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침을 열며]
러시 림보가 망친 미국 정치
한국 정치도 위험한 징조들
미국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다음 주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 이후 어떤 정치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다. 비상계엄과 현재 미국 정치가 보여준 파괴적 교훈을 되새기며, 선거 이후 경계해야 할 위험한 신호를 미리 짚어보자.
러시 림보가 탄생시킨 트럼프
2009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전 세계가 축하했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보수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는 단 네 글자로 입장을 명확히 했다. "I hope he fails"(나는 오바마가 실패하길 바란다).
림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 출범을 축하하며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을 "정신 나간 것"이라고 비난하며 축출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초당파적 협력이나 신임 대통령에 대한 예의 따위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실패를 바라는 정치"의 시작이었다. 국가의 성공보다 상대방의 실패를 우선시하는 파괴적 당파주의가 승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논리를 가장 충실히 따른 아웃사이더 한 명이 2016년 공화당 대표 주자가 되어 오바마의 모든 유산을 박살냈다. 2021년 뉴요커지가 "러시 림보가 트럼프를 탄생시켰다"고 표현한 이유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미국이다. 2025년 트럼프 2기 정부는 하버드 등 명문대 외국인 학생 비자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항의 시위에 참여했거나 심지어 근처에만 있었던 학생들도 추방하고 있다. 연방 독립기관들을 백악관 통제하에 두려 하고, 자신을 수사했던 법무법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정부 계약을 해지하고 있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실패를 바라는 정치"와 양극화
우리는 양극화가 민주주의의 가장 심각한 질병인 것처럼 말하는 데 익숙해 있다. 그런데 모든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성 종양은 아니다. 국민들의 의견이 선명하게 나뉜다 해도 ①선거 결과를 수용하고 ②비폭력을 유지하며 ③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에서 초당적 협력을 하고 ④비판과 견제는 합의된 틀 내에서만 진행한다면 양극화는 민주공화정과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 오히려 건전한 견제와 균형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실패를 바라는 정치"와 결합된 양극화다. 이런 태도는 ①선거결과를 부정하고 ②당파적 목표를 위한 폭력적 수단 사용을 정당화하고 ③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에서도 당파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④상대당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극대화하기 위해 법 조문과 절차를 최대한 당파적으로 해석한다.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 상호확증파괴가 이어지고 민주공화정은 위태로워진다.
한국 정치의 위험한 징조들
지난 계엄 이후 우리는 일부 정치인, 관료, 법조인 그리고 지지자들이 상대당이 집권하느니 차라리 시스템이 무너지는 게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듯 서로를 위협하며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런 분위기는 아마도 대선 이후로도 이어져서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국가 기관을 불신하며, 상대당 정부의 성공보다 실패를 공공연히 바라는 목소리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극단적 "실패를 바라는 정치"꾼들은 앞다퉈 러시 림보의 왕좌를 노릴 것이고, 협치와 조정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을 죄다 "배신자", "반역자"로 공격하려 할 것이다.
한국 정치가 "실패를 바라는 정치"로 몰락하면 누가 당선돼도 헌법 66조에서 말한 대통령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선거결과를 겸허히 인정하고 당선자와 비판적으로 협력하며 더 나은 국정 수행 능력을 끊임없이 호소하는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을 바라 본다. 미국이 지금 앓고 있는 끔찍한 양극화의 시작은 미국 정치가 "실패를 바라는 정치"꾼들에게 사로잡히면서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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