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으로 전염병 확산 정확하게 예측한다
적은 정보로도 감염재생산지수 추정하는 방법 제시
미지의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과학자들은 구조와 실체를 파악하고, 제약사는 바이러스에 대항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한다. 바이러스를 제압할 무기를 만드는 동안, 방역은 국민을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 피해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의료진을 배치하고, 병상을 확보하는 등 대책 수립에 수학이 쓰인다. 특히 인류와 전염병의 전쟁에서 수학은 최적의 방어막 구축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왔다.
김재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의생명 수학 그룹 CI(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최선화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최보승 고려대 교수, 이효정 경북대 교수 연구진과 공동으로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전염병 확산 예측 모델을 새롭게 제시했다고 17일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수리 모델 기반 전염병 확산 모델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게 해준 사례다. 이를 통해 추정한 감염재생산지수(R), 잠복기, 감염기와 같은 변수들은 질병의 확산 양상을 이해하고, 방역 정책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감염재생산지수는 감염자 한 명이 평균적으로 감염시키는 환자 수를 나타낸다.
그러나 기존 모델에는 한계가 있었다. 모델 대부분은 감염자와 접촉한 시점에 상관없이 모든 접촉자가 동일 확률로 감염력이 발현된다고 가정한다. 미래 상태가 현재 상태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마르코프(Markovian) 시스템에 기반해 미래를 추정해 왔다.
하지만 실제 환경에서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 상태도 미래에 영향을 준다. 이를 비마르코프(non-Markovian) 시스템이라고 한다. 감염자와 접촉 이후 잠복기를 거쳐 감염되기 때문에, 접촉 시점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감염력이 발현될 확률이 높다.
최보승 교수는 “현재와 과거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비마르코프 시스템은 수학적 추정과 모델링이 복잡하고, 계산이 어려워서 기존 전염병 확산 모델은 마르코프 시스템을 가정하고 추정을 진행해 왔다”며 “실제 감염병 확산 양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IBS가 이끄는 공동 연구진은 현재와 과거를 모두 고려하는 새로운 감염병 확산 모델을 개발했다. 미래의 변화를 현재의 상태만으로 설명하는 ‘상미분방정식’ 대신, 미래의 변화를 현재와 과거의 상태를 모두 이용하여 설명하는 지연미분방정식을 도입해 기존 모델의 한계를 극복했다.
연구진은 2020년 1월 20일부터 11월 25일까지 서울의 누적 코로나19 확진자 정보를 활용해 새로 제시한 모델의 정확도를 평가했다. 초기 바이러스의 전파로 확진자가 급증했던 시기인 2020년 1월 20일부터 3월 3일까지의 감염재생산지수를 기존 모델은 4.9, 새 모델은 2.7로 추정했다. 확진자 전염 경로를 추적해 얻은 실제 값은 2.7이었다. 즉 기존 모델은 감염재생산지수를 2배 가까이 과대 추정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 감염력을 과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선화 선임연구원은 “과대 예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모델은 감염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일으킬 수 있는 기간과 같은 추가 역학 정보를 사용해 값을 보정해 사용해왔다”며 “새로운 모델은 추가 역학 정보 없이도 감염재생산지수를 정확히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김재경 CI는 “연구진은 새로운 모델을 바탕으로 ‘IONISE(Inference Of Non-markovIan SEir model)’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개했다”며 “향후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전염병 확산 양상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효과적인 방역 전략을 수립하도록 도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지난 9일 실렸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53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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