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타자 좋은 투수, 최형우와 성영탁

삼성 최형우와 KIA 성영탁이 8일 챔피언스필드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여울 기자

좋은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가장 먼저 ‘타고난 실력’이라고 답할 것 같다.

예체능은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야구 선수로서 중요한 구속과 힘, 신체 능력 등은 타고난 부분이 크다. 하지만 타고난 실력이 전부는 아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능력을 가지고도 반짝하고 사라지는 이들을 수도 없이 봤다.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타고난 능력 하나만으로 스타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슈퍼스타는 신체적인 능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타고난 능력에 부단한 노력이 더해져야 스타를 넘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낯설지만 익숙한 삼성 유니폼을 입고 처음 챔피언스필드를 찾은 최형우를 보면서 다시 또 ‘슈퍼스타’의 조건을 생각하게 됐다.

일단 최형우는 타고났다. 부상도 실력인 곳에서 최형우는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리를 지키다 보니 만들어지는 기록들도 있다.

‘건강한 최형우’의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지만 최형우는 뭐라고 해줄 말이 없다고 했다. 타고난 부분이 크니까.

하지만 ‘타고남’ 뒤에 최형우의 근성이 있다. “딱히 몸 관리하는 것은 없다”는 최형우는 “대신 참을성이 강하하다”라고 답을 했었다.

이런 최형우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러지지 않는 이상 뛴다고 말하던 최형우가 그라운드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어디가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중심장액성 맥락망막병증’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질환으로 최형우는 타석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그는 돌아왔다.

2023년 9월에는 부러졌다.

1루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쇄골 분쇄 골절을 당하면서 최형우의 시즌이 일찍 끝났다. 그라운드로 떨어지는 순간 최형우는 자신의 야구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큰 부상이었고, 불혹의 나이였다.

하지만 최형우는 보란듯 돌아와서 KIA 타이거즈 12번째 우승 순간에도 함께 했다.

동료가 아닌 적으로 마주하게 된 2026시즌.

최형우의 전력 분석을 하던 KIA 선수단은 “왜 아직도 잘 치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승환이 그라운드와 작별하면서 올 시즌 KBO 최고령 선수가 된 최형우이지만, 여전했다.

직구에 대한 반응이 진작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직구에 대한 반응도 빠르고 변화구도 여지없다.

최형우는 KIA와 첫 대결에서 힘이 넘치는 20세의 고졸 2년차 홍민규와 김태형을 상대로 홈런을 쏘아 올렸다.

홍민규의 체인지업과 김태형의 직구를 공략해, 맞는 순간 넘어가는 타구를 만들었다.

KIA 선수들은 알고 있다. 천하의 최형우도 뒤에서 부단한 노력을 한다는 것을.

조명탑이 꺼진 뒤에도 최형우는 실내연습장 불을 켜놓고 방망이를 열심히 돌리곤 했다.

좋은 타자 최형우가 그라운드에서 만나고 싶은 좋은 투수가 있다.

8일 훈련 시간에 성영탁의 인사를 받은 최형우는 “영탁이 공 한번 쳐봐야 하는데. 궁금한데. 진짜로”라면서 전날 이뤄지지 못한 맞대결을 아쉬워했다.

리빙 레전드가 궁금해 하는 투수, 성영탁에게는 영광스러운 멘트였을 것이다.

시범경기와 개막 후 성영탁의 피칭을 지켜보면서 “이게 투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투수도 아니고 좋은 투수.

KIA 타이거즈의 성영탁. <KIA 타이거즈 제공>

2024신인드래프트에서 10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한 성영탁은 암울했던 지난 시즌 KIA 팬들을 웃게 한 샛별이었다.

스피드 고민을 했던 성영탁은 1년 만에 10㎞ 이상을 늘리고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

달라진 투구 리듬과 스피드로 KIA의 듬직한 불펜으로 자리한 성영탁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2026시즌을 준비했다.

처음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훈련도 하고 연습경기도 하면서 준비한 2026시즌이었지만 개막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지난 시즌 큰 위기 없이 꾸준하게 역할을 했던 성영탁이지만 시범경기 4경기에서 4이닝을 소화하면서 3실점을 했다. 피홈런 포함해 6개의 안타를 맞았고 볼넷 하나도 남겼다.

우려 속에 처음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성영탁은 진짜 무대가 시작되자 달라졌다.

3월 28일 SSG와의 개막전부터 성영탁이 마운드에 등장했다.

FA 김범수도 압박감에 무너졌던 이날, 7회 무사 만루에서 성영탁이 구원 등판했다.

바운드 된 타구가 나오면서 김범수의 주자를 지워주지는 못했지만 이후 세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긴장감 속에 오히려 평화를 찾은 성영탁이었다.

“공 받자마자 자신감이 올라왔다. 집중도라고 해야 하나 몰입감이 달랐다. 심장도 빨리 뛰고, 포수 미트에 집중되는 그런 긴장감이 있어서 더 잘된 것 같다”며 시즌 첫 등판을 떠올린 성영탁은 “시즌 전에 준비하면서 다시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범경기 하면서 주춤했다. ‘어렵나?’ 이 생각 많이 했는데 초반에는 좋은 밸런스 가지고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데뷔전 치렀던 날처럼 긴장감을 이겨내면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성영탁.

사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영탁은 타고난 투수는 아니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무시무시한 스피드의 공을 보유한 투수는 아니다.

느린 공 때문에 선뜻 다른 구단이 부산고 성영탁을 호명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성실함과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열정은 KIA 스카우트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 자신을 잘 안다’는 강점도 있다. 1군 데뷔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절, 마무리캠프에서 만난 성영탁은 “구속만 빼면 완벽한다”며 “내년에는TV에 나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라는 궁금증은 성영탁의 경기를 보면서 풀렸다.

2025시즌 성영탁은 마운드에서 자신감 넘쳤던 이유를 보여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가지고도 자기 자신과 싸우는 투수도 있지만 성영탁은 타자와 싸운다.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성영탁은 타고난 강심장에 노력이라는 재능을 갖췄다.

투수 성영탁으로의 진화를 위해 투구 템포와 스피드를 업그레이드 했고, 투심을 장착했다.

성영탁은 “고민을 많이 했던 게 투수는 직구고 구위 좋은 직구가 중요하다. 투심 바꿀 때 고민을 많이 했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잘 맞는 투심을 장착하면서 성영탁은 승부를 할 수 있는 까다로운 투수가 됐다.

동료들도 인정하는 메커니즘도 부단한 노력 끝에 알아서 만들어진 노력의 산물이다.

성영탁은 “어릴 때부터 내야수를 했었다. 그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스윙을 크게도 해보고 짧게도 해보면서 찾았다”고 설명했다.

주어진 순간에, 주어진 환경에 맞춰 성영탁은 최선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과 노력이 쌓여 그는 좋은 투수가 됐다.

좋은 타자 최형우와 좋은 투수 성영탁은 시즌 첫 시리즈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9일 경기가 비로 취소되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기다려지는 맞대결이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