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차려줬으면 됐잖아" 제사상 안 한다며 나가라고 윽박지르는 남편..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하기 싫으면 이 집에서 나가."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결혼한 지 꼭 30년째 되는 해였다.

살면서 싸운 적이야 수없이 많았다. 며칠씩 말을 안 섞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가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내가 한 말은 하나뿐이었다. 올해 시아버지 제사상은 차리지 않겠다고.

기일을 열흘 앞두고, 무릎이 먼저 탈이 났다

스물다섯에 시집와서 쉰다섯이 됐다. 남편은 장남이었고, 제사는 당연히 우리 집 몫이었다.

처음 몇 해는 시어머니 옆에서 혼나며 배웠다. 전 모양이 흐트러진다고, 나물 간이 안 맞는다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남편은 평생 자기가 제사를 모신다고 생각했다. 날짜를 챙기고, 지방을 쓰고, 절을 했으니까.

장을 보고, 다듬고, 부치고, 끓이고, 치우는 건 늘 내 일이었다.

올해는 기일을 열흘 앞두고 무릎이 말썽이었다. 병원에서는 오래 서 있지 말라고 했다. 남편에게 올해는 전을 좀 사다 쓰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일 년에 한 번인데 그걸 못 해? 천천히 하면 되지."

서운했지만 넘어갔다. 평생 부엌에 들어와 본 적 없는 사람이니까.

"며느리도 이제 배워야지", 그 한마디에 앞치마 끈을 풀었다

며칠 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 일이 바빠서 제삿날 저녁에나 오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하려는데 남편이 전화를 가져갔다.

"며느리라도 아침에 먼저 보내라. 네 엄마 무릎도 안 좋은데, 나중에 너희가 제사 모시려면 지금부터 배워야 한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뭘 할 거냐고. 남편은 정말 몰라서 묻는 얼굴이었다.

"내가 뭘?"

30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기름 냄새 속에서 전을 부치던 새댁. 방문 너머로 들리던 텔레비전 소리.

이제 그 자리에 며느리가 서게 생긴 거였다.

나는 앞치마 끈을 풀었다.

"나 이제 제사상 안 차려. 올해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남편 얼굴이 굳었다. 평생 잘하던 사람이 늙어서 왜 이러냐고 했다.

"30년 동안 차려줬으면 됐잖아. 당신 아버지 제사니까 이제 당신이 해."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결국 그 말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 집 제사가 싫으면 나가!"

아들이 처음으로 물었다, "엄마는 제사 지내고 싶어?"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남편은 등을 돌리고 먼저 코를 골았다.

이 나이에 집을 나가면 어디로 가나. 내가 한 번 더 참으면 될 일을 괜히 키운 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앞치마를 맸다.

호박을 썰고 있는데 아들이 예고도 없이 왔다. 전날 통화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무릎 보호대를 차고 서 있는 나를 한참 보더니 물었다.

"엄마는 제사 지내고 싶어?"

일흔다섯 평생 처음 들어 본 질문이었다. 무슨 전을 할지, 생선은 뭘 살지는 수없이 고민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딨니. 해야 하니까 하지."

"그럼 하지 마. 아빠가 지내고 싶으면 내가 같이 할게. 그 사람한테도 안 시킬 거고."

손에 쥔 칼이 갑자기 무거웠다. 나는 앞치마를 벗어 곱게 접은 뒤 서랍에 넣었다.

처음 먹어 본 남편의 동그랑땡은 짰다

제삿날 아침, 남편은 텅 빈 부엌을 한참 바라봤다.

아들이 남편 팔을 끌고 시장에 갔다. 한 시간 뒤 두 사람이 봉지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전은 반쯤 사 왔고, 나물도 세 가지뿐이었다. 남편은 원래 다섯 가지였다고 계속 투덜댔다.

"부족하면 아빠가 하나 더 부치면 되죠."

웃음이 터졌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프라이팬 앞에 섰다.

나는 소파에 앉아 무릎에 찜질팩을 올렸다. 그릇은 어디 있냐, 밤은 어느 쪽에 놓냐, 남편이 몇 번이나 물었다. 예전 같으면 답답해서 벌떡 일어났을 거다. 그날은 그냥 앉아 있었다.

상은 예년보다 작았다. 그래도 제사는 무사히 끝났다.

그날 밤, 남편이 접시 하나를 내밀었다. 모양이 제각각인 동그랑땡이었다.

"내가 부친 거야. 먹어 봐."

하나 집어 먹었다. 소금을 너무 넣어서 짰다.

"짜네."

"처음이라 그래."

"나도 처음엔 그랬어."

남편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말없이 싱크대 앞으로 가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비켜 보라고 하지 않았다.

나가라는 말에 대한 사과는 아직 듣지 못했다. 남편은 지금도 제사는 장남의 도리라고 믿는다. 다만 이제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정말로 남편이 됐다.

내가 안 해도 상은 차려지고, 제삿날은 지나간다. 그걸 아는 데 30년이 걸렸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키고 싶은 사람이 그 수고까지 지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래도 끝까지 함께 차려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