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잘못 들어온 '매미'…10분간 손에 품어준 사람[인류애 충전소]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앉을 자리가 있나 두리번거렸다. 다른 자리는 꽉 차 있는데, 딱 한 곳만 비어 있었다. 왼쪽 맨 앞 창가 좌석이었다.
조금 의아했으나 털썩 앉았다. 여기만 빈 이유를 금세 알았다. 창틀에 쓰름매미가 붙어 있었다.
한여름을 알리며 "쓰-름, 쓰-름"하고 구애하는 그 매미. 나무껍질에서 알로 1년, 땅속에서 유충으로 5년. 그리 오래 준비하다 막상 성충이 되면 고작 2~3주 살고 떠나는.
짧은 삶. 한껏 울다가도 애달픈데, 인간 세계에 잘못 들어선 거였다. 당황해 날아다녔다간 대부분 싫어할 거였다. 급하게 잡으려 할 거였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었다.
다행이었던 건, 그 자리에 앉은 이가 다름 아닌 현주씨란 거였다.

그러나 한 사람이 길 잃은 매미에게 다정했고, 그로 인해 짧은 수명이나마 다하게 된 거였다.
형도 : 매미를 버스에서 보다니 드문 경험이긴 하지요.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요.
현주 :'매미가 왜 버스에 있지?'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어떻게 왔을지 상상했지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친구가 옆에 있었다면 기겁했겠다, 다른 사람도 놀랄 수 있겠다, 어디 날아가기 전에 잡아야겠다.
형도 : 사람 입장에선 매미가 파닥거리며 날아다니면, 아무래도 그랬을 거예요.
현주 : 실제 친구에게 카톡으로 물어보기도 했었어요. 매미가 날아가면 다른 승객들이 놀랄 거 같냐고요. 그랬더니 다들 싫어하더라고요(웃음).
형도 : 매미 입장에서도 얼마나 놀랄까요. 여긴 어디지, 낯설고 무서울 거고요.
현주 : 맞아요. 매미 입장에서도 많이 놀랬을 것 같더라고요. 다칠 수도 있잖아요.

형도 : 그래서 이제, 잡아보려 하셨을 거고요.
현주 : 매미가 앞으로 계속 기어가다가 한 번 날아올랐어요! 아마 다른 곳으로 탈출하려고 했나 봐요. 그런데 못하더라고요. 이미 많이 지쳤는지, 결국 제 바지 위로 떨어졌어요.
형도 : 아마도 이미 애써봤으나 잘 안됐겠지요. 매미가 혹시 무섭진 않으셨을지요.
현주 : 어릴 때부터 곤충, 파충류, 양서류 등 많이 접해보고 만져봤었어요. 그래서 무섭진 않았는데요. 고민이 된 건 있었어요. 9살 때 매미를 잡고 있다가, 녀석이 제 손에 입을 꽂아 따끔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날개 달린 건 요정'이라 생각하던 때라 충격이었지요! 그런데요. 또 물릴까 걱정되면서도 보고 있자니 또 귀엽더라고요.

형도 : 매미를 잡기 힘드시진 않으셨을까요. 워낙 오랜만이어서요.
현주 : 다칠까 봐 조심스레 잡았어요. 날개가 손에 닿지 않게 하려고 공간도 여유 있게 만들었지요.
형도 : 매미가 얌전히 있어주던가요.
현주 : 다행히 심하게 버둥거리거나, 날아가려고 하진 않더라고요.

형도 : 그리고 나선 어떻게 하셨을까요.
현주 :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10분 정도 걸렸는데요. 그때까진 살며시 잡고 있었지요. 고민했어요. 아무래도 길 한복판엔 나무도 많지 않고, 사람들이 많아 위험할까 봐요.
형도 : 그런 부분까지 고민하셨군요. 세심하게도요.
현주 : 집 마당에 있는 나무에 놓아줘야 하나, 걱정했지요. 다행히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적당한 나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위에 올려주었어요. 사람들도 많이 안 다니는 길이었어요.

형도 : 감격의 순간이네요. 나무를 본 매미는 어땠을까요.
현주 : 천천히 놓아주니 앞다릴 한 발, 한 발 떼어서 나무로 가더라고요. 잘 올라갔어요. 다치거나 그렇진 않아 보였어요. 그제야 안도했습니다. 실은 매미에게 이름도 지어줬었어요. '미미'라고요.
형도 : '미미'라, 어떤 의미를 담아 지어주신 걸까요.
현주 : 친구들에게 매미랑 친구됐다고 소개할 때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이예요. 매미의 '미'를 두 번 붙였지요(웃음). 대충 지은 이름이지만, 부르니 정이 들고 오래 살았으면 싶더라고요. 뜻깊게 고민해 지었다면…아마 퇴근하고 맨날 미미를 놓아준 자리에 찾아갔을 것 같아요.

형도 : 실은 매미를 보고 모른척하는 게 더 쉽잖아요. 아니면 가만히 바라볼 수도 있고요. 원래 그런 걸 잘 지나치지 못하시는 편인지 궁금해요.
현주 : 원래도 잘 못 지나치는 편이에요(웃음). 지렁이가 사람들 다니는 길에 나와 있으면 밟힐까 봐 풀숲에 옮겨주고요. 풀잎이나 나뭇가지로요. 아, 박각시나방을 숲에 풀어준 적도 있어요.

형도 :박각시나방이요? 그 얘기도 더 듣고 싶은데요.
현주 :짧은 터널 바닥에 뭔가 기어 다니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박각시나방이었어요. 날려고 하다 천장이나 벽에 부딪혀 계속 떨어지더라고요. 이내 다시 기고요. 터널 밖에 나가 큰 나뭇가지를 주웠어요. 박각시나방이 올라가게 한 뒤, 같이 산책로를 걷다가 꽃밭에 갔지요. 훨훨 날아갈 때까지 기다려줬어요!
형도 : 자꾸 더 듣고 싶어집니다. 왠지…비슷한 이야기를 더 품고 계실 것 같은데요.
현주 : 횡단보도 가운데에서 작은 호박벌을 본 적도 있었어요. 차가 쌩쌩 다니는데 기어 다니고 있더라고요. 다쳐서 못 나는 걸까 싶어, 얼른 잡아서 건너갔지요. 다행히 몇 분 안 지나서 풀숲으로 날아갔어요. 차들이 달리며 내는 바람 때문에 못 날았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형도 : 어떤 마음이 드시는 걸까요. 작은 존재들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신 뒤에요.
현주 : 제가 발견해 다행이란 생각도 해요. 못 보고 지나쳤다면 무슨 사고라도 당할 수 있으니까요. 주변 친구들은 새를 구해준다거나, 그런 경험이 적다는데 저는 남들에 비해 자주 겪는 것 같아요. 신기해요.

형도 : 자주 겪으시는 건,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으시기 때문일 거예요.
현주 : 그런데 한편으론, 그만큼 위험에 처한 동물들이 많다는 거잖아요. 슬프기도 해요. 그래서 도울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려고 하지요.

형도 : 하지만 매미가 있던 그날 그 마을버스. 실은 거기 현주님만 있으셨던 건 아니잖아요. 작은 존재와 더불어 살려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지도 듣고 싶어요.
현주 : 어릴 때 시골에 놀러 가면 부모님께서 "이건 청개구리, 방아깨비, 귀뚜라미야" 이렇게 알려주셨어요. 저랑 동생이 궁금해하니 이것저것 보여주고 싶으셨나 봐요. 하루는 외삼촌께서 절 놀래킨다고 뱀을 잡아주셨는데, 선물인 줄 알고 데리고 놀았던 적도 있어요. 엄마가 그걸 보시고 뱀을 다시 산에 풀어주셨지요.

동물을 좋아하게 됐을 어린 현주씨가 몰래 병아리를 산 적이 있었다. 학교 앞에서 삐약삐약거리는 걸 보고, 키우고 싶은 맘이 든 거였다. 병아리를 데리고 가니 부모님이 이리 말씀하셨다.
"생명은 함부로 데려올 수 없는 거야.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 네 노력도, 병아리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단다."
그걸 들은 현주씨는 컴퓨터로 이것저것 찾아보며 병아리에게 진심을 다했다. 덕분에 닭으로 잘 자랐다고.
그러니, 정말 중요한 배움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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