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해주지 않아요”…스스로 치유하는 힘 키운다 [디지털농업 I 치유농업 속으로]
이 기사는 성공 농업을 일구는 농업경영 전문지 월간 ‘디지털농업’ 3월호 기사입니다.

“부모님은 늘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강조하셨어요. 지구가 아프면 우리도 아플 수밖에 없다고요.”
이 대표의 어머니 서영예 씨는 생태교육을 기반으로 한 공동육아 어린이집 시설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구 수성대학교 유아교육지원센터 강사이자 국가환경지원단 강사로 활동하는 생태교육 분야 전문가다. 가정 안에서 자연은 늘 삶의 전제이자 교육의 기준이었다.
당시 부모가 ‘치유’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다만 아픈 사람들이 좋은 공간에 와서 쉬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농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배경에는 전반적인 시설 관리를 도맡은 아버지 이도한 씨의 보이지 않는 역할도 크다. 3남매는 기꺼이 힘을 보태기로 했고, 2007년부터 본격적인 ‘5도 2촌’ 생활이 시작됐다.
농장에서는 전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부모와 떨어져 자연이 곧 놀이가 되고, 스승이 되는 숲속에서 2박 3일을 보내는 ‘숲살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3남매는 해마다, 계절마다 거듭 찾아오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렇게 십수 년간 이어온 자연학교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멈춰 섰다. 그 공백 속에서 뜻밖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 수칙 현황을 확인하러 방문한 창녕군농업기술센터 담당자가 이 공간을 둘러본 뒤 “여긴 딱 교육농장 자리인데요?”라고 운을 뗐다.
가족들은 농기센터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2022년 교육농장 품질인증을 받았고, 자연학교로 쌓아온 경험은 이후 치유농업으로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의생명공학을 전공하고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자격을 갖춘 동생은 ‘은하수아로마작업실’을 운영하며 아로마세러피를 중심으로 한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한다.
정신건강임상심리사인 오빠와 트라우마 전문상담사인 올케는 중독, 학교 부적응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대상자와 교류할 때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필요할 경우 보다 깊은 상담과 중재를 맡아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을 보완한다.
“숲속애를 처음 방문한 분들에게는 본격적인 프로그램에 앞서 이 공간이 지나온 시간을 공들여 브리핑해요.”

여기엔 이유가 있다. 군립공원 안에 번듯하게 자리한 숲속애를 두고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우아한 일을 한다’는 식의 오해가 종종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억울해서라기보다 치유농업이 보기에 그럴듯한 ‘단순 체험’으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한다. 숲속애가 어떤 자리에서 출발했고, 어떤 시간을 견뎌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숲속애가 치유농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치유는 본인 스스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공간을 가꾸고, 머무는 동안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 자가 치유의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것이죠.”

실내 활동보다 텃밭·산책·풍욕·계곡명상 등 야외 활동을 더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내 활동 역시 시간을 채우는 요소가 아니라, 일상에서 다시 힘든 순간을 맞닥뜨릴 때 이곳에서의 치유 경험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도록 구성한다. 아로마세러피, 요가, 스머지스틱, 반려식물 가꾸기 등은 일상에서 치유의 감각을 깨우는 데 작은 단서가 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이 함께하는 ‘사별자를 위한 치유의 숲’, 번아웃과 진로 고민을 안고 온 청년들의 ‘치유하우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위한 ‘엄마도 쉼이 필요해’, 청년 고독사 고위험군을 위한 ‘똑똑 문(화), 두드림’ 등 숲속애를 찾는 이들의 면면은 제각각이다.
숲속애에서는 대상자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즉각적인 반응을 재촉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머물렀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치유를 경험했는가’다.
예를 들면, 말린 허브를 묶어 만드는 스머지스틱은 불에 태워 퍼지는 향으로 공기를 정화한다. 이때 말린 허브는 생물학적으로 생을 마친 상태다. 그런데 불에 타는 동안 허브 끝에 진액이 맺히며 향을 퍼뜨린다.
이 과정을 함께한 참여자의 다수가 “이 꽃은 죽어서도 자신을 바라볼 사람들을 위해 반짝이는 향기를 남기네요” 하고 반응한다. 이처럼 치유농업은 농업 자원을 활용해 참여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치유를 경험하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치유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물론 참여자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말수가 줄어드는 이도 있고, 반대로 봇물 터지듯 감정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다. 이 대표는 그 과정에서 저마다 삶을 회복하는 감각을 되찾게 된다고 믿는다. 숲속애의 치유농업은 그렇게 각자의 삶에 맞는 회복의 언어를 남긴다.
“텃밭 가꾸기야 어르신들이 저희보다 훨씬 더 잘하세요. 저희는 다른 의미를 더하죠. 텃밭 식물도 밀식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둬야 잘 자라잖아요. ‘우리 사이(42㎝)에 필요한 거리’라는 이름으로, 가족 또는 사회적 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눠요.”
이 대목에서는 어르신들의 웃음과 탄식이 함께 터져 나온다. 이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도 유효해 서로 투닥거리다가도 “야, 우리 지금 42㎝ 떨어질 필요가 있겠다” 하며 분위기를 환기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이처럼 참여자의 말과 표정, 관계의 변화로 체감되는 효과는 측정값과 설문 문항만으로는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또 수치화된 결과가 치유농장주가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와 어긋나는 순간도 종종 발생한다.

“유의미하지 않다는 결괏값이 나와도 실망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참여자들의 반응을 더 잘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유의미하다는 수치를 얻는 것보다 참여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목표고, 그걸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화왕산 자락의 숲은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누군가는 잠시 머물다 떠나고, 누군가는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다. 숲속애는 그 사이에서 특별한 말을 보태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속도로 오고 갈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둘 뿐이다.
글 서진영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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