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협박에도 노래로 인종차별 맞섰다…U2 보노 자서전 '서렌더'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공연 전에 우리는 애리조나주에 만연한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기로 결정했다. 공연은 그러한 도발의 절정이 될 터였지만,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여러 살해 협박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1987년 투어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주를 찾은 밴드 U2의 보컬 보노는 목숨을 건 무대에 오른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U2가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을 기리는 노래 '프라이드'(Pride)를 연주할 경우 살아서 노래를 끝내지 못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은 터였다.
보노는 당당하게 '프라이드'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겁을 먹은 그는 노래가 3절에 접어들자 눈을 감고 반쯤 무릎을 꿇고 있었다. 불안에 휩싸인 채 간신히 공연을 이어가던 보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청중이 보이지 않았다.
베이시스트 애덤 클레이턴이 겁에 질린 보노를 위해 3절이 끝날 때까지 그의 앞을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1976년 결성된 아일랜드 출신 밴드 U2는 1억7천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과 그래미상 22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쓴 역사적인 밴드다. 동시에 폭력과 빈곤에 맞서 수십년간 노래로 신념과 메시지를 퍼뜨려 온 위대한 밴드이기도 하다.
U2의 리더이자 보컬인 보노는 최근 번역·출간된 자서전 '서렌더'(SURRENDER)에서 밴드가 공유하는 신념이 서로를 향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은 혈기 넘치는 청소년 네 사람이 10대의 아이콘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밴드로 성장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보노는 U2의 노래에서 제목을 딴 40개의 에피소드로 밴드가 마주한 결정적인 순간들을 조명한다.
보노는 밴드가 '발생, 퇴락, 갱생'이라는 순환 주기를 따른다고 주장한다. 데뷔 앨범 '보이'(Boy)로 성공을 거둔 U2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청년의 열정과 야망을 노래하던 U2는 1983년 발표한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Sunday Bloody Sunday)를 기점으로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내는 밴드로 탈바꿈한 것이다.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는 1972년 영국군이 시위를 벌이던 비무장 아일랜드계 주민에게 실탄 사격을 가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비폭력과 평화의 가치를 설파한 노래는 U2에게 첫 영국 앨범 차트 1위와 세계적인 인기를 안겼다.
보노는 이후 빈곤과 에이즈 문제에도 관심을 촉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넬슨 만델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교류하며 명성을 쌓은 보노가 자신의 명성을 아이디어를 전하는 화폐로 사용했다는 표현이 인상을 남긴다.
보노는 "나의 명성을 활용하여 줄 서 있는 레스토랑에서 먼저 자리를 안내받는 것보다 유용한 곳에 쓰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며 "내가 가진 화폐가 제대로 된 데에다가 쓰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보노는 밴드 멤버들과 아내 앨리슨 스튜어트의 존재가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회고한다. 40년 넘게 현 멤버와 함께하고 있는 보노는 '원'이라는 챕터에서 동료들과의 협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언급한다.
그는 "좋든 싫든 우리는 반드시 모두 서로를 끌고 함께 가게 되어 있다"며 "우리 밴드가 없다면 나는 내 머릿속의 음악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없다"고 썼다.
아내와의 관계를 다룬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에서는 아내의 생일을 까먹은 보노가 뒤늦게 노래로 생일 선물을 대신한 일화가 웃음을 유발한다.
'스위티스트 싱'(Sweetest thing)이라는 노래를 아내에게 바친 보노는 "그녀는 나의 여러 죄를 용서해주었고, 나는 겨우 긴장하던 자세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며 아찔했던 당시를 돌아본다.
젊은 날 내면의 분노를 원동력 삼아 세상을 바꾸려 했다는 보노는 나이가 들며 점차 그 분노를 내려놓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가수로 살아가는 의미를 깨달았다는 보노는 책의 제목인 '서렌더'에 진솔한 고백을 담는다.
"내 삶에서 노래하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는 이제 싱어(가수)와 노래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져 주기를 소망한다. 나는 오롯이 이것만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생각의힘. 852쪽.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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