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으로 하림 주식 사겠다'는 강남 초등생 말 듣고 서울대생이 벌인 일

자녀 용돈 관리·교육 앱 퍼핀 개발한 레몬트리 이민희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일상 속 경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녀 용돈 관리 앱 '퍼핀'을 개발한 레몬트리 이민희 대표. /더비비드

2000년대에도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이 많았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콘서트 티켓을 사겠다며 부모님 몰래 급식비를 빼돌리는 일쯤은 별일도 아니었다. 공연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으로 포토카드를 만들고 방송 화면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판매하는 팬도 있었다. 주로 공연장 앞에서 거래의 장이 열렸다.

레몬트리 이민희 대표(37)도 그중 하나였다. 그룹 '신화'의 팬이었던 이 대표는 멤버들의 사인을 코팅해서 팔거나, 콘서트 현장에서만 파는 굿즈에 웃돈을 붙여 판매했다. 한 달에 30만원 넘게 번 적도 있었다. 그렇게 번 돈은 다시 덕질에 쏟아부었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3000원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 대표는 “경제 교육이야말로 ‘글’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창시절 교과 과정에 ‘경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시험을 위한 공부로는 머리에 남는 게 없었다. 희소한 재화는 더 높은 값을 매길 수 있다는 이론을 아이돌 포토카드 거래 현장에서 배웠다. 어느덧 성인이 된 이 대표는 일상 속 경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녀 용돈 관리 앱을 개발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대표를 만나 돈에 꽂힌 이유를 들었다.

◇서울대생이 만든 경제 캠프에 초대합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초중고교를 오가며 경제 교육 활동을 했다. /이민희 대표 제공

2005년 서울대 아동가족학과에 입학했다. 과외 일감이 쏟아졌다. “타워팰리스에서 초등학생 3명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설 연휴를 보내고 아이들에게 ‘세뱃돈으로 뭐 할거냐’고 물었는데요. 한 아이는 ‘치킨을 좋아하니 하림 주식을 사겠다’고 하고, 다른 아이는 ‘한정판 로봇을 사서 프리미엄 붙여서 팔겠다’, 또 다른 아이는 ‘친구들에게 1만원씩 빌려주고 1000원씩 이자를 받겠다’고 하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때 서울 다른 지역의 중학교에서 무료 멘토링 활동도 하고 있었어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갖고 싶던 옷을 사겠다’, ‘게임머니 충전을 하겠다’ 같은 ‘소비’에 치중된 답변이 돌아왔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돈을 대하는 방식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학초등학교 자기주도학습 캠프 활동 모습. /이민희 대표 제공

친구들과 함께 저소득층 청소년 경제 교육 봉사활동 단체를 꾸렸다. “주민센터, 구청, 아동보호시설에 무료로 교육해 드리겠다며 연락을 돌렸어요. 말은 ‘교육’이지만 ‘놀이’ 형식으로 모든 과정을 구성했습니다. 예컨대, 아이들에게 정부·기업·가계 역할을 부여했어요.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각 경제 주체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자연스레 습득했죠.”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카드사 임직원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경제 캠프,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경제 캠프 의뢰가 들어왔다 “뜻밖의 수익이 생기자 골치가 아파졌습니다. 사업자 신고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법무사무소에 50만원을 내고 법인을 세웠습니다. 이게 제 첫 창업이었습니다. 벌이는 쏠쏠했어요. 월 매출이 많게는 2억원까지 났고 영업이익은 50%가 넘었죠. “

이민희 대표와 그의 동생. 동생은 모르는 수학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언니인 이 대표에게 연락했다. /이민희 대표 제공

‘교육’ 창업으로 승승장구 했지만 등잔 밑이 어두웠다. “고향에 있던 동생이 모르는 수학 문제가 생기면 매번 제게 연락을 해 왔어요. 그럴 때마다 문제 풀이 과정을 사진·동영상으로 촬영해 보냈더니 동생 친구들까지 질문하기 시작했죠. 그 무렵 아이폰3G가 출시되면서 아이들의 공부 문화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이 생기면 바로 묻고 답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번째 창업 성공

2014년 이 대표가 바로풀기 멤버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이민희 대표 제공

2011년, 비대면 수학문제 풀이 서비스로 두 번째 창업을 했다. 회사명은 아이앤컴바인, 서비스 이름은 ‘바로풀기(이하 바풀)’다. “앱 개발을 할 줄 몰라서 먼저 웹사이트로 만들었어요. 질문을 할 때 수학 수식을 하나하나 쓸 필요 없이 사진을 찍어 올리기만 하면 되도록 했죠. 동생과 동생의 친구들, 과외했던 학생들, 경제 캠프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도 바풀을 통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용자가 수만명대로 늘어나면서 교사 자격증 소지자, 전·현직 학원 강사를 선생님으로 선발해 빠르게 답변할 수 있도록 했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선 수익 모델이 필요했다. “10분 내외 숏(short) 콘텐츠를 유료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인터넷 강사를 수소문해 중학교 수학 과정을 10분 단위로 알려주는 영상을 촬영하자 했더니 ‘10분 만에 그걸 어떻게 설명하냐?’며 난색을 보이더군요. 어쩔 수 없이 직접 강사가 됐습니다. 10분짜리 영상 300여개를 만들어 올렸더니 다음 달에 수천만원의 매출이 났어요.”

라인플러스가 바풀을 인수·합병한 후 라인플러스에서 6개월, 네이버에서 3년 4개월 근무했다. /이민희 대표 제공

바풀 안에서 같은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는 일이 잦았다. “한 아이가 어려워하는 문제는 다른 아이도 어려워할 확률이 높죠.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질문 내용을 인식해 기존에 있던 답변을 내놓는 자동화 시스템을 2년간 개발했습니다. 이른바 ‘AI티쳐’를 만들었죠. 그러자 뜻밖에 6개 회사에서 인수 제안이 왔습니다.”

2017년 라인플러스가 바풀을 인수·합병했다. “단독 신사업 팀을 꾸리고 의무근무 기간 3년을 채우는 조건이었습니다. 라인플러스에 재직하는 동안 팀원들과 디스플레이형 인공지능 스피커를 기획·개발해 일본에 출시하는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포켓몬, 스포츠 스타 등 종이로 거래되던 카드를 모바일에서 뽑고 교환하는 서비스도 개발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NFT(디지털 자신의 소유자를 증명하는 가상의 토큰)라고 할 수 있죠.”

◇3살 딸아이가 말하는 "공짜"

첫째 아들을 안고 있는 이 대표. /이민희 대표 제공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면서도 사업할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주 관심 분야는 ‘아이’ 그리고 ‘돈’이었다. “그 무렵 제게 두 아이가 생겼는데요. 미래를 그리다 보면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부모의 노후대비과 직결되겠더군요. 대부분의 아이가 부모의 지갑에서 화수분처럼 용돈이 나오는 것을 보며 자라다가 돈이 한정된 자원임을 깨닫는 순간에야 계획적인 소비를 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돈의 개념을 일상적으로 익힐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사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은 커졌다. “딸이 만 3살일 때 모래사장에서 소꿉놀이를 한 적이 있어요. 모래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길래 ‘얼마예요?’ 물었더니 ‘공짜입니다!’라고 하더군요. 모래는 먹을 수 없으니 공짜라는 설명을 덧붙였죠. 언젠가 ‘공짜란 돈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알려준 걸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이들의 습득력과 응용력은 어른들의 상상을 한참 뛰어넘습니다.”

이 대표의 가족 사진. 아이들과 대화할 때마다 사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은 커졌다. /이민희 대표 제공

구글 검색창에 ‘kids finance(어린이 금융)’, ‘family finance(가족 금융)’ 같은 단어를 검색하다 미국의 자녀 용돈 관리 서비스 ‘그린라이트(Greenlight)’ 홈페이지를 찾았다. “아이 이름으로 된 직불카드로 부모가 용돈을 주고, 아이와 함께 적금·주식까지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였죠. 마치 결혼 상대를 만난 것처럼 눈앞이 환해졌습니다. 미국엔 비슷한 서비스가 많았지만 한국 문화·정서에 맞게 손볼 필요가 있었어요. 그렇게 세 번째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또다시 돈, 그리고 청소년

레몬트리를 세우고 한국형 자녀 용돈 관리·금융 교육 앱 개발에 뛰어들었다. /더비비드

2021년 7월 세 번째 스타트업 ‘레몬트리’를 세웠다. 한국형 자녀 용돈 관리·금융 교육 앱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 용돈 관련 앱 그린라이트, 조고, 비지 키드 등을 참고하며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으며 다듬었다. “가령 비지 키드의 주요 기능인 ‘심부름 기능’은 배제했어요. 아들에게 ‘빨래 개는 걸 도와주면 동전 5개 줄게’라고 해봤는데, 언젠가부터 동전을 안 주면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며 떼를 쓰더군요. 경험적으로 부작용이 따를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2023년 3월 앱 ‘퍼핀(First Fintech for family)’을 출시했다. 아이 명의의 계좌가 없어도 전자 지갑을 만들 수 있도록 선불전자지급수단 자격을 취득했다. 선불전자지급수단이란 교통카드처럼 미리 충전해 쓸 수 있는 결제방법을 말한다. “부모와 아이는 ‘용돈 계약’을 맺습니다. 매주 무슨 요일, 매월 며칠에 용돈을 받을지 정하죠. 아이가 용돈을 쓸 때마다 부모·아이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알림이 갑니다. 1만원 이상 결제하거나, 청소년이 가면 안 되는 곳에서 결제하는 등의 경우에도 메시지로 알려줘요.”

퍼핀에서는 소비 내역, 잔액 등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 아이가 직접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레몬트리

퍼핀은 기존의 용돈 카드에 ‘자기주도적인 관리’를 더한 개념이다. “기존에 ‘엄마 카드’를 쓰던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사고 나오더라도 방금 얼마를 썼는지 알지 못합니다. 잔액이 얼마인지도 모르니, 돈을 어디에 어떻게 나눠 써야 하는지 계획을 세울 수 없죠. 결제 알림을 부모에게도 보내는 것을 두고 고민했는데요. 자녀의 소비에 대해 잔소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퍼핀에서는 아이가 만족했거나 후회했던 소비를 알려주고, 이를 주제로 이야기하도록 권합니다.”

메타버스를 바탕으로 하는 ‘학습 보상’ 기능으로 '교육' 효과를 더했다. /레몬트리

절대 놓칠 수 없었던 영역은 ‘교육’이었다. 메타버스를 바탕으로 하는 ‘학습 보상’ 기능을 더했다. “아이들이 퍼핀월드에서 암호화폐 채굴장, 중고 시장, 증권거래소 등을 오가며 매일 최대 5문제씩 퀴즈를 풀 수 있습니다. 한 문제를 맞힐 때마다 400원의 보상이 주어지니 하루 최대 2000원까지 용돈을 더 받을 수 있죠.”

퍼핀 카드로 인터넷 쇼핑이나 QR결제도 되지만 출금·송금은 안 된다. 학교 폭력 등으로 발생하는 현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아이가 현금을 뽑아 쓰면 어디에서 쓰는지 알 길이 없어요. 퍼핀의 이용자는 아이들이지만 타깃은 부모님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퇴근이 없는 삶

퍼핀 앱 정식 출시(2023년 3월) 4주 만에 부모 가입자가 1만명을 넘었고 하루 평균 300장 이상의 카드가 발급되고 있다. /더비비드

퍼핀은 출시 전부터 깜냥이 보였다. 2021년 9월 19대1의 경쟁률을 뚫고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앱 정식 출시(2023년 3월) 4주 만에 부모 가입자가 1만명을 넘었고 하루 평균 300장 이상의 카드가 발급되고 있다. 가입한 부모의 80%가 자녀와 용돈계약을 맺고 주간·월간으로 정기용돈을 지급하고 있다. 퍼핀 월드에서 금융 퀴즈를 풀어 지급된 학습보상은 1000만원을 넘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기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6월부터 기능을 하나씩 추가할 예정이에요. 이를테면 집에 있는 폐휴대폰, 헌책 등을 판매하는 코너를 만들어 중고 거래와 재활용의 가치를 알려줄 겁니다. 재정 상태와 목표액에 맞춰 적금·청약 상품을 추천해 주거나, 결제할 때마다 자녀의 위치를 지도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을 추가한 후에 일부 유료화를 해 수익을 내는 게 목표입니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민희 대표 제공

이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라고 하면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더군요.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해 놓고 업무 연락이 오면 몇분이고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어야 하죠. 대표에게 퇴근이란 없으니까요.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퍼핀을 쓴다면, 그 퍼핀을 만든 사람이 ‘엄마’라면, 그간의 섭섭함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