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일어 말하지 말라”…재중 일본 어린이 피습 사망 파장 확산
중국에서 등교 도중 괴한의 칼에 찔린 일본인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 내 일본인들의 두려움과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반일·반중 감정으로 확산되거나, 일본과 중국 정부 간 외교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0일 “이번 사건이 (우발적 사고가 아닌) 중국 내 반일 감정과의 관계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며 “일-중 관계와 중국에 진출한 기업 및 주재원들의 동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18일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시에서 10살짜리 일본 학생이 학교에 가던 도중 40대 괴한으로부터 칼에 찔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 학생은 곧바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치료 도중 숨졌다.
사건 발생 이후 베이징 소재 주중 일본대사관은 국기를 게양대 꼭대기에서 일정 높이만큼 아래로 내려 다는 ‘반기’를 걸어 안타까움을 드러냈고, 선전시 피해 현장에는 주변 시민들이 헌화하며 슬픔을 나누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희생된 학생이 다니던 학교는 일단 휴교를 결정했고, 중국 내 다른 지역의 일본인 학교들도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베이징의 일본인 학교는 현지 대사관과 보안 당국 도움을 얻어 학교 주변 순찰을 강화했다. 상하이에서는 학생들이 하교한 뒤에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큰소리로 일본어를 말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중 일본대사관 누리집에 애도의 글과 함께 반일 감정을 드러내는 누리꾼들의 글도 등장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대사관 누리집에 올라온 글들 가운데 일부에 “일본인에게 9월18일을 기억하게 하라”며 범행을 긍정하는 듯한 글이 있었다. ‘9월18일’은 1931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만주사변이 일어난 날이다. 지난 18일 일본인 학생이 피습당한 날과 같아 이번 사건이 역사 문제와 관련한 ‘증오 범죄’의 하나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도 중국 소식통들을 인용해 “최근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반일 교육이나 언론의 반일 감정 유도가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고 있다. 최근 중국 경제가 부진한 데다, 사회 통제가 강화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 사회’로 인한 불만을 외국인이나 어린이들을 향한 범죄로 표출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사건이 두 나라 정부 간 문제로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정부에서 사전에 유사한 사건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 쪽에 예방 조처를 요청했는데도 제대로 된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지난 14일 일본 외무성이 (1931년 만주사변의 발단이 된) 류조호 사건이 9월18일에 발생한 점을 감안해 중국 외무부에 일본인 학교의 안전 대책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루미 히데오 전 주중 일본대사는 요미우리신문 기고에서 “중국 내 일본인 학교는 중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이며,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면 일본대사관에서 대사 직속으로 대응해 왔다”며 “중국 쪽이 이번 사건도 ‘개별적으로 발생한 불행한 사건’ 정도로 처리하려 하겠지만 절대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일본인이 더는 중국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중국 당국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건이겠지만, 중·일 대립을 부추기지 말고 협력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에 오르게 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자들도 두 나라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했다. 주요 후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중국 당국이 배경과 원인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상), “중국 정부에 일본인의 안전 확보와 흉악 범죄자에 대한 처벌, 동기의 해명을 포함한 엄정한 대응을 요구하고 싶다”(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고 말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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