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선 아무도 당신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허진무의 호달달]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시고니 위버, 톰 스커릿, 존 허트
상영시간 117분
제작연도 1979년
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긴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칠흑처럼 캄캄하고 새벽처럼 고요한 우주를 화물선 노스트로모 호가 유영하고 있다. 광석 2000만t을 싣고 지구로 귀환하는 중이다. 준사관 엘렌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비롯한 승무원 7명은 장기 수면에서 깨어나 이상한 신호를 감지한다. 이들은 계약 규정에 따라 신호 발신지인 행성으로 향하지만 착륙 도중에 화물선 일부가 고장난다.
행성을 탐사하던 선장 아서 댈러스(톰 스커릿)와 부선장 토머스 케인(존 허트)은 거대한 외계 우주선 유적을 발견한다. 알에서 부화한 외계 생물이 케인의 얼굴을 덮어 케인이 의식을 잃자 승무원들은 화물선 안으로 옮긴다. 괴물은 사라졌는가 싶더니 케인의 가슴을 터뜨리며 튀어나온다. 인간들은 압도적으로 강력하고 흉포한 괴물 ‘에이리언’(이방인)과 사투를 벌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1979)은 영화사상 가장 성공한 SF 호러 영화다. 1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흥행보다도 위대한 업적은 SF 호러 장르에 미친 심대한 영향력이다. <에이리언>은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와 ‘호러’를 접목해 전에 없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후 우주 괴물을 다룬 모든 영화가 <에이리언>과 비교당하는 가혹한 운명에 처해졌다.
리들리 스콧은 ‘비주얼리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시각적 연출이 뛰어난 감독이다. <에이리언>도 외계 괴물을 비롯한 시각적 충격의 연속을 보여준다. <에이리언>의 특수효과는 생생한 물성(物性)을 가진 재료들을 사용해 첨단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느낌을 준다. ‘체스트 버스터’가 케인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오는 장면은 실제 동물의 피와 내장을 사용했다. 체스트 버스터가 성충으로 성장하면 ‘제노모프’가 된다. 제노모프의 머리를 실제 인간의 두개골로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제모노프의 키는 설정상 218㎝에 달해 마사이족 출신 댄서 볼라지 바데조가 제노모프 몸체 안에 들어가 연기했다.
에이리언의 존재는 경외적인 공포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바나나처럼 길다란 머리, 금속처럼 번쩍이는 이빨, 뼈마디가 드러난 거대 파충류 몸체를 가진 에이리언의 디자인은 스위스 예술가 H R 기거가 창조한 것이다. 기거는 인간의 몸과 기계를 접합해 그로테스크한 회화와 조각을 만들었다. <에이리언>의 각본가 댄 오배넌이 리들리 스콧에게 기거를 추천했다. 오배넌과 기거는 제작이 취소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듄>(1974)에 참여한 인연이 있었다.
에이리언의 모습에선 여러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나나 모양 머리에서 인간 남성의 성기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 괴물은 인간의 몸 속에서 성장해 임신부처럼 부푼 배를 터뜨리며 뛰쳐나온다. 성폭행과 임신의 트라우마를 가장 강렬한 형태로 형상화한 장면이다. <에이리언>은 과거 대부분의 SF 영화와 달리 여성인 리플리가 주인공이다. 강인한 여성 주인공이 남성 성기 모양의 괴물과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의미가 있었다. 리플리 역할에 발탁된 시고니 위버는 당시 무명 배우였다. <에이리언> 출연료 3만 달러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에이리언>의 진짜 공포는 에이리언 자체보다 에이리언과 함께 있는 폐쇄 공간일지도 모른다. 무한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 안에 갇혀 괴물과 맞서 싸운다는 설정은 절대적인 고립감을 준다. <에이리언>의 영문판 광고 문구는 “우주에선 아무도 당신의 비명을 들을 수 없다”였다. 실제 에이리언이 등장하는 장면은 극히 적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불안과 긴장으로 질식할 듯하다. 조명의 조도가 낮아 어두침침하고 연기가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더욱 답답하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의 후속작 연출도 원했지만 판권은 20세기폭스사가 갖고 있었다. <에이리언 2>(1987)는 제임스 카메론에게, <에이리언 3>(1992)는 데이빗 핀처에게, <에이리언 4>(1998)는 장 피에르 주네에게 연출을 맡겼다. 완성도의 차이가 있지만 각자 개성과 매력이 있는 작품들이다. 리들리 스콧은 <프로메테우스>(2012)와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로 시리즈에 복귀했다. <에이리언> 이전 시점의 우주적 신화 세계에서 인간의 기원과 욕망을 탐구하는 프리퀄 작품들이다. 리들리 스콧의 야심이 강했던 만큼 흥행에는 처참하게 실패해 후속작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최근 개봉한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에이리언: 로물루스>(2024)는 시리즈 본연의 호러로 돌아왔다. 45년의 격차가 있는 <에이리언>과 <로물루스>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실제 축구 경기 중 번개 맞고 선수 사망…‘100만 분의 1’ 확률이 현실로
- [2024 미국 대선] ‘선거 족집게’ 통계학자, 승률 ‘해리스 우위’로 바꿨다
- [종합] 과즙세연♥김하온 열애설에 분노 폭발? “16억 태우고 칼 차단” 울분
- 조정훈 “대통령 열심히 해서 나라 잘 만들어보라는 분들이 대다수”
- 중국 열광시킨 ‘수학천재’ 소녀 씁쓸한 결말
- [2024 미국 대선] 앤디 김 ‘한국계 최초’ 뉴저지주 연방상원의원 당선
- 조경태 “김건희 특검법? 7일 대통령 담화 결과 따라 대응 변동 있을 수도”
- [2024 미국 대선] ‘83세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 4선 성공
- 백종원의 ‘더본코리아’, 장중 89%↑ ‘뜨거운 출발’
- [속보] 해리스 ‘뉴저지·일리노이·델라웨어’ 잡고 ‘아칸소’는 트럼프 승리[2024 미국 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