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사가 추천하는 가을 신상 향수 6
안녕하세요. 향수책 <아이 러브 퍼퓸>를 쓴 향수 읽어주는 여자, 조향사 오하니입니다.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자연을 만나게 하는 그린 계열, 풍성한 구어망드 같은 향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이에요. 이번 가을에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향수들이 출시되어서 일상이 더욱 향기로워질 거 같아요. 가을 신상 향수 6종 리뷰, 지금 시작합니다.
구찌 플로라 고저스 오키드
Gucci Flora Gorgeous Orchid
계열: 구어망드 플로럴 오조닉
분사하자마자 당당하게 돌진하는 바닐라를 만날 수 있는 구어망드 향수. 짙은 브라운 바닐라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고 푸른 하늘, 비 온 후 깨끗한 하늘 공기를 누리는 듯한 오조닉(ozonic)함을 품었어요. 산뜻하고 촉촉한 아침이슬 물내음 같기도 한 파란 신선미가 둘러쌉니다. 예측 불가능한 드라마를 보는 듯 해요. 오색빛깔 찬란한 과감한 플로럴 패턴의 독특한 커팅 디테일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이들이 생각나요. 패션으로도, 향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맥시멀리스트들을 위한 향수. 그러면서도 묘하게 옆에 있는 이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지닌 사람들이에요. 그건 아마도 잔잔하게 다가오는 오키드, 오조닉이 편안함을 선사해서일듯합니다. 첫인상은 강렬한 달콤함을 가졌지만 함께하는 시간 동안은 기분 좋은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떠올리게 해요.
이솝 비에레
Aesop Viere
계열: 그린 우디
초록입니다. 다분히 이솝스러운 초록이에요. 평범하지 않지만 거북스럽지도 않은 초록의 향연. 쁘띠그레인, 베르가못, 갈바넘, 그린티, 시더우드, 헤이(건초) 노트들이 적혀져있는데 이솝은 언제나 그렇듯 이솝만의 향을 완성해냅니다. 처음 시향했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교회오빠가 절 갔다왔나 싶었어요. 단정한 프레피룩을 입은 멀끔한 교회오빠가 초록 풀과 갈색 나무의 고요한 절로 가는 장면이 떠올랐답니다. 평소에 운동보다는 책을 읽고 감정기복없는 차분한 사람인데 우연히 그 사람의 팔을 잡았더니 재킷 안에 아주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이 느껴지는 든든한 초록 우디향. 미들노트로 핑크 페퍼가 코를 톡톡 치는데 그건 마치 근육을 잡은 내 손끝으로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힘줄과 콩닥콩닥 뛰는 심장소리 같아요. 공부 잘하는 안경캐 교회오빠의 취미생활이 킥복싱일 것만 같은 반전 매력의 그린 우디 향입니다.
딥티크 릴리피아
Diptyque Lilyphea
계열: 플로럴 그린
카다멈, 바이올렛 잎, 바닐라라는 각각의 노트를 따지기 전에, 분사하자마자 ‘참으로 묘한 플로럴 향수군’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묘하게’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의 향기. “비싼 제품을 들고 다니는 거 같지는 않은데 묘하게 고급스럽고 다 좋아보여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추천합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시리즈의 프랑스어 제목인 ‘님페아스’를 결합한 릴리피아라는 이름처럼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플로럴함의 탑노트가 지나간 자리를 카다멈, 싱그러운 바이올렛 잎이 자유롭게 나타나요. 호수 주변에서 자라는 물기 촉촉한 풀잎의 향을 만끽하게 되어요. 탑노트와 다른 미들 노트의 변화가 마치 로맨스 영화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스릴러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분을 갖게 합니다. “저 사람 참 묘한 매력있어.”라는 말로 기억되는 사람들을 위한 향수.
본 투 스탠드 아웃 네이키드 런드리
Born To Stand Out Naked Laundry
계열: 궁극의 파우더리 알데하이드
극강의 알데하이드. 궁극의 파우더리. 내가 알데하이드를 마시는 건지, 알데하이드가 나를 마시는 건지 알기 힘든 향수예요. 프랑스의 목욕하는 여인처럼 강력한 파우더리함을 만나게 해주는 네이밍인 ‘홀딱 벗은 세탁’입니다. 깨끗하게 세탁을 마친 린넨의 보송보송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요. 마치 그동안 사람들이 알데하이드를 플로럴, 순백의 성스러운 세탁이라 찬양한 것에 대한 반항 같아요. 기존의 통념을 깨부수고 강력한 알데하이드 제국의 통치자가 되고야 마는 야심많은 향입니다. 파우더리한 노란빛 미모사 앱솔루트, 엠버의 두툼한 암브리놀이 더해져서 더더욱 그런 듯해요. 출퇴근길에 누군가 이 향을 입고 탄다면 2호선 한 바퀴를 다 돌아도 절대 안 빠질 정도로 강력한 향이예요. 이 가을, 향으로 위치 추적 당하고 싶다면 추천드립니다.
바이레도 데저트 던
Byredo Deset Dawn
계열: 스모키 우디 플로럴(로즈)
시향지에 시향했을 때는 ‘어? 이거 너무 익숙한데, 한 때 성수동 패피들 교복 같았던 그 향수 아닌가?’했는데 피부에 분사하니 타는 듯한 짙은 연기 속 우디함에서 피어나는 장미를 만나게 됩니다. 탑노트에서부터 스모키함이 광활하게 등장해요. 그러다 장미꽃 한 송이가 등장하더니 어느덧 풍성한 장미꽃 한 다발이 내 앞에 놓여집니다. 실크 머스크의 매끄러움이 더해져서 타들어 가는 연기 속 나무는 장인이 만들어낸 귀한 가구가 되는 듯합니다. 제트비행기 타고 사막에 도착해 고급 리조트에 앉아 새벽을 보는 순간의 향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하게 만듭니다.
딥티크 부아 꼬르세
Diptyque Bois Corse
계열: 우디 커피
탑노트에서는 성시경과 함께 부드러운 커피 한잔과 티라미수를 먹고, 미들 노트에서는 이적처럼 단정하고 세련된 통카빈과 샌달우드의 우디함을 만나는 향수예요. 종이 시향지에서보다 피부에서 커피의 향을 뚜렷하게 만날 수 있어요. 마치 온라인 데이팅에서 만난 사람과 카톡만 주고받기보다 실제로 만나서 커피 한잔하는 그 실체감. 누군가 이 향수를 입고 제 옆에 있다면 광택이 좋은, 붉은기 감도는 짙은 브라운의 마호가니 원목가구로 꾸며진 공간에서 해질녘의 햇살을 맞으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