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피해 '옥상옥' 쌓은 애경, 주주환원인가 승계 실탄 확보인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14일 보유 중인 AK홀딩스 주식 98만3698주(7.43%)를 애경자산관리에 매각하면서 지분율이 0%로 줄었다. /사진 제공=AK홀딩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지주사 지분을 대거 매각하면서 오너 2세인 장남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이끄는 비상장 가족회사 ‘애경자산관리’의 지배력이 강화됐다. 이는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주주 의결권 제한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에 따른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고, 오너 중심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옥상옥’ 구조가 고착화되며 밸류업 전략의 신뢰도는 낮아졌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3세 승계를 위한 안정적 기반 마련으로 보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장 회장은 14일 보유 중인 AK홀딩스 주식 98만3698주(7.43%)를 애경자산관리에 매각했다. 총 거래 규모는 총 76억원 규모다. 장 회장의 지분율은 사실상 0%(500주)로 줄었고 애경자산관리의 지분율은 18.91%에서 26.34%로 상승했다.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애경자산관리는 채 부회장(49.17%) 등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가족 회사다.

시장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이 7월 시행 예정인 상법개정안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있어, 자사주 소각이나 시장 매각 대신 가족회사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은 향후 논란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시행 이후였다면 이사회가 주주 이익 침해를 이유로 배임 또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사회 내 지배주주의 영향력 약화도 이번 결정의 또다른 배경으로 꼽한다. 개정 상법은 독립이사 체제를 강화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한다. 규제가 강화되는 환경에서는 지분을 오너 일가가 분산 보유하는 방식보다, 애경자산관리로 집중시키는 것이 의결권 확보와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룹의 고질적인 '옥상옥' 지배 구조는 오히려 더욱 고착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애경그룹은 ‘오너 일가 → 애경자산관리 → AK홀딩스 → 계열사’로 이어지는 간접 지배 구조를 갖고 있다. 이번 매각으로 채 부회장은 개인 자금 없이도 가족 법인을 지렛대 삼아 그룹 전반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게 됐다.

애경그룹 지배구조 / 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옥상옥 지배구조가 정부의 밸류업 정책 방향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지주사가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세우더라도 그 이익 대부분이 일반 주주가 아닌 오너 일가에게 귀속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어서다.

AK홀딩스는 2027년까지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 주가순자산비율(PBR) 0.6배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시장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실질적인 최대 수혜자는 지분율을 26.34%까지 끌어올린 애경자산관리다. 친족 지분을 포함하면 65.14%에 달한다. 애경자산관리의 배당성향은 2022년 39.4%에서 2024년 55.5%로 급등했다. 밸류업을 위한 배당 확대가 결국 오너 일가의 현금 확보 및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해당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향후 안정적인 3세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채 부회장의 장남인 1994년생 채정균 씨는 3세 중 유일하게 애경자산관리 지분(1.07%)을 보유하며 차기 후계 구도를 굳히고 있다. AK홀딩스 지분 2.33%를 보유 중이지만 아직 공식적인 경영 참여는 하지 않고 있다.

비상장사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는 승계 과정에서 세금 부담을 줄이면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방식으로 평가된다. 상장사인 AK홀딩스 지분을 직접 증여받을 경우 막대한 상속·증여세가 발생하지만, 비상장사인 애경자산관리의 기업 가치를 높인 뒤 이를 AK홀딩스와 합병하는 방식을 택하면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설정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지배력 확보가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애경자산관리가 향후 승계 과정에서 자금 마련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비상장사는 상장사 대비 공시 의무가 적고 배당 정책 결정이 비교적 자유로워 증여세 납부 재원 확보에 유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비상장 가족회사는 의사결정이 유연한 만큼 고배당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전략을 취하기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AK홀딩스 관계자는 “장 회장의 지분 매각은 지분 구조 단순화를 위한 결정”이라며 “후계 구도와 관련된 부분은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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