 ‘차콜(Charcoal)’의 합성어다. 바이오차는 새우부산물 같은 생물(바이오매스)을 산소 없이 열분해해 만든 탄소 소재를 말한다.
“바이오매스를 태울 때 온도를 1도씩 올릴 때마다 비용이 크게 오릅니다. 이 비용을 낮추는 게 관건이에요. 나무를 태워 만드는 활성탄은 900도에서, 바이오차는 350도에서 태웁니다. 활성탄 비용이 바이오차보다 적게는 6배에서 많게는 60배 비용이 많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 바이오차 역시 저희가 보기엔 경제성이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새우부산물로 만든 바이오차가 500mL에 3만~4만원이었거든요. 이 정도 가격 수준이면 원예용이에요. 논이나 밭농사 현장에서 쓰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웠죠.”
엠에프엠은 한발 더 나아가 새우에서 키틴, 키토산을 추출하지 않고 부산물을 그대로 태워 만든 생물 비료를 개발해냈다. 화학적 추출 과정을 거치
지 않는 데다 태우는 온도가 바이오차보다 낮아서 경제성이 높다. "저희는 150~200도 사이 온도에서 새우 부산물을 태웁니다. 바이오차와 만드는 과정은 비슷하지만, 온도 등 조건이 달라 엄연히 바이오차는 아니예요."
엠에프엠이 만든 새우부산물 생물 비료는 일반 퇴비와 견주었을 때도 경제적이다. “일반 퇴비는 4~5개월간 숙성과정을 거쳐야 해요. 시간은 오래 걸리고 비용은 많이 들죠. 저희는 숙성 과정 없이 바로 써도 됩니다. 염화된 토양에서 일반 퇴비를 썼을 때 영양분과 수분 유실률이 80%입니다. 단 20%만 작물이 흡수한다는 뜻이죠. 저희가 만든 비료는 유실률이 0%입니다. 소금기 가득한 토양에 저희 비료를 뿌리면, 비료가 방파제 역할을 해서 작물에 염분이 침투하지 못해요.”
엠에프엠의 PoC 결과, 일반 퇴비 사용 대비 소득증가율 100%를 보였다. PoC는 기존 시장에 없었던 신기술을 도입하기 전 이를 검증하는 과정을 말한다. “일반 퇴비보다 현재 비용이 12% 저렴한데, 20%까지 낮추는 게 목표입니다.”
◇스타트업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법
서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진출 전략을 짰다. 코이카에서 지원받는 이유도 현지 농업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아무리 저희 제품이 좋다 해도, 현지인에게 저희는 이름 모를 해외 회사입니다. 농사는 한번 일을 그르치면 한해 흘린 피땀이 그대로 날아가 버려요. 새롭게 무언가를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입니다. 코이카에서 신뢰, 보증을 서주는 덕분에 현지인이 저희 제품을 써볼 수 있어요. 저희가 고군분투할 때보다 좀더 빠르게 현지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죠.”
농업 비료 특성상 현지 경험과 데이터 확보는 필수다. 내년 상반기 베트남과 인도에서 현지 PoC가 예정돼있다. 약 2만평 정도 되는 염화된 농지에 엠에프엠의 새우 부산물 비료를 뿌리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대량 물량을 공급할 수 없고, 네트워크나 자본도 대기업보다 부족합니다. 다만 저희가 타깃으로 하는 친환경 농업은 대기업, 중견기업도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비료를 해외에서 쓰면 안 되거든요. 그 땅에 맞는 걸 써야 합니다. 저희는 개발협력을 통해 누구보다 빠르게 이 산업에 진입해서, 실증 데이터를 얻고 기술을 업그레이드 해나갈 수 있어요. 저희만의 특장점이죠.”
엠에프엠의 사업은 이제 출발선에 와있다. “창업 전 저는 후회를 많이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창업을 해보니 오히려 실패가 기회가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창업하고 한동안 실패의 연속이었는데,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니 원초적 재미가 있더라고요. 제겐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었습니다. 창업이야말로 실패를 흠이 아닌 스펙이자 기회로 인정하는 분야입니다.”
서 대표는 공동창업자 하케 대표와 함께 곧 현지에 여성교육재단을 만든다. 재단 출연금은 5000만원이다. 앞으로 두 창업자의 인건비 일부를 조금씩 덜어 재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회사 자금을 쓰기보다 저희 인건비를 기부와 연계하는 것이 저희에겐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요. 저희가 늘 그래왔듯이 ‘개발도상국 여성 노동 착취 해방’이라는 이상을 위한다기보다 ‘저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작지만 확실한 힘을 낼 수 있는 일’부터 찾고 있습니다.”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