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맞다 vs 아니다' 김태오 전 DGB금융 회장 유죄 '키워드' [넘버스]

조회 552025. 2. 20. 수정
대구고법 전경 /사진=박선우 기자

캄보디아에서 상업은행 인가를 얻기 위해 현지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려다 재판에 넘겨진 김태오 전 DGB금융그룹 회장이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에서 유죄를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횡령 혐의에 대한 달라진 해석이다. 1심은 이를 회사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본 반면, 2심은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위법한 행위로 판단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대구고법 형사2부(정승규 부장판사)는 국제뇌물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며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 DGB대구은행 글로벌 사업부장 A 씨 등 3명에게는 징역형 및 집행유예 2~3년을 각각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캄보디아 현지법인인 DGB SB를 상업은행으로 전환하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 현지 공무원에게 로비 자금 350만달러를 주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중 300만달러는 DGB SB가 매입하려던 캄보디아 부동산 매매대금에 포함되는 것처럼 꾸며 브로커에게 전달한 혐의도 받는다.

앞서 1심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제상거래와 관련해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과 △횡령 여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캄보디아 중앙은행으로부터 상업은행 인가를 받으려 한 행위는 국제뇌물방지법에 규정된 '국제상거래와 관련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DGB SB와 캄보디아 중앙은행은 캄보디아 내국법인과 내국기관의 관계라 상업은행 전환 절차를 상거래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들이 공모해 DGB SB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용도로 착복할 목적으로 상업은행 전환비용 300만달러를 교부해 불법영득의사(不法領得意思)를 실현하는 횡령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업무상 횡령죄에서 불법영득의사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자신이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 소유처럼 처분하려는 것이다. 재판부는 DGB SB 관계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상업은행 전환비용은 오로지 DGB SB의 이익을 위해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상업은행 전환비용을 지불하면서 피고인들이 개인적으로 취득한 금원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횡령 혐의에 대한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직접적으로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영득의사를 부정할 수 없고, 로비자금 제공 행위를 오로지 DGB SB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횡령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상업은행 인가 취득으로 피해 은행(DGB SB)에 일부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었더라도 상업은행 인가 절차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 등에게 로비자금을 제공한 것은 그 자체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위법한 행위"라며 "피해 은행의 평판 저하, 인가 취소 등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 중 일부는) 김 전 회장에게 보고하는 등 암묵적인 공모를 통해 비정상적인 행위를 한 것"이라며 "역점 사업을 추진하다 다소 무리하게 거액의 횡령을 범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피고인들이 자금을 공식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브로커를 거쳐 현금으로 지급했고, 자금이 상업은행 전환과 관련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에게 갈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업활동 중 뇌물 공여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시를 위반했고,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박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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