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빠진 금투세라는 늪

김동인 기자 2024. 10. 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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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합의로 도입된 금투세가 시행도 되기 전에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다음 대선에서 결집한 투자자 집단이 적대적 유권자가 되는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
9월24일 더불어민주당 정책 의총에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에 관한 정책 토론이 열렸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라는 늪에 빠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금투세는 금융 관련 과세 체계를 정비하는 차원에서 도입되었다. 현재 금융투자 관련 소득은 상품에 따라, 소득이 발생하는 방식(배당·이자·양도 등)에 따라 과세 여부, 과세율, 각종 공제가 뒤엉켜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원화된 과세 체계를 만들자는 게 금투세 도입의 목적이었다. 2023년 시행 예정이던 금투세는 여야 합의로 한 차례 미뤄졌고, 2025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투세 도입은 그동안 세금을 매기지 않았던 (소액주주의) 주식과 채권의 양도소득에 과세한다. 공제금액이 5000만원으로 비과세 대상자가 많지만, 큰 변화가 수반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금투세 이슈는 ‘금투세를 폐지하자’고 외치는 쪽이 불리한 이슈였다. 올해 4월 총선 결과로 인해 ‘폐지 주장’의 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금투세 폐지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시점부터 개인투자자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윤 대통령이 2024년 1월2일, 새해 벽두에 ‘금투세 폐지 추진’을 깜짝 발표한 것도 증시 상황에 민감한 개인투자자 유권자층이 상당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 발언은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라는 형태로 총선용 정책을 쏟아내던 시기에 나왔다. 금투세 폐지 역시 총선용 카드로 인식되었다.

제22대 총선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현 대표) 역시 3월 말 ‘금투세 폐지’를 최전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1400만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금투세 폐지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금투세 폐지를 앞세운 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윤석열 정부가 원하는 금투세 폐지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공약의 힘도 떨어졌다.

금투세 폐지는 총선 당시 등장한 ‘서울 메가시티론’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들이 많다는 점, 적극적인 자산 부양을 원하는 이들에게 소구력을 갖는다는 점, 그리고 공약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입법 권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총선 패배로 ‘서울 메가시티론’은 사실상 사장되었고, 금투세 폐지 역시 거듭되는 세수 펑크 상황에서 민주당의 ‘부자 감세’ 프레임을 번번이 뛰어넘지 못했다. 결국 금투세 폐지는 총선 직후 ‘서울 메가시티론’만큼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어젠다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힘의 우위는 7월10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당시에는 대표직 사퇴 상태)의 한마디로 역전된다. 당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표는 “금투세를 없애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시행 시기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면서 금투세 시행 유예론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당론 1호 법안’으로 금투세 폐지를 내세웠고, 조직화된 개인투자자들의 금투세 폐지 요구도 상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의 한마디는 금투세 문제를 순식간에 ‘여당 대신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일로 만들었다.

시행을 앞둔 법을 무력화하자는 주장이 정당을 옭아매는 사례는 흔치 않다. 9월24일 정책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은 ‘금투세 시행이냐 유예냐’를 두고 3대 3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유예를 주장하는 당내 의원들은 “금투세가 도입되면 증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 강조했고, 시행을 주장하는 이들은 “시행만 남겨둔 ‘다 된 밥’을 놓치면 개혁은 요원해진다. 당 정체성에 맞게 조세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초 이 토론회의 명분은 ‘민주당이라는 정당은 당내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토론의 내용이나 수준과 별개로, 야당에게 유리했던 이슈에 대해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동안 공고했던 ‘시행론’의 명분을 약화시켰다.

‘집권 이후’를 언급하는 친명계 좌장

민주당 내에서 친이재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의원이 다음 날 쐐기를 박았다. 정 의원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아예 (금투세를) 폐기하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 민주당이 집권해서 주식시장을 살려놓은 다음에 상승기에 다시 여론을 모아 검토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재명 대표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유예도 아닌 폐지’를 언급한 탓에 민주당 내에서 사실상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하기는 영영 어려워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정성호 의원이 ‘집권 이후’를 언급했다는 것은 2027년 대선까지 이 이슈가 부각되지 않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9월19일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 “금투세 시행을 3년 정도 유예하자”라고 주장한 것과도 맥이 닿는다. 김 최고위원 역시 친명계 핵심 인사로 구분되는 만큼, ‘3년’과 ‘집권 이후’라는 시점은 사실상 이재명 대표가 다음 대선 때까지 이 문제가 언급되기를 꺼린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0.73%포인트 표차로 제20대 대선에서 낙선한 이후, 이재명 대표는 종부세·상속세·금투세 이슈에서 과세 대상자를 최소화하고 과세로 인한 마찰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점차 택해가고 있다.

9월21일 개인투자자들이 모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서울역 앞에서 금투세 반대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민주당 내에서 유예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금투세를 ‘주식시장 상승기’에 다시 검토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금투세가 처음 논의되던 2020년에도 ‘금투세를 입법하면 주가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2020년은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개인투자자 상당수가 주식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한 해로 평가된다. 주식시장이 좋든 나쁘든, 금투세에 대해 표출되는 대중의 부정적 여론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시장 분위기’보다 ‘대선 일정’에 더 가깝다. 당장 올 연말에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돌파하거나 내년에 4000을 돌파한다고 해서 민주당 지도부가 자신 있게 금투세 시행을 다시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금투세는 소모적 논쟁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금투세 시행에 반대하는 ‘결집된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잘 알려진 ‘민주당 공략’의 법칙에 맞추어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당내 비주류 인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금투세 시행을 주장하는 주요 의원들의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문자 민원을 넣어 압박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이들 투자자 집단에게는 가까운 과거에 ‘승리했던 경험’도 있다. 바로 2023년 11월 금융 당국이 주식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사례다. 금융위기가 아닌데도 공매도가 금지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금융 당국은 이듬해 4월에 있을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론에 떠밀려 공매도를 금지했다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결국 공매도 금지는 2025년 3월까지 연장되었는데, 공매도 금지 당시 2400대였던 코스피 지수는 9월26일 현재 2671.57을 기록하며 여전히 박스권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결집된 투자자 집단이 1400만 개인투자자를 얼마나 대변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결집된 개인투자자’가 적대적 유권자가 되는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려 한다. 그로 인해 5년간 준비하고 공들였던 금융투자 소득 조세 체계는 보완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시작도 되기 전에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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