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삼 한물 갔다뇨. 이 나라 가면 없어서 못 먹는데"
변신하는 한국 인삼
강상묵(49) 금산인삼농협 조합장은 금산군에 전례 없는 비가 쏟아졌던 2020년 8월을 회상했다. 침수 피해 현장에 정신없이 뛰어들어 들어온 물을 퍼내고, 흙더미에 묻힌 물건을 꺼내며 인삼밭을 복구했다.
금산에서 나고 자란 강 조합장은 20여년간 인삼을 재배하다, 직접 농민의 소통 창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농협조합장이 됐다. 강 조합장을 만나 백제 시대부터 1500년간 이어진 금산군의 인삼 이야기를 들었다.
◇인삼 향 가득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합장을 연임하기까지
충청남도 금산군은 백제시대부터 인삼을 재배해 온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이다. 유달리 일교차가 큰 자연적 환경을 갖추고 있어 인삼이 잘 자란다. 금산인삼농협 관할지역 인삼 생산량은 1291t(톤)에 달한다. 충청남도 전체 인삼 생산량의 56%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금산군에서만 우리나라 인삼 생산량의 70%가 거래된다.
고려인삼은 삼국 시대부터 가장 귀한 약재로 여겨졌다. 원기 회복, 면역력 증진, 혈류 개선, 항산화, 간 기능 개선 등 다양한 효능이 있어 만병통치약으로 불린다. 전 세계에서 이러한 K- 인삼의 효능을 주목하고 있다. 2006년 인삼 수출액 100만불을 달성한 뒤 현재 등 15개국에 누적 40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서 인기가 많다.
1923년 문을 열고 지난해 100주년을 맞은 금산인삼농협은 인삼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농축액, 분말, 스틱, 환 제품 등 다양한 인삼가공 제품을 생산 중이다. 자체 유통 제품 외에도 다양한 곳에 원료를 가공해 납품한다.
강 조합장은 인삼 향 가득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인삼 가공하는 공장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인삼을 재배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삼 재배의 길을 걷게 됐어요. 20여년간 인삼 농업과 유통 사업에 종사했습니다.”
인삼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20대부터 금산인삼농협 임원으로 활동했다. 2019년에 조합장에 당선된 후 지난해 재선해 연임에 성공했다.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업인을 대표해서 의견을 펼치는 것이 핵심 업무입니다. 농가 소득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교육, 환원 사업을 유치하는 등 조합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요.”
◇6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인삼
인삼을 재배하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봄에 오염되지 않은 땅을 찾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여름에 풀을 먼저 재배해 비옥하게 만들고요. 가을에는 밭에 고랑을 만들고 인삼 씨앗을 심기 시작해요. 이듬해 봄에 싹이 올라오면 그때부터 1년근으로 취급합니다. 이 과정을 최소 6년 동안 반복하며 재배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6년근이에요.”
인삼은 자라면서 땅의 영양분을 흡수하기에 매번 지역을 옮겨 다니며 농사를 지어야 한다. “인삼 재배는 유목형 농업이에요. 인삼이 한번 재배되면 땅속 영양분이 감소하기 때문에 몽골의 유목민처럼 이동해야 하죠. 현재 금산 지역 출신의 농민들이 전국에 분포하며 인삼 농사를 짓고 있어요. 금산인삼농협이지만 대전, 세종, 제주 등 5개의 시와 5개의 군을 관할하고 있죠. 금산인삼농협 조합인이 전국 각지의 땅에서 재배한 인삼이 모두 금산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재배하기 까다로운 작물이지만 금산인삼농협의 관할 구역에선 재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저희는 인삼만을 취급하는 단일 품목 농협이라 인삼 재배에 이점이 있어요. 인삼 한 작물에만 집중하니 인삼 재배 방법과 같은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거든요. 조합원에게 새로운 농기계 사용법이나 신제품과 관련한 정보를 전달해 인삼 농사를 돕고 있어요. 시설 보조 사업을 통해 저렴하게 자재를 공급하기도 합니다.”
농사 방법을 알려주는 것 외에도 농협의 수매 시스템을 구축해 농민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농협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인삼 가격을 조정해 농민의 소득을 안정화하는 것입니다. 농협이 책정하는 인삼 값에 따라 시장 판매가가 형성되기 때문이에요. 농가 보호 차원에서 자금력을 확보하는 데에 힘쓰고 있어요.”
◇먹기 불편하고 쓴맛이 나는 인삼은 옛말
수매한 인삼은 금산인삼농협의 홍삼 가공 공장에서 등급에 따라 증삼, 건조, 원료 추출 등의 과정을 거치며 제조된다. “수매한 인삼을 수분 함량, 모양, 크기 등의 기준으로 천삼, 지삼, 양삼으로 등급을 구분합니다. 분류된 인삼은 연간 320t(톤) 이상의 수삼 세척과 증삼이 가능한 3437평의 공정 시설에서 가공돼요. 이렇게 만든 제품에 인삼의 근원이라는 뜻의 ‘삼지원’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붙여 롯데면세점, 농협하나로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등 다양한 곳에 유통하고 있죠.”
최근에는 인삼을 기피하는 젊은 소비자를 공략하고자 새로운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대부분 인삼 하면 뿌리삼 형태를 떠올려요. 보관과 손질이 까다롭고 쓴맛이 나서 먹기 힘들다는 의견이 있었죠. 젊은 세대들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인삼을 간편하고 맛있게 섭취할 수 있는 쉐이크, 콜라겐, 어린이용 젤리 제품 등을 주력으로 인삼 소비층을 확대하고 있어요.”
국내를 넘어 K-인삼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면세점 등 입점처를 늘리고 있다. “과거에는 조직이 단단하고 모양이 곧은 금산 인삼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여파로 중국, 홍콩 시장의 수출액이 급감했어요. 우리나라 인삼을 다시 한번 알리기 위해 관광객이 오가는 면세점 입점을 시작으로 해외 홈쇼핑 사이트와 같은 이커머스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에요. 지자체와 연계해 ‘해외 바이어 초청 수출 상담회’를 개최하고 수출 박람회에 참가하는 등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중입니다.”
인삼 소비 촉진을 위해 ‘인삼 먹거리 사업’도 추진 중이다. “도심에 살고 있는 소비자가 인삼을 쉽게 접했으면 했어요. 2022년부터 이마트에브리데이, 롯데슈퍼 등 유통사와 협업해 인삼 튀김과 인삼 쉐이크 등을 제공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인삼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
1926년 625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한 금산인삼농협은 2024년 현재 2200명의 조합원이 몸담은 조직으로 성장했다. 6만평이었던 경작 면의 규모도 407만평으로 커졌다. 2022년에는 18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매출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금산인삼농협이 10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기보다 인삼을 재배하기까지 기나긴 불안한 시간을 견디는 농업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두 번의 임기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20년 수해 현장을 복구했을 때다. “집중 호우로 자식처럼 키워 온 인삼이 다 썩어버렸던 적이 있어요. 멀쩡한 인삼이 절반도 안 됐어요. 농민들은 6년간의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죠. 착잡한 심정으로 피해 현장을 복구하고 있는데 한 농민이 ‘도와줘서 감사하다’며 농산물 한 바구니를 준 적이 있어요.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명감이 올라왔죠. 제가 조합장을 하고 있는 이유예요.”
/이연주 에디터, 이소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