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치열해진 전기차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 없는 섬세함’ 필요해
- 에어로 다이나믹의 산실 ‘공력시험동’…아이오닉6 기반 ‘에어로 챌린지 카’ 첫 선
- -40~60도 극한 체험…사막부터 얼음 속까지 구현한 환경시험동
- 타이어부터 주행까지 치열한 데이터 싸움 펼치는 R&H 성능개발동
- 소리마저 잡는다…주행음 조율 위해 돌비 애트모스로 구현한 NVH 동

<카매거진=최정필 기자 choiditor@carmgz.kr>
“지금 여러분이 계신 곳이 풍동 터널입니다. 평소에는 시속 140~200의 강풍을 쏘지만 오늘은 여러분의 체험을 위해 시속 60으로 비교적 선선하죠”
전기차 시대가 되며 자동차 개발은 더욱 어려워졌다. 기존 자동차에서 측정하고 개선해 오던 모든 영역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한 새로운 고려요소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거기에 맞춰 소비자의 높아진 눈높이는 자동차 제조사로 하여금 끝나지 않는 어려운 산을 마주하게 했다.
넓어진 시장에 맞춰 60도에 육박하는 사막과도 같은 뜨거운 환경도, 얼음장 같은 영하 40도의 환경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환경을 모두 견디는 차를 만들기 위해선 상상 이상의 설비가 필요한 법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23일(수) 남양기술연구소의 모빌리티 개발 핵심 시설을 공개하며 글로벌 EV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을 소개했다. 다시 말해, 수많은 소비자의 입맛도 맞추고 까다로워진 시장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의 모인 곳을 공개한 셈이다.
현대차그룹의 기술적 노력이 담긴 산실, 남양연구소 신차 개발 핵심시험동 4곳을 둘러봤다

◆ 축구장 넓이에 마련된 매끈한 바람 터널 ‘공력시험동’…공기역학의 절정
처음 방문한 곳은 바람의 길을 연구하는 공력시험동이다. 신차 개발과 관련해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자동차 위에 여러 줄의 흰 연기가 지나가는 장면이 찍히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자동차가 주행하며 만나게 되는 바람의 영향. 즉 에어로 다이나믹을 눈으로 확인하고 수정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직경 8.4m, 건물 3층 높이의 거대한 터빈이 핵심 시설이다. 터빈이 설치된 곳과 터빈 날개 사이의 틈은 10mm에 불과하다. 최적의 바람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소한의 틈을 준 것이다. 약 3400마력의 출력으로 만들어낸 맹렬한 바람은 네모난 바람길을 통해 자동차를 덮친다. 이 바람은 평균 시속 140km, 최대 200km/h까지 속도를 재현할 수 있다.
네모난 바람길의 각 모서리에는 바람의 결을 다스리는 거대한 핀이 자리한다. 터빈이 만들어낸 거친 바람을 정제하고 깎아내 매끄러운 바람을 만들어 주행풍에 가깝게 정제하는 셈이다. 이렇게 다스려진 바람은 자동차를 휘감고, 다시 터빈을 향해 달려간다. 순환식 공기 흐름을 만들어 터빈의 부하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공력시험동의 중앙에는 500원짜리 동전의 무게도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의 자동차용 저울이 자리했다. 실험의 과정에서 자동차의 무게가 줄어들게 되면 차를 위로 띄우는 양력이, 반대로 늘어나면 흔히 ‘다운포스’라고 부르는 항력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차체 하부의 흐름까지도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컨베이어 타입의 노면도 자리했다.
이 날 현대자동차는 아이오닉 6를 기반으로 한 에어로 챌린지 시험 모델도 선보였다. 기존 아이오닉 6와 비교해 훨씬 긴 후면 오버행, 헤드램프 측면으로 들어가 앞바퀴 옆을 감싸는 에어커튼을 만들고 뒤로 빠져나가는 바람길, 와이퍼 등의 부속품에 의한 공기저항을 막기 위한 가변형 후드커버가 적용됐다. 뿐만 아니라 뒤쪽으로 흘러가 차가 나아가지 못하도록 잡아 끄는 후류(後流)를 파훼하기 위한 가변 확장형 스포일러와 가변형 디퓨저, 측면부의 공기 흐름을 매끄럽게 밀어내는 가변형 차체 등이 적용됐다.
현대차가 밝힌 이 차의 공력계수 Cd 값은 최대 0.144.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였던 비전 EQXX의 0.171과 비교해 0.03이 낮은 수치다. 아이오닉 6 초기형의 공력계수가 0.214, 후기형이 0.206의 값을 갖고 있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보다 쉽게 비교하면 주행거리로는 아이오닉6 대비 약 60km, 이를 배터리 탑재량 등으로 개선할 경우 제조단가만 약 600만원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 사막 같은 50도, 북유럽의 -20도…불타오르는 아이오닉 6 N과 얼어붙은 아이오닉9
두번째로 방문한 곳은 환경시험동. 자동차에게 가장 혹독한 환경이다. 물론 신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소에서만 모든 것을 진행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시뮬레이션으로만 모든 것을 확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적 한계라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다.
환경시험동은 이를 해결해주는 장소다. 정확한 명칭은 환경 풍동 챔버. 냉난방 뿐 아니라 습도 조절도 가능해 냉난방 공조(HVAC) 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와 엔진 냉각계통에 대한 검증이 함께 진행된다. 시험장에 따라 최고 온도 60도, 또는 최저온도 -40도까지 설정 가능한 환경실험동에서는 열관리와 관련된 시험을 진행한다. 물론 새롭게 사용된 소재의 내구성을 확인하는 시험동도 있지만 이는 별도의 장소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50도에 육박하는 중동의 날씨를 구현한 곳에는 최신의 아이오닉 6 N이 한껏 쪄지고 있다. 안에 탑재된 더미 인형에는 온도계가 탑재, 사람이 체감하는 온도도 함께 측정한다. 반면 북유럽의 -20도를 설정한 저온 챔범에는 PV5가 차갑게 얼어가고 있다. 극과 극의 온도 환경을 구현해 고효율 히트펌프, 냉난방 공조 및 PE 시스템의 내구성에 대한 검증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 중 압권은 강우 강설 환경 풍동 챔버. PV5가 -20도의 환경에서 얌전히 서있었다면, 이 곳에서는 아이오닉 9이 시간당 7cm에 달하는 강설을 맞고 있다. 설정된 온도는 -30도. 스키장에서 사용되는 인공 강설과 같은 원리로 눈을 만들어낸다. 두꺼운 방한복 없이는 내부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최근 우리나라 날씨도 여름에는 기습적 강우, 겨울에는 폭설이 내리기 일쑤다. 단지 해외 시장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충분히 유효한 시험이 진행되는 셈이다.

◆ “타이어 제조사 아닙니다만…타이어부터 측정합니다” R&H 성능개발동
자동차 개발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다양한 시작점이 있겠지만 라이드 앤 핸들링, R&H 분야는 타이어부터 시작할 필요성이 있다. 자동차가 도로와 맞닿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노면의 충격을 받아내는 부분도, 선회 시의 차체 거동을 견뎌내는 것도 타이어의 역할. 단순 수치만으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정밀한 수치를 기반으로 그 이상을 테스트하는 곳이다.
특히 엔진의 미묘한 떨림과 소리가 사라진 전기차에선 흔히 ‘로드 노이즈(노면 소음)’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고성능의 스포츠카에선 감성의 자극을 위해, 고급 세단에서는 정숙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타이어부터 측정에 들어간다. 고속 타이어 유니포니티로 불리는 시험기는 타이어를 고속으로 회전시키며 미세한 불균형을 잡아낸다. 휠과 타이어 모두, 얼핏 보기엔 완벽한 원형이지만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불균형이 생기기 마련.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정확한 주행감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차체는 고정하고, 노면이 움직이는 환경은 시험장 또는 도로 주행의 번거로움을 없앤다. 오르막과 내리막, 급격한 코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면 환경을 구현하도록 한 것. 실제 주행에서는 도로가 가만히 있고 자동차가 움직인다면, 이 시험동에서는 자동차가 가만 있고 도로가 움직이는 셈이다. 주객이 달라졌을 뿐, 타이어와 서스펜션의 움직임은 동일하게 측정할 수 있다.

◆ 승차감의 완성은 소리. 돌비 애트모스로 듣는 주행소음
전기차 시대가 되며 바뀐 트렌드 중 하나는 소리에 예민해졌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들어왔던 엔진의 소리와 떨림은 전기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 때문에 원래부터 존재했지만 알아채지 못헀던 여러 소리가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어필한다.
그러나 고급스럽고 편안한 승차감을 만들기 위해선 이 부분이 화룡점정이 되는 법이다. 전기차 시대에선 더욱 그렇다.
전세계의 다양한 도로 환경을 재현한 승차감 주행시험기는 특별한 경험이다. 다양한 실측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노면 모형을 거대한 드럼에 장착, 자동차가 실제로 주행하는 듯한 환경을 만들어낸다. 노면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측정해 균일한 정숙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시험장에 준비된 GV70 일렉트릭에 올라타 경험하니, 순식간에 독일 외곽의 자갈길이 발 밑에 펼쳐진다. 담당 연구원은 “정확한 개수는 밝힐 수 없지만 수 많은 노면 샘플을 직접 제작해 갖고 있으며, 직접 가서 테스트 하기 전 이 환경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시험을 진행한다”고 설명한다.
뾰족하고 두꺼운 흡음 스폰지로 도배된 무향시험동에서 GV70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실내에 탑재된 두개의 마이크는 운전석과 뒷좌석의 소음을 감지한다.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소음과, 차체를 타고 들어오는 떨림을 측정해 소음의 근원을 찾아낸다. 전기차의 조용한 주행 감각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과정인 셈이다.

몰입음향 스튜디오는 가상 평가 환경(VR)과 돌비 애트모스로 구성됐다. 전기차가 저속 주행할 때 발생하는 고주파의 AVAS 음향부터, 차종과 도로환경, 주행 환경에 따른 소리의 차이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40개의 스피커로 플어내는 주행음은 우리나라 도심에서의 전기차 주행은 물론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내달리는 경쟁사의 스포츠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판매량은 약 723만대. 3년 연속 글로벌 자동차 판매 3위를 기록했다. 2022년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2023년 아이오닉 6, 2024년 기아 EV9에 이어 올해 EV3까지, 우수한 상품성의 전기차를 만드는데 매진했다. 그 결과 지난 5월에는 전용 전기차 글로벌 누적 판매 100만대를, 현대차그룹의 전용 전기차는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자동차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우수성을 입증한 셈이다.
적어도,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에 자리한 시험동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3위 판매량의 저력은 이 곳 연구원의 땀방울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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