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FA 선수의 1군실종.. 이대로 강제 은퇴 되는것인가?

올해 KIA의 가장 묘한 장면을 꼽으라면 ‘5억 FA’ 서건창의 실종에 가깝다. 구단은 “현장에서 원했다”고 설명했고, 1+1년 최대 5억 계약도 그 연장선이었다. 작년 서건창은 타율 3할을 치며 한국시리즈 우승 퍼즐의 한 조각을 맡았다. 그러니 벤치가 그 경험과 컨택 능력을 또 쓰고 싶어 한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되자 현실은 전혀 달랐다. 개막 엔트리에 들었지만 1군 10경기 타율 0.136, OPS 0.526에 그친 뒤 4월 중순 2군으로 내려갔고, 넉 달이 넘도록 콜업은 없었다. 9월 확대 엔트리에서도 이름이 빠졌다. “현장이 원했다”는 출발선과 “현장에서 쓰지 않는다”는 현재 사이에 긴 골짜기가 생겼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자리가 없다는 것, 그다음은 대체재가 생각보다 잘했다는 것이다. 서건창의 본업은 2루지만 KIA에는 김선빈이 있다. 1루는 작년엔 공석이 있어 서건창이 시간을 벌었지만 올해는 외국인 타자 패트릭 위즈덤이 들어와 닫혔다. 지명타자는 최형우라 논의 대상조차 아니다. 그렇다면 “수비 포지션을 늘리는” 전술이 남는데, 서건창은 스프링캠프에서 외야 수비까지 준비했지만 실제 경기에서 외야를 맡길 만큼의 플러스 알파를 증명하진 못했다. 그 사이 공백을 메운 건 젊은 야수들이었다. 오선우는 1루와 코너 외야를 오가며 장타를 보탰고, 중반 이후에는 중심 타선 고정 카드가 됐다. 김선빈이 빠졌을 땐 김규성, 박민 같은 20대 내야수가 발과 수비로 팀을 지켰다. 부상자가 쏟아졌던 팀 사정이 오히려 “세대 점프”를 앞당긴 셈이다. 기회가 오자 젊은 선수들이 잡았고, 그 결과가 곧 서건창의 입지 축소로 이어졌다.

성적 논리도 냉정했다. 1군에서 부진했을 때 2군에서 “불러올라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서건창의 퓨처스리그 성적은 시즌 전체 타율 .247, 최근 10경기 .321로 분발 조짐은 있었지만, 팀을 설득할 만큼 압도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구단이 9월 확대 엔트리에도 루키와 2~3년 차 야수를 먼저 올린 선택은 메시지가 분명했다. ‘지금은 미래를 키울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 메시지는 보통 시즌이 끝날 때 내년 로스터의 윤곽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구단의 선택은 합리적이기만 한가. 전부 그렇다고 하긴 어렵다. “현장이 원했다”는 말로 계약을 추진했다면, 시즌 플랜 A와 B가 더 촘촘했어야 한다. 서건창을 2루·1루 백업이 아닌 “좌타 콘택트형 멀티”로 설계했다면, 언제 어떤 매치업에서, 어떤 대타·대주자·수비교체 루틴으로 쓸지 사용 설명서가 필요했다. 선수에게 외야 훈련까지 시켰다면, 적어도 초중반에 실전 점검의 기회를 줘야 했다. 반대로 초반 부진으로 일찍 내릴 계획이었다면, 2군에서 요구할 역할과 지표(볼넷률, 라인드라이브 비율, 좌완 상대 성적 등)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기준을 통과하면 즉시 올린다는 약속이 있어야 했다. 이 과정이 비면 선수는 동기부여를 잃고, 팬은 “도대체 왜 데려왔나”라는 의문에 빠진다. 지금 KIA의 ‘서건창 미스터리’가 정확히 그 상태다.

서건창 개인의 시간표는 더 빡빡하다. 2026년 옵션 자동 연장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30대 후반, 수비로 플러스를 만들기 힘든 내야수, 1군 실적 부재라는 세 가지 불리한 조건이 겹치면 다음 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럴수록 선택지는 선명해진다. 첫째, 남은 한 달 반을 ‘대타 전문’에 딱 맞는 몸과 스윙으로 마무리해 가을 엔트리 티켓을 노린다. 초구/첫 두 구 승부, 좌완 상대로의 짧은 결, 코스별 컨택률 같은 뾰족한 무기를 다시 들고 와야 한다. 둘째, 수비 포지션을 정말로 넓힌다. 좌익·1루를 오가는 즉시 투입형 멀티로 자신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타격이 예전 같지 않아도 수비 위치 조정과 송구 선택, 번트 수비 같은 디테일로 벤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셋째, 현실적으로 내년을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 선수(초청선수 계약) + 인센티브’ 형태로 여는 길을 모색한다. 컨택과 상황타가 필요한 팀, 좌타 벤치가 약한 팀이라면 여전히 전화할 이유가 있다.

구단도 할 일이 있다. “젊음”과 “경험”은 반대말이 아니다. 치열한 순위 싸움일수록 7회 이후 한 타석, 1루수 뒤 땅볼 한 개를 잡아내는 노련함이 승부를 가른다. 서건창을 다시 쓰지 않더라도, 왜 쓰지 않는지, 무엇을 채워야 쓰는지를 내부에 선명하게 공유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계약은 성과와 사용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흐려질수록 구단의 FA 평판은 내려가고, 다음 협상 테이블은 더 비싸지거나 더 어려워진다.

서건창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타자였다. 2014년 KBO 최초 200안타는 기록을 넘어 문화였다. 공 하나라도 더 파울로 만들고, 파울이라도 더 길게 끌고 가며 투수를 지치게 하던 타석 태도는 리그 전체에 영향을 줬다. 그렇다고 “과거의 영광”만으로 현재를 덮을 수는 없다. 프로는 지금 이 타석과 내일의 한 자리로 증명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 안타깝다. 끝이 보이는 듯한 지금이 오히려 마지막 설득의 시간일 수 있다. 선수는 다시 준비하고, 구단은 제대로 설명하라. 만약 여기서도 서로의 길이 갈라진다면, 그때는 깔끔해야 한다. 명확한 정리와 존중은 선수의 마지막을 지키고, 구단의 다음을 망치지 않는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현장이 원했던 건 무엇이었나.” 경험의 이름이었나, 숫자의 합이었나, 아니면 둘 다였나. 답을 행동으로 보여줄 시간은 아직 남았다. 남은 경기에서 대타 한 방, 9회 대수비 한 플레이라도 팀이 필요로 하는 정확한 순간에 꽂아 넣는다면, 서건창의 2025년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재정의’로 끝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는 자신이 걸어온 방식대로 마지막까지 야구로 말하면 된다. 그렇게 헤어지는 것조차 이 선수에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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