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이 도쿄돔을 뒤흔들었던 하루였다. 단순히 한 경기의 무승부가 아니라, 오랫동안 막혀 있던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9회말, 2아웃, 그 흔한 주자 한 명조차 없던 상황에서 김주원이 날린 동점 홈런은 그 자체로 영화처럼 짜여진 한 장면이었다. 이 한 방 덕분에 한국 야구는 또 하나의 어두운 기록, ‘한일전 11연패’를 가까스로 피했고, 대표팀은 내년 WBC를 향한 희망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 도쿄돔 평가전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경기였다. 새로운 대표팀 지도부, 젊어진 선수단, 급하게 꾸린 로스터, 여기에 시즌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까지 겹쳐 완벽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작지 않은 수확이 있었고, 몇몇 선수는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김주원, 안현민, 송성문, 그리고 고작 19살의 정우주까지, 젊은 피들이 도쿄돔에서 빛을 냈다는 점은 대표팀에게 무엇보다 큰 의미였다.
경기의 시작은 불안했다. 타선은 초반 기회를 살렸지만 투수진이 흔들리면서 연속된 볼넷이 위기로 이어졌다. 이틀 동안 합쳐 23개의 사사구를 내줄 정도로 투수들의 제구는 크게 흔들렸다. 국제대회에서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지는 건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지만, 실제로 마운드에서 이런 상황을 경험해본 선수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표정에도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럼에도 젊은 투수들은 흔들리면서도 결국 자신이 던져야 하는 공을 던졌고,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는 분명했다.

특히 정우주는 이날 경기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증명한 선수였다. 150㎞ 중반의 패스트볼, 흔들림 없는 투구폼, 그리고 도쿄돔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태도까지, 신인이라기보다 이미 한 단계 성장한 투수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일본 타자들이 정우주의 공에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야구가 자랑하는 정확한 콘택트 능력조차 그의 빠른 공과 슬라이더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는 건, 대표팀에게 앞으로 얼마나 든든한 자원이 생겼는지를 의미한다.

김주원의 홈런은 경기와 평가전 전체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장면이었다. 스위치히터이자 공·수·주가 모두 되는 유격수라는 점에서 김주원은 이미 국내에서도 귀한 자원으로 꼽히지만, 이번 한 방은 그의 존재감을 세계 무대에 확실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 오타 다이세이는 일본에서도 최정상급 불펜 투수로 평가받는 선수인데, 그의 3구째 패스트볼을 그대로 잡아당겨 우중간 담장을 넘긴 건 단순한 운이 아니라 김주원의 실력을 그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홈런 이후 베이스를 도는 그의 표정에서 긴장과 해방감, 그리고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날 경기를 통해 대표팀은 단순한 결과 이상의 의미를 얻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력과 공격적인 플레이가 있었다. 안현민의 더블스틸, 송성문의 재치 있는 주루와 멀티히트, 박동원의 희생플라이까지, 젊은 선수들의 과감함은 그동안 대표팀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일본전에서 이런 시도가 통했다는 사실은 내년 WBC에서 충분히 변수가 될 수 있다.

감독 류지현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가능성을 엿본 경기였다”고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이틀 연속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선수들이 스스로 흐름을 타고 경기력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볼넷과 제구 난조라는 과제는 분명 남았지만, 지금처럼 일찍 대표팀이 소집되고 체계적으로 준비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류 감독은 1월부터 대표팀 소집을 언급하며 내년 WBC를 향한 철저한 준비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평가전은 ‘우리가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준 무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가’를 확인한 자리였다. 예전과 달리 대표팀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실수해도 금세 웃으며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타석에서 물러나도 다음 상황을 분석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런 분위기는 성적보다 더 중요한 기반이 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한국 야구에는 다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젊은 선수들이 많다. 김주원은 어느새 대표팀의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되었고, 안현민은 일본 야구가 직접 ‘메이저리그급 선수’라고 평가할 정도로 파괴력을 인정받았다. 정우주는 단 몇 경기로 대표팀 마운드의 신뢰를 얻었고, 송성문은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는 타자라는 점을 확실히 증명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파워 피칭은 있지만 제구가 불안한 투수들,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할 중심 타선의 침묵 등 대표팀에 개선해야 할 지점은 분명 많다. 그러나 이날 도쿄돔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적어도 “우리 야구는 뒤처지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다시 일깨우는 데 충분했다. WBC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필요한 건 완벽한 전력보다, 도쿄돔에서 보여준 것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과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주원이 있었다. 마지막 타석에서 던진 한 방은 평가전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한국 야구가 다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 한 방이 대표팀의 발걸음을 다시 WBC 무대로 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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