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걸었던 제주 올레길 눈에 선한데… 당신, 어디로 간 거야[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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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이 계속되는 폭염 속으로 남편은 자는 듯이 떠나갔다.
창밖으로 뭉실뭉실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간다 하니 혹시나 저 구름 속에 숨어 내 모습을 바라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멈추었던 눈물샘은 주책없이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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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이 계속되는 폭염 속으로 남편은 자는 듯이 떠나갔다. 그냥 가기는 싫었던지 나의 눈물샘을 망가트려 놓고 유유히 갔다.
남편이 떠난 지 49일째, 제주행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다. 창밖으로 뭉실뭉실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간다 하니 혹시나 저 구름 속에 숨어 내 모습을 바라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멈추었던 눈물샘은 주책없이 터져 버렸다.
평생 해오던 사업을 접은 후 유난히 허탈해하던 어느 날, 자신이 태어난 섬 제주 올레길을 걸어보자는 약속을 했다. 1코스부터 시작하여 21코스 전 코스를 완주했던 시간들은 우리에겐 최고의 추억이었다. 정물 휴양림 숲길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거실 한가운데 걸어 놓고 바라볼 때마다 흐뭇하였다.
노란빛으로 물든 유채꽃 언덕, 해풍을 맞으며 무더기로 피어난 해국의 꽃망울에 눈길을 맞추며 걸을 때면 천국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천국인 듯 행복해하며 기뻐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제주 올레길이란 곳은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아름답고 고운 길은 아니다. 각 코스마다 지형이 달랐으므로 오름을 오를 때는 헉헉거리며 숨 가쁘게 올랐었고 끝없는 지평선에 맞닿은 푸르른 바닷길을 걸을 때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흥겹게 걸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인데 해녀들이 갓 잡아 올린 전복으로 끓인 맛있는 전복죽도 먹어 보고 작은 식당조차 만나기 힘든 척박한 길을 걸어야 할 때는 볶은 멸치와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둘둘 만 김밥을 먹으며 햇볕 잘 드는 돌담 벽에 기대어 믹스커피 한잔의 달콤한 추억도 마치 어제인 듯 되살아나고 있다.
11월의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보면 우리 둘만의 발자국 소리가 터벅터벅 들린다. 묵묵히 앞서가는 그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저 사람이 내 울타리구나 하며 든든했던 기억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도 목적지 표시는 나타나지 않고 억새풀 사이로 외로운 무덤들만 드문드문 보여질 때면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함께여서 완주를 했던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난이도 상급 코스인 3, 4코스를 걷던 중 발톱이 세 개씩이나 빠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빠진 발톱이 채 자라기도 전 가보지 못한 다음 코스가 궁금해 우리는 다시 배낭을 꾸리곤 했다. 함께 목적을 세우고 한곳을 바라보며 늘 같이 걸었던 추억이 생생한데, 긴 시간 아팠던 당신의 곁에서 “아름다운 이별”이란 문장을 자주 떠올렸었다. 입맛에 맞을 만한 음식을 준비하고 정성껏 닦아주고 당신이 잠들 때까지 손잡아주며 마지막까지 눈을 맞추며 병상을 지킨 것이 과연 최선을 다한 것일까.
이제야 깨닫는다. 이별이란 다시 볼 수 없을 때 쓰는 용어이므로 다시 못 볼 사람에게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는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을 떠나보낸 후 나는 미망인이 되어 지금 제주 바람을 혼자서 맞고 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 자꾸만 곁을 두리번거린다.
나는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 하나. 억새꽃 펄럭이는 올레길 걷기를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까.
외출을 했다가도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허둥지둥 뛰어와야 했던 오래된 습관을 싹 지워 버리고 한 번도 참석지 못했던 익선동 칵테일 바 번개팅을 주선해 볼까. 그러면 고장 난 눈물샘이 고쳐질까.
휭하니 나뒹구는 널브러진 시간들. 난 지금부터 이 시간들과 부딪혀야 하는데 당신이 보기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꿈에라도 넌지시 알려 주면 좋겠어. 잠깐만이라도 다녀갔으면 좋겠어. 아니면 통화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 액자 속 사진에서는 손을 꼭 잡은 채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데 당신은 어디로 간 거야.
박옥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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