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지 유신 시절
일본 태정관 지령에서조차
“독도의 건에 대해
본방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메이지 10년 3월 29일” 이라고
나와있답니다.

조선을 탐방한 일본인 외무성 관리들이
본국에 조선에 관해 올린 보고서에도

당시 일본인들은 독도를
‘송도’ 마쓰시마 라고 불렀는데
울릉도를 부르는 말 ‘다케시마’와
‘마쓰시마’ 모두
조선령이라고 보고했답니다.

이러다 고종 대에 다시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울릉도에 들어오자
고종은 울릉도로 사람들을 보내며
울릉도를 적극 개척했고
황제를 선포하고는 울릉도를
강원도의 한 행정구역으로 편입시키며,

석도까지 포함된다고 명기합니다.
이른바 대한제국 칙령 41호죠.
이 석도가 독도를 가리키는데
일본 측은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죠.

모두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러일전쟁 도중 일본이
러시아와 싸우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들을 물색하다
울릉도와 독도 인근을
무단점령합니다.

이때부터 원래 울릉도를 다케시마,
독도를 마쓰시마라고 하던 것이
용어상의 혼동이 생겨
서로 거꾸로 부르게 되었죠.

일본은 이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강제 편입시키는데
조선정부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면서는
항의조차 불가능했죠.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울릉도 포함 부속도서들은
전부 조선총독부 관할이 됩니다.
그들 스스로 일본땅이 아님을
인정하는 거죠.

해방 후에는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677호’로
울릉도와 부속도서는
일본 영토가 아님을 국제적으로
공표했지만

극단적 이념대립 속에서
일본을 키우던 미국은
일본인들의 울릉도 해역 접근을
어느 정도 봐주라는 서한을
대한민국에 보내오죠.

6.25전쟁으로 한국의 국력이
크게 뒤쳐졌을 때
1953년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가
자발적으로 독도로 들어와
경찰업무를 도맡으며

일본인 어선들과 수차례 전투를 벌이며
56년까지 독도를 지켜낸답니다.
1956년에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경찰에
독도수비를 인계하죠.

이렇듯 일본도
빠져나갈 구멍이 별로 없습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땅임을 말해주는
자료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독도영유권주장을 하는 이유는

극우정당에서 극우일본인들
표 얻기위한 방편으로
독도주장만한 게 없는 겁니다.
따라서 아무리 역사적 증거가 명백해도
극우정당은 표 때문에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이럴수록 더더욱 한국인들도
논리적 무장에 게을러져서는
안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