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손에 익힌 솜씨는 그 사람의 인생과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맛을 보고 고치며 만든 손맛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재산입니다. 그런데 그 손맛을 칭찬하며 다가온 사람이 어느 날 그것을 자기 것인 양 내세우는 일도 생깁니다.
전남 순천에 사는 박금순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시집온 뒤 50년 동안 김치를 담가 온 손맛으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남편은 군청에서 정년퇴직했고, 부부는 순천 시내 오래된 주택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금순 씨의 고들빼기김치와 갓김치는 특히 유명했습니다. 김장철이면 이웃들이 줄을 서서 김치를 얻어 갔고, 서울 사는 자식들은 택배로 받은 김치를 아껴 먹었습니다. 금순 씨는 시어머니에게 배운 비법에 자신만의 재료를 더해 50년 동안 맛을 다듬어 왔습니다.

10년 전, 동네에 새로 문을 연 반찬가게 사장이 금순 씨를 찾아왔습니다. 마흔 남짓의 싹싹한 여자였습니다. "어머님, 동네에서 어머님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소문났어요. 저희 가게에 김치를 납품해 주실 수 없을까요?"
금순 씨는 처음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금순 씨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어머님 같은 손맛은 이제 어디서도 못 찾아요. 이렇게 귀한 맛을 동네 사람들만 먹기엔 너무 아까워요." 칭찬에 마음이 녹은 금순 씨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뒤로 10년 동안 금순 씨는 매주 두 번씩 김치를 담가 가게에 보냈습니다. 받는 돈은 재료비에 한 달 20만 원 남짓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금순 씨는 자기 김치가 동네 식탁에 오른다는 게 뿌듯했습니다. 무릎이 아픈 날에도 배추를 절이는 일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금순 씨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습니다. 시집온 이듬해부터 김치를 담글 때마다 재료와 배합을 공책에 적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50년 동안 쓴 공책이 열두 권이나 되었습니다. 반찬가게에 납품한 날짜와 양도 따로 장부에 꼼꼼히 적었습니다.
3년 전, 사장이 다시 부탁을 해 왔습니다. "어머님, 요즘 주문이 많아서 직원들도 어머님 방식대로 담글 수 있게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비법은 절대 밖에 안 새게 할게요." 금순 씨는 사장을 믿고 가게 주방에서 직원들 앞에 앉아 김치 담그는 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그날 사장은 휴대전화로 금순 씨가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직원 교육용이에요, 어머님." 같은 날, 금순 씨를 모시고 간 대학생 손녀도 할머니가 신기하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올여름, 사장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어머님, 이제 공장에서 직접 만들게 돼서 납품은 이번 달까지만 받을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금순 씨는 서운했지만 나이도 있으니 잘됐다고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텔레비전을 보던 금순 씨는 숟가락을 떨어뜨렸습니다. 홈쇼핑 화면에 반찬가게 사장이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있었습니다. 화면 아래에는 커다란 글씨가 떠 있었습니다. [김치 명인 30년, 직접 개발한 비법 고들빼기김치]
사장은 화면 속에서 김치를 버무리며 말했습니다. "저만의 비법은 고들빼기를 쌀뜨물에 사흘 우리고, 청각과 볶은 깨를 갈아 넣는 거예요." 그것은 금순 씨가 50년 동안 다듬어 온 비법 그대로였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물려받고 자신이 더한 재료까지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금순 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습니다. 평생의 손맛을 칭찬하던 사람이 그것을 통째로 가져가 자기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이 서러웠습니다. 남편이 금순 씨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습니다. "당신 공책이 열두 권이오. 그냥 넘어가면 안 되오."
다음 날 금순 씨는 공책 열두 권과 납품 장부를 보자기에 싸 들고 반찬가게를 찾아갔습니다. 손녀는 3년 전 찍어 둔 영상을 휴대전화에 띄워 함께 따라나섰습니다. 사장은 금순 씨를 보자 얼굴이 굳었습니다.
"사장님, 방송 잘 봤어요. 그 비법이 사장님이 30년 동안 직접 개발한 거라고요?" 금순 씨는 공책을 펼쳐 보였습니다. 1978년 겨울 날짜 아래 고들빼기를 쌀뜨물에 우리는 방법이 적혀 있었습니다. 손녀는 3년 전 가게 주방에서 할머니가 직원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는 영상을 틀었습니다.

사장은 처음에는 "요즘 김치 담그는 법이 다 거기서 거기죠"라며 버텼습니다. 그러고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머님, 방송에서는 원래 그렇게 다 포장해서 말해요. 어머님도 그동안 돈 받고 납품하셨잖아요." 그 말에 손녀가 장부를 펼쳐 보였습니다. "할머니가 10년 동안 받으신 돈은 재료비 빼면 한 달 20만 원이 전부예요. 레시피 값은 한 번도 받으신 적 없어요." 금순 씨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그럼 방송사에 이 공책이랑 영상을 보내서 누구 말이 맞는지 물어볼게요. 30년 명인이라는 말이 사실인지도요."
금순 씨는 그 자리에서 손녀의 도움을 받아 홈쇼핑 고객센터에 연락했습니다. 방송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제보와 함께 공책 사진과 영상을 보냈습니다. 며칠 뒤 홈쇼핑 회사는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해당 상품의 판매를 멈추겠다고 알려 왔습니다.
일주일 뒤, 사장이 금순 씨 집을 찾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님, 욕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판매가 막히면 가게도 공장도 다 문을 닫아야 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금순 씨는 사장을 일으켜 세우며 조건을 말했습니다.

금순 씨의 조건은 분명했습니다. 상품 이름과 광고에 '순천 박금순 할머니의 50년 레시피'라고 정확히 밝힐 것, 30년 명인이라는 거짓 문구를 모두 지울 것, 그리고 판매 수익의 일부를 레시피 사용료로 정식 계약서를 써서 지급할 것이었습니다. 사장은 고개를 숙이며 모든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한 달 뒤 김치는 새 이름을 달고 다시 판매되었습니다. 상자에는 금순 씨가 공책을 들고 웃는 사진이 붙었습니다. 금순 씨는 레시피 사용료로 받은 첫 돈을 동네 노인복지관 김장 나눔 행사에 보탰습니다. "내 손맛은 원래 동네 사람들 먹으라고 만든 거니까요."
남편은 금순 씨가 정리해 둔 공책 열두 권을 거실 책장 맨 위 칸에 나란히 꽂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올 때마다 자랑했습니다. "우리 집사람 인생이 다 여기 들어 있소." 손녀는 할머니의 레시피를 정리해 작은 책으로 엮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새 이름을 단 김치가 처음 나온 날 저녁, 금순 씨 부부는 손녀와 함께 순천 시장 골목의 오래된 백반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꼬막무침 한 접시에 갓김치와 된장국이 놓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손녀가 갓김치를 맛보더니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래도 이 맛은 할머니 김치를 못 따라와요." 금순 씨는 웃으며 손녀 밥 위에 꼬막을 하나 더 얹어 주었습니다.
『라퐁텐 우화』의 까마귀는 여우가 목소리를 칭찬하자 우쭐해져 노래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물고 있던 치즈를 여우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지나친 칭찬 뒤에는 때로 다른 속셈이 숨어 있으니, 내 것은 내가 기록하고 지켜야 합니다.

평생 쌓아 온 솜씨와 노하우는 그 자체로 소중한 재산입니다. 남에게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알려 주었는지는 기록으로 남겨 두세요. 그리고 함께 일할 때는 말로만 약속하지 말고 글로 약속하세요. 그 기록이 내 인생의 이름을 지켜 줍니다.
올가을 금순 씨는 남편과 함께 순천만 갈대밭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가 바람에 은빛으로 일렁였고, 갯벌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져 갔습니다. 두 사람은 나무 데크 위에 나란히 서서 해가 질 때까지 그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라퐁텐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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