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노인들, 일본은 집으로 한국은 요양원으로

임재희 2022. 12. 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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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
노인 완치 중점 두기보다
스스로 일상 살도록 돕는
회복기 재활치료에 집중
지난 19일 일본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 1층에 있는 재활 공간에서 환자가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제공
한국은 2025년 총인구에서 65살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제도를 손질해 지속가능한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서도 건강한 나이 듦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돌봄 환경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한겨레>는 12월18∼21일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등과 일본 도쿄도 및 사이타마현을 방문해,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공적연금 전문가와 의료·돌봄 기관 등을 취재했다. 한국 사회에 시사점을 줄 일본의 앞선 경험과 고민을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 _편집자

‘집으로 돌아가자’(おうちにかえろう·오우치니 가에로)

지난 19일 오후 일본 도쿄도 북서부 지역인 이타바시구 한적한 주택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카페가 1층에 자리한 5층 회색 건물 벽엔 하얀 글씨가 쓰여 있다.시민단체 구호 같은 문장은 이 건물 2~4층에 위치한 120개 병상 규모의 병원 이름이다. 이날 <한겨레>가 이 병원을 찾았을 땐, 의사를 비롯해 간호사, 언어치료사 및 작업치료사(정서적 불안, 신체 장애 치료를 위한 훈련·레크리에이션 치료 진행) 14명이 4층 병동 한가운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서 “환자를 어떻게 하면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지난해 문을 연 이 병원 환자 대부분은 70~80대 고령층으로 뇌경색이나 폐렴, 골절 등으로 종합병원에서 진단·치료(급성기 치료)를 받은 뒤 이곳으로 옮긴 경우가 많다. 나이 듦에 따라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질병 치료에 중점을 두기보다, 집으로 돌아가 스스로 일상을 살도록 돕는 ‘회복기 재활’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는 입원해 있는 동안 인근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사 직접 조리를 하거나 집 욕실 설비와 유사한 환경에서 씻는 연습을 한다. 퇴원 뒤 살아갈 집 환경을 건강 상태에 맞춰 개조하는 작업, 필요한 방문진료나 돌봄 서비스 연결도 병원이 도와준다.

지난 19일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 직원이 휠체어에 탄 어르신이 설 수 있도록 부축하고 있다. 이 병원 의사와 간호사·치료사 등은 유니폼 대신 셔츠와 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일하고 있다. 도쿄/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지난 11월 일본의 건강 관련 온라인 매체 <요가>는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에 입원한 80대 남성 사연을 소개했다. 다른 병원에서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그는 인지기능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꼭 집에서 살면 좋겠다”는 딸의 희망으로 이 병원을 찾았다.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하던 아버지는 이 병원에 와서 스스로 옷을 입고, 난간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이 병원을 운영하는 ‘팀블루’ 대표 야스이 유는 “건강이 나쁜 상태에서 폐렴으로 병원에 오면 식사를 하지 못해 코로 삽관을 하지만, 이분처럼 환경을 바꿔 (건강) 상황이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며 “지역에서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이들의 보조원 역할을 하는 병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병원 환자 10명 가운데 8명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돌봄을 받기 어려운 경우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장기간 머물 수밖에 없는 한국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처럼 회복기 재활치료를 받고 집으로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한국에선 2년 전 도입돼 이제 시작 단계다. 2005년 총인구 가운데  65살 이상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지역포괄케어’ 을 시작했는데, 이러한 흐름에 따라 지역사회 의료와 돌봄을 잇는 병원이 생겨났다. 일본 정부는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 전체가 76살이 되는 2025년을 대비하기 위해,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고령층이 치료와 돌봄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고령층 개인 상황에 맞춰 적합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 기초지자체(시정촌)는 지역포괄지원센터(2021년 기준 전국 5351곳)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포괄지원센터를 위탁운영 중인 사이타마 센트럴병원 마루야마 나오키 원장은 “의료는 병원 안에서만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역 행정과 협동해 방문진료와 간호, 재활까지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 지역포괄케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전체 병상 수는 줄이고, 일상 복귀를 돕거나 집에서 진료를 받는 재택의료는 강화했다. 일본인이 임종을 맞는 가장 흔한 장소는 여전히 병원이지만 의료기관(20병상 이상) 사망 비율은 2005년 79.8%에서 2020년 68.3%로 줄어드는 추세다.

고령층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버팀목은 개호보험(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유사)이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듦을 인정받은 만 65살 이상 고령층과 질병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만 40살 이상에게 24시간 방문간호·돌봄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이다. 개호보험 수급자는 서비스 이용비 10%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득 수준에 따라 30%를 내는 경우도 있다. 2018년 기준 일본 노인 인구 가운데 개호보험 수급자 비율은 18.2%이다. 만 65살 이상이 부담하는 한달 평균 개호보험료는 6014엔(5만7천원)인데, 이용자가 늘어 재정 부담이 커지자 일본 정부는 소득이 많은 이들에게 보험료를 더 많이 걷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 구축은 현재진행형이다. 돌봄·의료기관이 많은 대도시와 달리,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서비스를 충분히 공급하기 어렵다. 노가미 히로시 도쿄도 미나토구청 보건복지과장은 “돌봄·의료 연계가 어렵긴 했지만 미나토구는 자원이 풍부한 편이라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빨리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며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 아직도 실현이 어려운 지자체도 많고 지역별 격차가 커 서로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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