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소외 지자체, 연계버스 늘려 ‘무궁화호’ 지켜야”

강성만 기자 2026. 5. 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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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무궁화호를-위하여’ 낸 이후연구소 하승우 소장
하승우 소장이 한겨레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무궁화호를-위하여’(한티재).

풀뿌리 민주주의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하승우(55) 이후연구소 소장이 지난 3월 펴낸 칼럼 등 사회비평 글 모음집이다. 이런 유의 책으론 드물게 출간 한달 만에 2쇄를 찍었다.

그는 올해로 13년째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서 저술과 강연, 지역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산다. 대학원 시절인 2001년 무렵부터 풀뿌리 정치에 관심을 쏟아온 그가 수도권에서 지역 농촌으로 터전을 옮긴 데에는 “분권과 자치의 중요성을 외치는 사람이 굳이 수도권에 살아야 할까, 세상을 비판하기 전에 나부터라도 수도권을 벗어나자”는 마음이 컸단다. 여기에 서울역에서 밤 10시55분 출발해 새벽 1시 옥천에 닿는 무궁화호 열차도 힘이 되었다. 서울에서 늦게 강의나 토론회가 있더라도 충분히 기차로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년이 흐른 지금, 옥천에 닿는 서울발 무궁화호 막차는 2시4분으로 8시간 이상 당겨졌다. 아이티엑스(ITX)-새마을호도 4시54분이면 끊긴다. 몇편 안 되던 서울발 고속버스 노선도 다 사라졌다. 서울에서 늦게 일을 보고 열차를 이용하려면 무궁화호보다 두배 비싼 케이티엑스를 타고 대전까지 와서 다른 교통편을 찾아야 한다.

“케이티엑스에서 무궁화호를 갈아타더라도 환승 대기가 보통 30~40분이라 무궁화호만 탈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립니다. 특히 플랫폼 찾기가 쉽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환승은 공포입니다.”

지난 22일 대전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하 소장의 말이다.

‘무궁화호를-위하여’ 표지.

그는 옥천 이주 뒤 시민단체 옥천순환경제공동체에 들어가 통계를 기반으로 지역 현실을 살피는 보고서를 협업해 냈고, 선거철이면 지역 선거 공약을 만드는 데도 힘을 쏟았다.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지역 공동체라디오 진행도 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은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이번 책에서 지난 12년 체험을 토대로 짚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다. “30년이 넘는 지방자치제 역사에도 지방 내부의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중앙-지방-시민의 위계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중앙의 마름 위치에 만족하면서 무력함만 강조하고 있으며 여기엔 관료가 중심에 놓인 이권 동맹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교통권 문제란다. “우리 지역 청소년의 가장 큰 불만이 교통입니다. 읍에 고교가 하나 있는데요. 학생들이 면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버스가 오후 7시면 끊겨요. 그래서 학생들이 한 시간 정도라도 늦춰달라고 지난 몇년 계속 정책 제안을 했지만 반영이 안 됩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놀 권리인 문화권도 침해당하고 있어요.”

군이 학생들 요구를 거부하면서 내세우는 이유는 물론 예산이다. 그는 “군에서 매년 지역 버스회사에 주는 60억 가까운 보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 ‘대중교통기본계획’을 보여달라고 군에 요청해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지자체는 법에 따라 5년마다 대중교통기본계획을 새로 짜야 합니다. 이때 주민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게 바람직한데요. 실제 의견 수렴은 형식에 그치고, 대부분 지역을 잘 모르는 외부 업체에 용역을 줘 만듭니다. ”

12년 전 충북 옥천군으로 이주한
풀뿌리 민주주의 연구자·활동가

“케이티엑스 닿지 않는 농촌 지역
무궁화호도 줄어 기차 이용 힘들어
농촌 주민들 교통권 확보 차원에서
무궁화호 현 기능 유지하는 것 중요”

그는 농촌 지역 대중교통이 나빠지면서 주민 차량이 크게 늘어 군마다 수십억원을 들여 주차장을 짓고 있다면서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중교통 확충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동네도 집집마다 맞벌이도 하니 차가 세대씩 되는 집이 많아요. 군에서 주차장 만들 돈으로 대중교통 개선에 힘쓰면 좋겠어요.”

그는 이어 평균 시속 90㎞로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의 현 기능을 유지시키는 것이 케이티엑스가 연결되지 않는 지역민들의 교통권 확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궁화호 노선이 크게 주니 지역 주민들이 인접 군을 가는 일도 승용차가 없으면 쉽지 않아요. 무궁화호 도착 시간에 맞춰 군에서 버스 노선을 만들면 무궁화호 이용자가 늘어 코레일이 노선을 축소할 명분도 줄지 않겠어요.”

부산이 고향인 그는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학부 시절부터 ‘녹색평론’을 애독하며 아나키즘과 녹색 운동에 경도되었단다. 2006년에는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재구성한 논문 ‘풀뿌리 공론장에 관한 이론적 고찰’로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껏 ‘민주주의에 반하다’, ‘아렌트의 정치’ 등 약 60권(공저·번역서 포함)의 책을 냈다.

그의 형 역시 시민운동가인 하승수 변호사이다. 동생이 옥천으로 오고 1년 뒤 형도 충남 홍성으로 이주했다. 그는 자신이 풀뿌리 민주주의에 인생을 건 데는 형의 역할도 없지 않다고 했다.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있던 2001년에 형이 만든 시민단체인 시민자치정책센터가 연 전국 활동가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풀뿌리 운동의 매력을 봤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외부 동력이 아니라 자기 필요 때문에 운동에 나섰다는 점이 무척 놀라웠어요. 활동 방식도 예전처럼 계몽적이지 않았고 활동가들 대부분이 주부 등 여성이더군요. 그 뒤로 2년 동안 풀뿌리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도 했죠.”

하승우 소장. 강성만 선임기자

인터뷰 끝에 옥천살이로 한국 풀뿌리 정치에 대해 새로 가다듬은 생각이 뭔지 물었다. 그는 책에 ‘학교와 직장, 마을 그 어디에도 민주주의가 성장할 정치라는 저수지의 물이 거의 말랐다’고 썼다.

“주민들 문제보다는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가 큽니다. 이 지역만 봐도 인구수가 줄면서 국회의원 선거구 군이 3개에서 4개로 늘었어요. 이러면 이름이 이미 알려져 기득권을 가진 인물이 아니면 선거를 하기 힘들어요. 이번에 보니 기초의원 선거구도 3곳에서 2곳으로 줄면서 두 선거구 모두 면과 읍을 섞었더군요. 읍 사람들은 면 출신 후보자를 잘 모르잖아요. 결국 정당을 보고 찍게 되고 소수 정당 진입은 더 힘들어집니다. 기초의원 선거구 조정에는 거대 정당에 속한 이 지역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작용했겠지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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