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이지만 해냈어요…포기하지 마세요”

신수현 기자(soo1@mk.co.kr) 2023. 1. 2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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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한지민 언니 ‘영희’ 정은혜 작가
4천명 이상 캐리커처 그린 베테랑 작가
“사람들과 어울릴 때 가장 행복”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림도 그리고 연기도 하는 정은혜 작가. <박형기 기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해냈는데요.”

발달장애인(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지만 미술 작가이자 연기자로 맹활약 중인 정은혜 작가. 최근 기자와 인터뷰한 정 작가는 힘든 사람들에게 한 마디 당부의 말을 해달라는 부탁에 한 마디, 한 마디 차분한 말투로 “꿈,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전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지난해 방영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영옥(배우 한지민 씨)의 언니 영희 역할로 출연해 주목받았다. 드라마에서 영희는 발달장애인인데, 실제 다운증후군을 지닌 정 작가가 다운증후군 장애인 역할로 드라마에 등장해 엄청난 화제가 됐다.

‘우리들의 블루스’ 대본을 쓴 노희경 작가가 발달장애인을 취재하기 위해 정 작가를 만나러 갔다가 정 작가에게 드라마 출연을 제안했고, 정 작가가 흔쾌히 승낙해 출연했다.

정 작가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심했다”며 “3개월 정도 촬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지난해 마지막 날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2023년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시민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정 작가를 만나 작가가 된 계기, 앞으로의 목표 등에 관해 들어봤다. 인터뷰에 동석했던 정 작가의 어머니,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 작가가 정확하게 전달해주지 못한 내용은 부모님의 목소리를 통해 기사로 정리했다.

-어떻게 작가가 됐나.

발달장애인들의 직업 적응 훈련을 도와주는 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없었다. 직장도 없었다. 뜨개질하는 것을 좋아해서 집에서 뜨개질만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운영하던 화실에 어느 날부터 들락날락했고,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2016년부터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면서 작가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그림을 그린 사람만 4000명이 넘는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폭염에도 문호리 리버마켓이 열리는 날에는 마켓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2019년 초까지 문호리 리머마켓에서 그림을 그렸다.

-정식으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림을 그렸나.

▷주로 사람들의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모델이 돼준 사람도 있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아간 사람도 있다. 돌아간 사람들에게는 그림을 완성한 후 집으로 그림을 보내줬다. 그림을 그린 대가로 받은 돈보다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작업할 때 쓴 밥값, 차비 등 지출액이 컸던 것 같다.

-낙관 문양이 병아리던데.

문호리 리버마켓 상징 캐릭터 중 하나가 병아리다. 문호리 리버마켓 운영이 끝날 때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 씨가 활동하던 그룹 ‘넥스트’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가 나오곤 했는데, 제가 이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하는 병아리가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병아리 낙관을 쓰게 됐다.

-정 작가에게 그림이란.

삶 자체인 것 같다.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림 그렸던 시기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제가 세상에 나오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명랑하고 밝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어느 순간부터 외톨이가 됐다. 친구도 없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원망도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조현병 증상, 시선 강박증도 사라졌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사람들이 저를 피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먼저 다가와 줬다. 4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저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밝아졌다.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다.

-드라마에 출연해서 대중에게 유명해졌다. 인기를 실감하는지.

방송 출연도, 인터뷰 요청도 종종 받는다. 길에서 알아봐주는 사람들도 있다. 드라마에 같이 출연했던 배우들(한지민, 김우빈, 이정은 씨 등)과도 연락하면서 지낸다.

-드라마 출연료는 얼마.

기억이 안 난다.

-드라마에서 술도 마셨고, 춤도 췄는데.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춤추는 것도,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한다.

-또 하고 싶은 게 있나.

미술 작가가 되는 것도, 연기를 하는 것도 꿈이었는데 둘 다 이뤘다. 늙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 연기를 또 하고 싶다. 지민 언니(한지민 씨)가 정말 좋아서 언니랑 다시 연기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사람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으니까 동물, 사계절 풍경, 자화상도 그리고 싶다.

[신수현 기자]

※ 유튜브 ‘매경5F’에서 영상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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