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등가와의 전쟁' 원주 희매촌 단속…일촉즉발의 긴장감
항의하듯 홍등 켠 채 버젓이 영업…업주들 "생계 위협, 자립할 시간 필요"
(원주=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성매매집결지가 폐쇄될 때까지 경찰의 강력한 단속은 계속됩니다."
점퍼를 입지 않고서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지난 14일 밤 11시.
강원 원주시 학성동 옛 원주역 인근 성매매 집결지인 '희매촌'의 공기는 더 싸늘하고 살갗이 베일 듯이 날카로웠다.
도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목적으로 한 원주경찰서와 원주시의 첫날 합동 단속이 본격 시작됐기 때문이다.
6·25 전쟁 후 성매매 여성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형성된 이후 희망촌과 매화촌을 통틀어 희매촌이라고 불리게 된 이곳에는 현재 36개 업소에 54명의 성매매 여성이 종사하고 있다.
평소에는 20개 업소가 유리방 형태로 2∼3개 단위로 분산해 성업 중이라고 경찰이 귀띔해줬다.
성매매 업소 업주인 일명 포주들은 경찰 단속에 무언(無言)의 시위를 하듯 골목 밖 큰 길가로 나와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예의주시했다.
강원경찰청 기동순찰대를 지원받은 경찰은 보란 듯이 희매촌 골목골목을 돌며 성매수 남성의 접근을 차단하는 예방적 단속을 펼쳤다.
번쩍이는 경광등을 켠 기동대 차량과 지구대 순찰차는 희매촌 일대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차량 순찰을 이어갔다.
그런데도 성매매업소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영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듯 홍등을 버젓이 밝혔다.
일부 업소에서는 홍등 불빛 아래 투명 유리방 창 너머로 종사자 여성이 평소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마치 단속 경찰과 기 싸움이라도 하는 듯했다.
다만 대부분의 업소는 경찰 단속 직전에 황급히 자리를 비운 듯 뒷굽이 높은 킬 힐과 각양각색의 미용 도구들만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적막함 속 긴장감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깬 것은 20대 성매수 남성으로 추정되는 3명의 돌발행동이었다.
뭔가를 넣은 쇼핑백을 들고 업소로 접근하려다 순찰 중인 경찰을 보자 멈칫한 이들은 한동안 주변을 서성인 끝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경범죄로 단속됐다.
이 중 1명은 신분 확인 과정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단속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가 더해져 현행범으로 연행됐다.
팽팽한 긴장감과 적막을 깬 소란이 지나가자 그제야 포주들의 볼멘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한 업주는 "아이고, 경제가 어려워 살기도 어려운데, 자기들이 밥 먹여 줄 것도 아니면서"라며 비록 말꼬리는 흐렸지만, 무리를 지어 골목을 순찰하는 단속 경찰의 뒤통수에 명확하게 쏘아붙였다.
경찰이 강력한 폐쇄 의지를 밝히며 단속에 나서자 희매촌 포주 등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생존권이 달린 생계형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한터 원주시지부 한 관계자는 "너무 갑작스러운 단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업주나 종사 여성들 모두 자립할 시간이 필요하다. 대책 마련 없이 들이닥친 느닷없는 단속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2004년 9월 성매매방지특별법 제정 이후 춘천과 동해 등지의 성매매 집결지가 하나둘씩 사라져 갈 때도 암암리에 이어져 온 희매촌을 경찰은 전국 7개 시도에서 운영 중인 12곳의 성매매 집결지 중 한 곳으로 파악하고 있다.
도내에서 6개 업소에 여성 1명씩만 종사하는 속초를 제외하고 마지막 성매매집결지로 분류된 이곳을 폐쇄하기 위해 원주시도 강한 의지를 보인다.
시는 단속에 앞서 원주경찰서와 성매매 집결지 폐쇄 우수사례로 알려진 충남 아산시 온천동 장미마을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노송동 선미촌을 견학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하루속히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해 여성친화도시 원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동현 원주경찰서장은 "우선 성 매수자들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끔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거점 순찰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며 "보다 강력한 단속으로 조기 폐쇄될 때까지 시와 협업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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